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4년 12월 25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크리스마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절기라고 한다. 세계 160여 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키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절기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이며 정치경제적 의미를 지니는 세계적인 절기인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날이 12월 25일이라는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다. 서기 336년 정치적 권력을 지닌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공식화되었기 때문이다.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겹치면서, 예수의 탄생일은 12월 25일로 확정되었다.
2. 어릴 때 나의 ‘행복한 추억’은 늘 크리스마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교회나 가족들과 함께 한 집에서 크리스마스 때 듣고 부르던 캐롤, 선물, 다양한 음악들, 맛난 음식 등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들뜨고,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대한 낭만적 추억과 기대는 이제 점점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안겨주는 절기가 되곤 한다. 점점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왜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절기’로 탈바꿈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유럽의 식민주의와 함께 손잡고 식민지국으로 간 기독교 세계 선교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서구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발전에 이어 20세기 산업화의 확산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확장 등이 ‘크리스마스의 세계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순수한 종교적인 것‘이란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3.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크리스마스의 세계화는 서구 중심적인 문화적 균질화, 신제국주의, 고도의 상업주의에 따른 소비주의, 노동착취, 경제적 불평등, 환경위기, 또한 기독교 우월주의 등을 양산하면서, 정작 “예수”는 묻힌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연히 이 세계는 매우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그려진다. 곳곳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 그리고 SNS에 올려지는 ‘행복한 가족’의 사진들은 크리스마스의 마술처럼 마치 이 세상이 아름다운 곳으로 낭만화되곤 한다. 이러한 표피적인 ‘행복의 그림’들 이면에서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빈부의 격차는 더욱 노골화되고, 선물 포장과 선물 운송, 크리스마스 장식, 여행, 운전 등에 따른 환경오염은 엄청난 문제를 양산한다고 한다.
4. 미국에서만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는 66.3억 킬로와트의 전기가 소비되고, 탄소 배출량은 엄청나다고 한다. 포장지만 해도 영국에서만 22만 7천 마일의 포장지가 버려진다고 하는데, 이는 지구를 아홉 번 둘러싸는 길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포장지는 금속 코팅, 플라스틱 필름, 반짝이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쓰레기 발생도 30% 증가한다고 한다. 과잉 생산과 소비, 음식물 쓰레기 등에 관련하여 미국이나 영국만의 통계가 이러니, 세계 곳곳의 통계가 나온다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오염이 바로 크리스마스 절기에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5. 화려한 크리스마스 절기에 정작 예수는 사라지고, 기독교 ‘복음’은 자본주의화 되면서, 교회 자체의 부와 존립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왜곡된다. 백화점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소비를 극도로 조장하면서, 자본과 행복이 비례한다는 왜곡된 환상과 가치를 강화하고 있다. 백화점에 붙여있는 "메리 크리스마스"는 결국 "메리 캐피탈리즘 (capitalism)"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6. 2004년 뱅크시(Banksy)의 작품인 “쇼핑백을 든 그리스도 (Christ with Shopping Bags)”라는 작품은 이러한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십자가는 제거되었고, 현대의 소비주의와 자본주의화된 상업주의의 상징인 쇼핑백을 들고 있는 예수는 검은 피를 흘리고 있다. 예수의 탄생이 의미하는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 그리고 주변부인들과 연민, 연대와 책임의 의미는 철저하게 왜곡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7. 예수의 ‘크리스마스’는 ‘탈 자본주의화’와 ‘탈 교리화’를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 크리스마스 절기는 ‘예수’라는 존재가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 환대, 연민, 평등과 정의의 삶에 대한 가르침으로 확산되는 예식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경계들을 넘어서, ‘모든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보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는 크리스마스는, 더 나아가서 나의 새로운 탄생, 너의 새로운 탄생, 그리고 나와 너가 만나는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의미와 연결되어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십시오”라고 한 예수의 가르침은, 예수의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새로운 탄생’의 소중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8. 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은 예수가 사회의 가장 주변부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연대하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죽어서 천당’이나 ‘성공과 물질적 축복’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그러한 삶과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교회와 각 처에서 모이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현재 다양한 주변부적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대의 책임성을 상기하고,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변화에 개입하고자 하는 결단하는 예식으로서의 ‘크리스마스’를 상기하고 축하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