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종교적 의식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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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종교적 의식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 참사람되어
  • 승인 2024.05.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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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복음)

예수님은 우리를 해방하려고 오셨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엄한 존재임을 깨달아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하셨다. 그분은 우리 스스로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 안에 하느님의 빛과 하느님의 기운이,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생명이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의 일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이나 종교에 관한 말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파견된 예수님의 ‘일’을 통해서 표현되고 전달되는, 인간을 향해 열려진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이다. 하느님의 ‘일’은 곧 말씀이며, 말씀은 곧 예수님의 ‘일’이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예수님이 행한 ‘일’의 목적은 생명을 주는 것, 곧 사람들을 일으키고 살리는 데 있다. 일한다는 것은 빛을 비추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은 또한 그로부터 파견된 제자들에게 주어진 일이기도 하다.(요한 14,12)

예수님의 일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계속되어 왔는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교회는 예수님의 일을 제도 속에 가둬버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 관리자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의 ‘일’은 부활의 행위이며, 사람들을 약함과 악으로부터 힘과 선으로 해방시키는 생명의 행위들이다. (사도 10,38)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육신이 되셨고”, 하느님 아들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성서의 증언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세상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일’, ‘예수의 일’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예수의 하느님

예수님은 종교적 경신행위를 하지 않았다. 예수는 종교적 의식에서 해방되어 있었고,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경배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숭배하는 어떤 의식도 제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행한 만찬은 공동체 성원 사이의 결속의 상징이었으며, 새로운 이스라엘 건설을 위한 새로운 계약의 체결과 상징적 연관이 있다. 예수님이 행한 성찬례는 엄밀한 의미에서 경신행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기도했다. 그러나 특별한 의식을 갖추지 않고 기도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언제나 은밀한 것이었다. 그에게 기도는 예배의식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한 대화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종종 “아빠”라고 불렀다.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전례적이거나 제사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예수님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제사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의 실천이었다. 복음 선포를 위해 끊임없이 여행하면서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고, 군중과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하고 완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순종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그의 순종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가 아니라, 갈릴래아의 길가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기적을 행하고, 아버지를 증거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교회는 누구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제도가 아니다. 교회의 정체성과 정당성은 그가 받은 사명의 실천에 있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봉사는 교회를 확장시키고 공고히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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