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모린, 수호천사에 모든 걸 맡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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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 수호천사에 모든 걸 맡기는 삶
  • 도로시 데이
  • 승인 2022.10.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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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의 빵과 물고기 16-피터 모린, 인격주의자

우리는 우리의 피터 모린을 끔찍이 사랑했으며, 그를 성인처럼 존경했으나, 또한 그를 소홀히 하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우리가 환대의 집의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았을 때, 그는 좀처럼 자신의 방을 갖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을 위한 침대가 있다는 것조차도 결코 알지 못하였다. 젊은 편집자들은 자신들의 책상을 가지고 있었고 사적인 영역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피터는 그의 머리를 뉘일 곳도 책이나 종이들을 둘 자리도 없었다. 다만 그의 넓직한 주머니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는 의자도, 식탁자리도 자신에게만 속한 것을 놓을 구석도 없었다. 그는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을 사용하고 오직 필요한 것만을 이용하며, 모든 여분의 짐들을 버리며 살았던 순례자이고 지상의 이방인이었다. 나는 천천히, 한가롭게 뒷짐을 지고 깊은 생각에 잠겨서 거리를 걸어내려오는 그를 생각한다. 그는 교통신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수호천사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피터 자신에게서 그의 인생살이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오직 생각들에 흥미가 있었지, 자신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조금씩 조금씩 나날이 그의 배경에 대하여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피레네산맥 쪽에 있는 프랑스 남동부의 울테트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9살이었을 때 죽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재혼하였다. 그의 가족은 모두 합쳐 23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피터는 가끔씩 그들 마을의 공동체적인 모습들에 대하여 언급하곤 하였는데 의심할 바 없이 이런 모습들이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가 빵 굽는 오븐과 밀가루를 갈 수 있는 공동의 제분기를 가지고 있었다. 모린 가족은 모두 함께 큰 돌집에서 살았으며 양들은 지하층을 차지하였다. 피터는 마을 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파리에 있는 크리스챤 형제회 학교를 다닌 후 그곳에서 교사가 되었다. 그의 누이들과 형제들 또한 교사들이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수도회에 가입하였다. 한때 피터는 프랑스에서 코코아 세일즈맨이었다. 잠시동안 그는 마르크 사니에가 지도자로 있었던 「밭고랑」이라고 하는 평화주의 정치운동에 가담하였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왔을 때, 피터는 캐나다 서부에 정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자작농을 했다. 후에 그는 제재소 노동자가 되어 떠돌아 다녔다. 그는 비합법적으로 뉴욕주를 통해 국경을 넘어왔으며 강철공장이나 석탄광에서 일했고 도랑과 하수구를 파거나 시의 임대주거지역에 수위로 일하면서 동부와 중서부주 전역을 여행하였다.

한번은 시카고에서 불어를 가르치는 어학 학원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그는 잘 생겼고 옷도 잘 입었으며, 외관상 성공한 듯이 보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는 이 사진을 가족에게 보냈는데 가족은 나에게 되돌려 보냈다. 한번은 피터가 무엇인가를 말했을 때 나는 그때에 그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결혼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그는 단순히 “아니” 라고 말하였다.

아마 1920년대 초쯤 그는 시카고를 떠났으며 거리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다. 이것이 손으로 노동하는 비숙련 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사도직이었다. 피터는 말하기를 즐겼는데, 다른 사람의 땀보다는 자신의 땀으로 먹을 것을 벌었다.

우리에게 오기전 몇 년간 그는 뉴욕의 트렘퍼산 근처에 있는 청소년 캠프장에서 경비원으로 겨울을 편하게 보냈는데, 마굿간에서 말과 함께 잠을 자며 길을 보수하고 여름캠프에 쓸 얼음을 자르는 일을 하였다. 그는 야채와 빵을 먹고살았는데, 마을상점에서 일주일에 2~3 달러를 넘게 사본적이 결코 없었다. 만일 그가 참석하길 원했던 회합이 뉴욕에서 있었더라면 그는 왔을 것이다. 때때로 본당의주임이며 캠프장을 시작했던 몬시뇰이 그에게 급여를 주고, 하루에 1달러씩 생활비를 지급하였다. 가끔씩 그는 차를 얻어타기도 했다. 그는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었는데, 나를 만나기 전 7년 동안 그곳에서 나에게 전해준 생각들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나는 피터가 원했던 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올비스사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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