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신비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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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신비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1.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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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 저항], 도로테 죌레, 이화여대출판부, 2006

저는 중국 무협영화를 좋아합니다. 이소룡이나 성룡보다는 이연걸과 견자단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선호합니다. 이소룡은 격투장면 밖에 남는 게 없고, 성룡은 오락영화라는 생각만 듭니다만, 이연걸과 견자단의 영화는 상무(尙武)정신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무인은 상무정신을 “위기에 맞서는 용기”라고 하더군요. 굳이 이연걸과 견자단 가운데 선택하라면 견자단을 더 좋아합니다. 영화 <무협>과 <엽문> 시리즈에 등장하는 견자단은 강한 절제와 민중에 대한 어짊(仁)이 있고, 앞으로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분별이 있습니다. 그저 영화를 통해서 본 견자단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지다는 것이지요. 우유부단함이 때로 겸손으로 포장되고, 비겁함이 배려심으로 드러나는 위선에서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약자를 섬기며,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들이 종교를 닮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른바 천주교운동권에 오래 머물다 보니, 마음으로는 늘 ‘혁명적 그리스도인’을 꿈꾸지만, 자괴감처럼 고이는 것은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저의 현실이지요. 그래도 그런 언어 안에서나마 위안을 받고 있으니 구제불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년기에는 김지하에게서 ‘시와 혁명의 통일’이라는 언어를 배웠고, 지금은 ‘혁명적 신비주의자’란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맞닿은 것은 남루한 일상을 다르게 보는 낯선 시선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혁명적 신비주의의 출발점이라고 말입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을 창립한 도로시 데이는 환대의 집과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으로 유명하지만, 실상 그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매 순간 그녀가 치러냈던 일상의 혁명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를 참느라’ 고생했다고 고백하는 도로시 데이는 노숙인들을 매일같이 만나면서 바닥에서도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모양입니다. 신비주의자에게 혁명이란 매일을 하느님 안에서 잘 살아내는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참에 도로테 죌레가 쓴 <신비와 저항>을 읽고 10년 넘게 그 뜻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신비주의를 보편화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독일 신학자 도로테 죌레(1929-2003)는 사소한 일상 안에서 신비주의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비주의적 감수성이란 “삶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하느님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나의 온 세포를 열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민감성을 회복하고, 이 세상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분의 생생한 현존을 느끼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테지요.

 

도로테 죌레
도로테 죌레

신비주의: 저항은 신비의 결과물이 아니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프리드리히 폰 휘겔(1852-1925)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제도적(조직), 지성적(교리), 신비적(경험) 요소를 지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틀을 짓는 역사적, 제도적 요소들은 ‘사도 베드로의 영역’이라 부릅니다. 철학과 교리적 해석이 발전시킨 분석, 사변적 요소는 ‘사도 바오로의 영역’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의지와 사랑의 행위와 연관된 직관적, 감성적 요소는 ‘사도 요한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도로테 죌레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신학자로서 제도교회와 학문적 신학에서 고향 같은 안락함을 느끼지 못했고, 다만 신비적 요소만이 자신을 끌어당겼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에서 ‘하느님의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복음’이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고, 새롭게 하시며, 구원하신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로테 죌레는 신비주의라는 말이 자칫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비껴나 있는 여유 있는 계층이라 말할 수 있는 수도자나 성직자들의 독점적 소유라거나, 어떤 심미적 영역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런 오해는 아마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성인/신비가들이 세상에서 분리된 공간에서 하느님과 독점적으로 밀회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도로테 죌레는 세상을 등지고, 이별하고, 고독에 빠져있는 신비주의자보다 세상 한가운데서 분투하며 하느님의 얼굴을 찾았던 신비가들을 흠모합니다. 교회개혁을 주도했던 아빌라의 데레사, 혁명적 농민군 지도자 토마스 뮌처, 대량학살 무기를 파기한 예수회 신부 다니엘 베리건이나 가톨릭일꾼운동을 했던 도로시 데이 등입니다. 이들은 그들이 살던 세상을 지배했던 가치를 거부하면서 세상 한가운데서 신비주의적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신비주의는 ‘저항’이란 정치적 표현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도로테 죌레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파괴적 세상을 거부하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는 혁명적 영웅을 숭배하자는 게 아니라, 죽음에 길들여진 교회의 영적 토대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죌레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유 안에 거닐지 않고, “하필이면 한 감옥 안에 잠들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들이 그 감옥에서 탈출하라고 우리를 부를 때, 그들이 보여주는 내적 빛을 따라서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빛나는 영혼들과 맺는 저항의 연대성 안에서 우리는 신비적 경험으로 나아갑니다.

