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는 사제도 회사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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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는 사제도 회사원도 아니다
  • 참사람되어
  • 승인 2024.05.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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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세상에 온 예수는 ‘교리’에 관심 없다 -4

예수의 고독, 뒤따름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어떠한 숭배의 말이나 경신행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를 예언자로서 혹은 메시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으로 떠받든 것은 아니었다. 예수가 신으로 경배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가 원한 것은 단순한 종교적 경신행위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아 계속 수행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다.(마태10,39)

예수님의 제자됨은 예수님을 신으로 받들기 위한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가 됨에 있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고파는 회사의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예수님의 길을 뒤따름에 있다.

그러니 예수님은 늘 고독했다.(마르 1,35; 마르14,32-43) 그러나 그 고독은 수도승의 그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늘 군중 한가운데 있었다. 그는 늘 사람들과 만났다. 한 사람 한 사람과 구체적으로 그들 자신의 문제에 마주치면서. 그러면 교회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교회는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마주치고 있는가?

 

예수의 평화

예수님의 평화는 구약성서의 ‘샬롬’(shalom)과 같다. 샬롬이란 함께 있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뜻한다. 샬롬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연대성을 드러내는 징표이며, 서로 더불어 함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구약성서에서 샬롬은 항상 정의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정의로운 평화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이 될 때 하느님 나라가 성취된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느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의 평화는 참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 즉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불의,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과 죄와 거슬러 투쟁하라는 하느님의 호출장이다.

불의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어떤 교회도 어떤 그리스도인도 평화를 운운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를 원한다. 모든 인간이 하나 되고, 분열과 적대의 벽이 허물어지는 평화의 길은 철저한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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