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가난하게 산다는것,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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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가난하게 산다는것, 쉽지 않다.
  • 도로시 데이
  • 승인 2022.09.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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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함” 혹은 불안정은 진실한 자발적 가난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인 마르티니끄 사제가 우리에게 편지를 썼었다. “진실한 가난은 드물어요,”라고 그는 쓰고 있다. “오늘날 수도공동체들은 물론 선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가난에 대해선 잘못 알고 있어요. 그들은 가난을 원칙으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반드시 좋고 강해야 합니다. 건물들은 튼튼해야 합니다. 불확실함은 어디에서나 거절당하지요. 그런데 그 불확실함이 가난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잊었지요. 이곳 우리 수도원은 경당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

최근에 와서 우리들이 거주하는 건물은 거의 쓰러지고 있어요. 곳곳에 보조받침대를 박았기 때문에 아마 2~3년은 더 지탱할 겁니다. 언젠가 그것은 우리 머리들 위로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미있을 겁니다. 불확실함은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을 더 잘 도울 수 있게 해 줍니다. 한 공동체가 항상 건물을 짓고 확장하고 치장을 하면 그 공동체자체에는 좋을지 모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쓸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빈민가들이 있고 어디에서든 빵을 타려는 줄이 있는한 그렇게 치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부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재산의 사유권을 가질 수 있는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일정한 양의 재화는 선한 삶을 사는데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에릭 길은 사람에게 재화는 “적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교종들은 마침내 자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의가 노동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썼다. 비록 생활비가 점점 증가하고 전쟁물자 생산에 의존하는 사실들을 볼 때에 그것 자체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점점더 느끼지만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더 높은 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가톨릭일꾼의 경험들은 가난, 불확실함 그리고 궁핍의 영향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이 원칙들에 의거하여 살아간다. 3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 하지만 궁핍하지는 않다. 아아! 나는 우리의 기준이 이전에 지켜지던 것보다 더 높아지는 것이 두렵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전쟁에 책임이 있다. 전쟁에서 돌아와 가톨릭일꾼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된 젊은 남자들은 하루에 2~3번 고기를 먹는데 익숙해 있었다. 1930년대에 우리는 일주일에 겨우 두세번 고기를 먹었을 뿐이었다.

1930년대 중반의 <가톨릭일꾼> 신문에서 발췌한 이 글은 그당시 우리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두 달 동안 우리는 가장 특별한 기부를 받았는데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인디아나에서 수송된 30다스의 달걀꾸러미가 있는 바구니였다. 그리넨씨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우리가 먹은 그 달걀들은 다 풀어 후라이팬에 익혀먹을 때는 괜찮았으나 반숙했을 때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유황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구인 미나스는 계란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음직하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처럼 동양적인 입맛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선한 달걀들이여! 우리는 달걀에 관하여 찬양의 기사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침 신문을 보고 구색 맞게도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을 라디오에서 들으며 부드럽게 익힌 달걀을 아침식사로!

가톨릭일꾼 사무소에서 거행된 세례식은 긍정적이게도 걸맞게 달걀축제가 되었다. 부르클린, 브롱스, 맨해튼, 뉴저지와 롱 아일랜드 시에서 온 손님들은 8나라를 대표했는데 맛있게 달걀들을 먹었다. 실로 달걀이 없었다면 축제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한번, 그리넨씨, 고맙습니다!”

나는 우리가 신문을 처음으로 내기 시작했을 때 이웃의 궁핍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려는 노력으로 가구를 치우고 상자들 위에 앉아 지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물건들을 치우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더 많이 가져왔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가정들에게 담요를 주었으며, 첫 환대의 집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한 담요를 모두 모아 주었다. 우리가 음식을 내주면 더 많은 음식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것들 중 몇 가지는 외국의 식품이었는데, 캐나다 노스웨스트사에서 온 사슴고기, 메리랜드에서 온 굴 깡통, 일리노이에서 온 꿀이 있었다.

이런 음식들은 지금도 계속 들어온다. 심지어 우리는 대륙을 횡단해서 날아온, 시애틀의 연어도 받았다. 가톨릭일꾼에서 일하는 누구도 월급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일이 계속되도록 우리를 지원하고 도우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가난 즉 명성에 대한 가난을 경험한다. 우리는 약간 경멸조로 “왜 그들은 일자리를 갖고서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지? 왜 그들은 구걸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가?”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비판들에 대하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14시간을 부엌과 세탁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찰스나 에드, 아서에게 월급을 주는 것, 여자들의 집을 운영하고 하루종일 기사를 쓰고 편지답장을 하며 아픈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는 딘 혹은 진, 다이엔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들 모두는 받은 월급 모두를 다시 일꾼에 돌려주었을 것이다. 혹은 만일 우리가 우리 상황을 훨씬더 번잡하게 만들길 원했다면, 그들 모두는 밖에 나가 일자리를 얻어서 그들의 식사비와 밥값을 지불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하여 돈을 집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해지는 것이 훨씬 더 단순한 것이다. 구걸하는 것이 더 단순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우리 모두가 매여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책, 라디오, 타자기 같은 도구들, 옷들에 매여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갈 때 우리는 기뻐하지 않고 비통해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시간과 사적인 것을 원할 때 항의한다. 우리는 또한 이런 “좋은 것들”에도 매여있다는 것이다.

가난의 정신으로 살려고 시도하는 것이 우리를 실제로 골치 아픈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매일 수백명의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쉬운 과업이 아니다. 그리고 필요한 식량의 값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신앙과 희망의 시험이 된다.

환대의 집의 위치는 한가지 면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몇 몇 도시들에 있는 환대의 집들은 식당이나 심지어 병원들에서 많은 음식을 얻는다. 그러나 뉴욕시에선 그런 남은 음식을 수거하는 것이 법에 저촉된다. 때때로 나는 이 규칙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비행기 승무원인 우리친구가 분개하여 발을 굴렀다. “비행이 취소되어서 백 개의 닭고기 파이가 버려지게 되었으므로 그것들을 가톨릭 일꾼에 보내자고 하자. 그들이 ‘안돼’ 라고 말했다. 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는 모두 버려져서 뉴저지에 있는 돼지들의 먹이가 되었다! 나는 농부들이 폐기물 처리 허가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올비스사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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