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하느님에게, 프란치스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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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하느님에게, 프란치스코 너는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9.13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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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꼬 저는], 까를로 까렛도, 분도출판사, 2004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만난 하느님은 가난했다. 어느날 프란치스코는 맨돌로 쌓아올린 조그맣고 가난한 성당의 고요한 적막 가운데 서 있었다. 다미아노 성당, 그 성당에 걸린 십자가 위에서 “프란치스코야, 내 집 좀 고쳐다오. 너도 보듯이 다 망가졌단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분은 너무나 가난해서 프란치스코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은 바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고, 그분은 힘있는 사람들의 추천도 받지 않고, 당신의 권능과 신성이라는 갑옷 속에 숨지도 않으면서 사람들 가운데서 걸어 다니셨던 분이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말째의 인생을 받아들인 분. 그분은 하느님이시지만,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로, 약한 자로, 상처 입은 자로, 무고당한 자로, 수감자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로 계셨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입을 빌어 “아씨시의 여러분, 동정해 주세요. 돌 좀 주세요. 하느님의 성당을 제가 손질해야 하니까요”하고 말하게 만든다.

도리어 인간에게 청하시는 가난한 하느님 때문에 프란치스코 역시 가난한 자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저 가난하기만 하고, 매우 슬프고, 곧잘 성이 나 있고, 도무지 복되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느님의 그느르심 아래, 하느님의 현존에 힘입어, 자신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냉대를 받아도 사랑할 줄 아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참아내며 늘 희망에 차 있으며, 곤경에 빠져서도 꿋꿋한 가난한 사람. 자신의 삶 안에 계신 하느님이 자기들을 곳간 없이 사는 하늘의 새처럼 돌보아 주심을 드러낼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느님의 솔개가 심장을 움켜잡은 프란치스코, 너는

프란치스꼬 저는, 까를로 까렛도, 분도출판사, 2004
프란치스꼬 저는, 까를로 까렛도, 분도출판사, 2004

샤를르 드 푸코의 ‘예수의 작은형제회’ 수사인 까를로 까렛도는 <프란치스꼬 저는>(분도, 2004)이라는 책에서 프란치스코 입장이 되어 다미아노 성당 바닥에서 맨발로 춤을 추던 프란치스코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래하고, 웃고, 울고, 땅바닥에 뒹굴고... 하느님의 솔개가 제 심장을 움켜잡아 그 사랑의 몸부림에서 솟구치는 행복감을 더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이 책에서 까렛도 수사는 “가난이란 창조의 한 실수가 아니라 인간이 신비를 만나게 하며, 하느님을 찾아 나서고, 자기 자신을 끝까지 내놓게 하는, 어쩌면 창조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이라고 말한다. 가난이란 하느님께 버림받은 결과가 아니라, 깊은 곳에서 베푸시는 하느님의 벌거벗은 사랑을 캐내는 참다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난이란 어디보다도 하느님의 손길이 와 닿은 곳, 참다운 사랑의 가장 좋은 배움터, 자비를 불러들이는 가장 강력한 매력, 하느님과의 스스럼없는 만남, 이 땅을 건너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었어요”라고 프란치스코는 말한다.

그리고 이 가난에는 짓밟히고 굶주리며 고문당하고 천대받는 이들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처럼 가난한 자가 되어 연대하는 길이다. 까렛도 수사는 복음의 이름으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게릴라 투쟁에 가담했던 가밀로 토레스 신부를 존경한다면서, 그러나 ‘비폭력’의 방법으로 정의를 갈망하는 길을 으뜸으로 여긴다.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좋은 길은 “나의 무방비한 사랑으로, 맨손으로, 상대방을 항복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남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로메로 대주교처럼 자기 자신의 피를 흘리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증언하는 게 곧 ‘순교’다.

 

“거룩해지게, 그러면 자네들에게 세상이 거룩해 보일 걸세”

한편 “교회로서 우리는 계속 거룩하고도 죄스럽고, 이상을 찾으면서도 사악할 수 있고, 평화의 터전이면서 패권의 소굴이기도 하다”며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을 살라고 요청한다. 까렛도 수사는 “나의 교회야, 나의 교회야. 네가 아무리 못생겼어도 너는 언제나 나의 교회다”라는 말을 통해 흠결 많은 교회라도 사랑 안에 머물자고 권한다. 까렛도 수사는 프란치스코회의 작은형제들에게도 프란치스코의 입을 빌어 당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입이 싼 은행원이 내게 말하기를, 자네들의 은행계좌가 꽤나 두둑하다던데... 자네들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하겠네. 자네들에게 돈이 있으면 제발 잘 써요. 우리가 다 함께 그토록 사랑하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써 주어요. 내가 백 주년 경축 기간에 순례자의 옷을 입고 아씨시로 돌아오거든, 자리가 없다고 코앞에 문을 닫아 버리지는 말아요. 다른 사람들도 아닌 바로 자네들이 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매정하게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건 못된 짓이지.”

그리고 이 말도 덧붙인다. “나의 형제들아, 자네들이 나를 프란치스코 형이라고 부른다면 이렇게 말하겠네. 거룩해지게, 그러면 자네들에게 세상이 거룩해 보일 걸세.”

까를로 까렛도 수사는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는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쯤은 성인이 되기를, 성인이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끔 부르주아적이고 무미건조한 생활에 몰려 이 세상의 길목에서 광명과 형제애의 메시지를 전하고, 거저 베푸는 사랑의 제단 위에 가난과 사랑을 입증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까렛도 수사는 “그럴 때에 프란치스코가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평화가 사라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겉보기보다 훨씬 깊으며, 생각보다 더 큰 아픔을 준다면서, 까렛도 수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평화와 기쁨을 되찾을 희망을 프란치스코에게서 발견한다. 프란치스코의 나르니 동굴에 앉아. 이 누추한 암자가 “형제애는 가능하다”고 전하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은 아버지시라고, 조물들은 자매들이라고, 평화는 기쁨이라고” 알아듣는다. 마음만 있다면, 프란치스코와 함께 꿈을 꿀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마음만 있다면,
해 보세요. 형제 여러분,
해 보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실 겁니다.
복음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비폭력은 폭력보다 건설적입니다.
정결은 부끄럼을 모르는 환락보다 더 맛스럽습니다.
가난은 부유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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