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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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5.02.10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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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사진출처= <읽는다는 것>, 권용선, 너머학교, 2010.

나이 들면서 읽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모니터는 자체발광을 해서인지 좀 나은 편이지만, 무엇인가 읽고 나서는 늘 눈을 씀벅이곤 합니다. 예전에 나이 지긋한 늙은이가 되면 뭘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지요. 컴컴한 헌책방 서가 사이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다시 고전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었죠. 아득하고 아늑한 정경입니다.

요즘 같아서야 휴대전화로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를 읽고 있지 않을까, 씁쓸한 결과를 예상합니다. 휴대전화 정보기술이 더 발달해 다른 뭔가를 ‘예배’하듯이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미 아무도 종이 책을 읽지 않지만, 책방에는 책들이 여전히 쏟아져 내리고 있으니 묘한 현실입니다.

기차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이 이동 중에 책 읽는 습관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낯선 사람과 몇 시간이고 마주 앉거나 나란히 앉아서 가야한다는 곤혹감이 승객들에게 책을 읽게 만든 모양인데, 이럴 때는 항상 시선 처리가 문제니까요. 요즘은 휴대전화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태블릿을 꺼내드는 사람이 더 많겠지요. 사무실과 집에서 하던 일을 길거리나 전철에서도 할 수 있으니 ‘경제적 일상’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쉴 틈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멍청히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주는 ‘무언(無言)의 힘’이나, 잠시 업무를 젖혀놓고 평소 마음에 두었던 책을 찬찬히 읽어 나가는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요즘엔 미사참례를 위해 집을 나설 때도 예전처럼 성가책과 성경을 들고 가지 않습니다. 성당에 성가책이 비치되어 있고, <매일미사>가 나머지를 해결해 줍니다. 어떤 교우는 휴대 전화로 모든 걸 해결합니다. 빠르고 간편하게. 우리시대의 금과옥조입니다. 긴 글은 사양하고, 유튜브 영상 조차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이 대세입니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자 하면 “결론만 간단히” 하라고 요구합니다. 권용선 선생이 지으신 <읽는다는 것>(너머학교, 2010)에서는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나크가 한 말을 인용했더군요.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시간을 훔치다니요. 모든 일과 일 사이에는 자투리 시간이 있기 마련이고, 그 시간을 훔쳐 언제 어디서나 책 읽을 마음을 먹으라는 거지요. 매일 하루 10분씩만 책을 본다면 열흘이면 100분, 한 달이면 300분이 생깁니다. 300분이면 5시간이니 웬만한 책 한 권은 뚝딱 읽을 수 있다는 거지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쓰던 일기장에 이런 금언이 적혀 있었어요. “한 권의 책밖에 읽지 못한 사람을 두려워하라.” 사고가 편협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아서야 “결론만 읽는 사람을 두려워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과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그러니 바쁜 와중애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복음’이 주는 뜻밖의 메시지에 주목해 보자고 권합니다. <매일미사>로 영적 독서를 대신하지 말고 교부들과 현대신학자들이 말하는 목소리도 이따금 들어야 합니다. 신부님들 강론만으로 복음을 이해하기란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차피 신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요량이라면,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고, 우리 시대에 전하고픈 하느님 말씀이 무엇일지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전례 중심이어서 만사를 기도로 대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월 말아야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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