도로테 죌레는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일부가 되어야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네스 보브로브스키가 말한 것처럼 “관찰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을 위해 세상의 주류 가치에 거슬러 저항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그대 조용한 외침’이라고 부를만한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테 죌레는 “저항이란 신비의 결과물이 아니라 신비 그 자체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뒤에야 세상에 거슬러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에 거슬러 투쟁하는 것 자체가 신비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머물지 않고서야 그렇게 용감하고, 시련이 동반하여도 기쁜 낯빛으로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관철시키기 위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일구려는 모든 현실적 싸움은 영적 투쟁이 됩니다. 그래서 도로테 죌레는 저항과 신비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에 대한 다른 태도를 꿈꾸지 않고, 노래 없이, 의식 없이, 춤 없이 어떠한 저항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들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뉴욕의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1869-1940)은 말했다.”

 

사진출처=flickr.com
사진출처=flickr.com

관상과 실천 사이: 마리아와 마르타

도로테 죌레는 저항/행동하는 삶과 신비/관조하는 삶을 구분짓는 이분법에 반대합니다. 전통적으로 관조하는 삶을 행동하는 삶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던 관행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마르타 사이에서 우열을 가르고 싶어 하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루카 10,38-42 참조) 그것은 교회 안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자기변호를 위해 행하는 해석이거나 허위의식이라고 봐도 틀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집에 묵어가도록 대접하고, 다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조용한 경청과 마르타의 끊임없는 일상사의 물리적 욕구에 대한 걱정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관조하는 삶이 더욱 가치 있고 고귀한 것, 영적인 것,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행위적 실천은 필요하지만 관조에 비하여 가치가 떨어지는 하위의 것으로 분류되었다. 마르타는 이 전통에서 필요한 일을 하였으나 제한된 것으로 보여졌고, 그녀의 자매인 마리아는 더욱 영적이고, 더욱 섬세하며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순수한’ 이론은 단순한 실천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견해다. 서양의 정신사에서 이러한 태도는 머리의 일과 손이 하는 일 사이의 관계성은 남성과 여성의 가부장적 사회적 역할로 분배되어 전승되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1260-1327)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았습니다. 엑카르트는 아직 자기 일을 마치지 않은 마리아를 영적 생활의 초기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타는 자매인 마리아가 안락감에 빠져 달콤한 도취에 머무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엑카르트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는 복음서 본문을 이렇게 고쳐 읽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는 마르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마르타야, 마리아도 (역시) 좋은 몫을 택했다. 마리아가 행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다. ... 그러나 그녀 역시 너처럼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마이스터 엑카르트가 복음서 본문의 의미를 이렇게 바꾸려고 한 것은 일하는 사람과 꿈꾸는 사람, 행동하는 이들과 내면적인 사람들, 행위의 생산성과 경건한 감수성 등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태도를 없애려고 한 것이라고 도로테 죌레는 설명합니다. 행동과 관상은 위계적인 것이 아니라 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관상은 적합하게 행동하게 만들고, 이론과 실제는 해체될 수 없으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도로테 죌레는 그래서 바오로 사도처럼 황홀경에 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국 한 그릇 끓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두고 아빌라의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 집에 머물게 하고, 그분과 항상 함께 하고자 한다면 마리아와 마르타가 모두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믿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할 수 없었을 테고, 먹을 음식도 대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비주의자에게 관상과 실천은 함께 흐른다는 뜻입니다.

도로테 죌레에게 하느님은 “조용히 외치는 분”이라 합니다. 겸손하게 걷고 용감하게 행동하시는 분이라 합니다. 깊은 곳을 응시하며, 높은 곳으로 차오르는 새인가 싶습니다. 부드럽게 피아노 건반을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연주가 시작되면 폭포처럼 내리 꽂히는 손끝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주로 이사와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몸은 이곳에 묶여 있었고, 고요하고 적막한 봄여름가을겨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라곤 집을 떠나지 않고 집안을 돌보며, 마당을 가꾸며, 고양이 시중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웹진 편집하고, 강의 동영상을 녹화하는 게 전부라고 보면 됩니다. 갑갑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사람을 그리워 하다 접고, 윤동주처럼 자화상을 들여다 보곤 합니다. 제 이야기 같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간본)

 

* 이 글은 <공동선>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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