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동안 단 한번만 회개 하는 게 아니다
상태바
일생 동안 단 한번만 회개 하는 게 아니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4.07.01 1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예수는 우리의 신성함이자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다. “어떤 사람도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면 내가 너희 안에 살리라”(요한 15,4-5).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일까? 사랑으로...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살고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그리하셨듯이 성령의 말씀에 사랑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할 수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 14, 15).

그리스도의 뜻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진실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거룩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히 수동적이고 생기 없이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활동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투쟁과 내적인 갈등 없는 영성 생활은 없다. 이 갈등과의 싸움이 더욱 힘든 것은 그것이 숨겨져 있고, 신비스럽고, 때때로 이해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신앙 생활 초기에 몇 가지 희생을 하기를 원할 것이다. 좋은 출발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하게 만들고 시작한 일을 계속 끌고 나가며 끝이 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막대하며, 우리의 약해빠진 사랑에 지워진 짐은 너무 무겁다: 아니면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분과 함께 죽는 십자가와 우리의 소명의 중대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세례 때 그분과 함께 죽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그러나 이것은 이어질 죽음과 부활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단 한번만 “회개” 하는 것이 아니며 수 없이 많이, 그리고 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회개”, 내면의 변혁들을 거치면서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한 두 번의 변혁들은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는 반면, 우리 내면의 자아를 더욱 더 많이 내어놓아야 할 때는 주저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워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비록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성화를 이루어주시지만, 그분께서 활동하시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더욱 나아갈수록 그분은 우리의 힘과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본성들을 더 많이 앗아가, 결국 우리는 완전한 가난과 암흑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반항한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