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냄비는 비지 않을 것이며 난로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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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냄비는 비지 않을 것이며 난로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 도로시 데이
  • 승인 2022.10.03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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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의 빵과 물고기 15-아기는 항상 겨드랑이에 빵 한 덩어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뉴욕의 환대의 집에서 우리는 다량의 커피와 설탕, 우유, 차 그리고 마가린을 구입한다. 우리의 정육점 주인은 매우 싼 가격으로 우리에게 고기를 제공해주는 친구이다. 우리는 시장에서 무료로 생선을 얻는데, 그것은 살을 떼어낸 황새치의 꼬리와 머리들이다. 매 금요일마다 우리는 그것으로 잡탕 요리나 구이를 해 먹는다. 어떤 때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먹을 만큼 양이 충분하다. 또 가끔씩 누군가가 우리에게 쌀을 건네주는데, 그러면 아침식사로 그 쌀을 끓이는데, 씨리얼처럼 설탕과 탈지유를 섞어서 내놓는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단지 음식 하나만이 아니다. 집세를 내기 위해선 현금이 있어야 한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농장세를 빼고도 집세는 매달 1000달러 이상이 되는데, 지금은 일년에 1500달러이고 매년 올라가고 있다. 겨울엔 특히 환대의 집과 12개 아파트의 가스와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

봄, 가을에 우리는 도움을 청하는 호소를 내보낸다. 우리는 시에 이런 호소를 보고 해야한다. 즉,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이고, 들어오는 돈은 얼마이며,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월급이 지불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시나 정부, 혹은 연방세를 내지 않았으며, 우리의 회계는 꽤 간편하다. 3월과 10월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독자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게 하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때때로 나는 마리의 이야기와 같이 궁핍에 대한 실화를 말하는데, 마리는 해산할 시기가 되어 우리에게 오기 전까지 한 오래된 빈민가의 건물 비상구에서 그녀의 남편과 밤을 보냈었다. 어떤 때 나는 음식을 먹으러 줄을 서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마음을 감동시키는 은총으로 가득하고 하느님께 눈을 돌리게 하는 성서 이야기들을 되풀이하는데, 예를 들면 끈질기게 빵을 청하는 과부의 이야기, 손님에게 줄 여분의 빵을 빌리러 왔던 친구의 이야기, 노간주 나무아래에서 먹었던 엘리야, 사자굴에서 살아난 다니엘의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가톨릭자선단체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이러한 호소문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에 교회나 정부에 청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스펠만 추기경이나 뉴욕시장이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떠맡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일어났을 뿐이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며, 말 그대로 복음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할 때에 그 결과로 생기는 일이다.

“그대에게 청하는 것을 그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그가 그대에게서 빌리려 하는 것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적들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박해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교회나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가톨릭일꾼> 신문을 정규적으로 보고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실하게 관심이 있으며 아마 도울 의지도 있고 도울 수도 있는 개인들에게 요청한다. 많은 사제와 주교들이 개인 자격으로 해가 지날수록 도움을 준다. 어쨋든 들어온 돈들은 당장 내야할 고지서를 맡아주고 남은 빚을 지불하도록 도와주며, 계속 지탱하게끔 해준다. 남는 돈은 전혀 없으며 항상 우리를 근심스럽게 하는 약간의 빚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도와주려는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과 우리가 좀 더 같아지도록 해준다. 늑대는 문가에 있지 않으며, 우리 옆을 따라 걷고 있다. 우리는 또한 성 프란치스꼬가 했던 것처럼 그를 친구로 만든다. 우리는 필요한 도움을 주시라고 기도하는데, 그러면 도움이 온다.

한 번은 우리가 200달러를 초과해서 인출하였다. <가톨릭일꾼> 신문을 펴내고 있었던 인쇄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 조그만 현성용 교회에 멈춰서 성 요셉에게 기도하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보니, 한 여자가 우리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차와 토스트를 대접했으며, 그녀는 자기 길을 갔고 우리가 과도하게 지출한 만큼의 정확한 액수의 돈 봉투를 우리에게 남기고 갔다. 우리는 필요한 것에 대해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받게된다, 그러나 물론 여러번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거절당한다. 이렇게 도움을 계속 요청하는 것은 힘들지만 우리는 계속 요청한다. 한번은 우리와 함께 머물던 한 늙은 언론인이 뇌일혈로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그 노인을 위해 시트를 살 돈과 목욕옷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돈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환자의 친구였지만, “그는 내 책임이 아니오”라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은 깊은 감동의 대조적인 체험들에 의해 균형을 잡는다. 또 다른 경우에 나는(내가 그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마이클 그레이스에게 도움이 필요한 한 가족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일년을 넘게 그 가족을 돌보았으며, 그 집의 가장이 고통스럽지만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수술을 받고 회복하여 다시 일할 수 있을때까지 돌봤다.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하길 좋아하는데 계급 투쟁적인 내 태도가 이 일 때문에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세례자 요한은 “외투가 두벌인 사람은 외투가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요청해야 한다. 나는 우리들이 인도의 비노바 바베가 한 것처럼 부자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도우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실행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저 실천을 통해서 그 일을 조금 쉽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러분의 풍요로움이 그들의 궁핍을 채우도록 하십시오”라고 성 바오로는 말한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은 작게 소유하는 것이고, 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이 문제는 끝없는 논쟁을 이끈다. 그러나 원칙은 여전히 같은 것으로 남는다. 즉 우리는 우리 형제들의 지킴이들이다 라는 원칙이다.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 그 이상은 무엇이든지간에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인색하게 뿌린다면, 인색하게 거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빵이나 거주지보다 훨씬 더 많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생존에 있어서 약하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면에서도 약한사람이라면, 당신 또한 겸허하게 형제감을 느끼며 받아야할 것이다.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아주 단순하게 받아드리도록 하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알로샤의 단순성을 항상 감탄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방식으로 준다면, 배로 갚음을 받을 것이다. 늘 충분할 정도가 될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즉 “음식냄비는 비지 않을 것이며 난로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것까지도 주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종종 빵의 증가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 옥수수빵과 환대의 집에 있는 마지막 음식 한 조각으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대가족이라면 이러한 일들을 안다. 즉 어쨋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은 자연스럽게 될 것이고 신앙적으로 이루어진다.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올비스사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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