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살짝 고개를 떨구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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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살짝 고개를 떨구더구나
  • 허욱
  • 승인 2024.08.11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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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로 읽는 허욱 일기

작업실 근처 경인미술관을 근거지로 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검은 고양이인데, 중간중간 흰색이 섞였다.
이 동네 고양이들과 세력다툼
큰 싸움을 벌인 탓인지 얼굴에 큰 상처가 나서
아문 자국이 선명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굴이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

어제 조금 일찍 짐을 싸고 나와서
경인미술관에 들렸는데,
이 녀석이 경비 아저씨처럼 앉아서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같이 쭈그려 앉아
한참 묵언의 대화를 나눴다.
계속 눈 마주치기가 민망했는지
넌 살짝 고개를 떨구더구나.
가방에 뭐라도 있으면 주고 싶은데,
아무 것도 없었다.

너나 나나 같은 처지,
고단한 삶에서 풍겨나오는 쉰 냄새...
오늘도 마른 붓을 든다.

 

허욱 토마스 모어
일기로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작가
저서로 <혼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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