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와 연민의 사람, 김홍섭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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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와 연민의 사람, 김홍섭 판사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12.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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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요한복음 묵상 [지상에 몸푼 말씀]-37

신기료 할아버지

-김창완

 

걸어가시라 신발 해진 이 기워 신고
넘어야 할 고개 몇 개라도 넘으시라.
아직은 아무도 이르지 못한 땅 끝으로
거기 당신네들 발길이 헤맬지라도
땅 끝까지 안심하고 걸어가시라.
무딘 송곳, 밀 먹인 실, 허리 굽은 귀 큰 바늘
키 작은 구두못 여기 모두 모였으니
당신네들 안심하고 걸어가시라.
떠돌며 십 년 주저앉아 십 년
굽은 등에 햇살 받고 다시 몇 년 기약없이
다리 부러진 돋보기로 지내 온 길 돌아보니
돌자갈 가시밭길 험하기도 하여라.
이 세상 모든 신발이여 앞길 또한 그러하나
새 신보다 헌 신이 발 편한 줄 아시라
닳은 뒷굽 갈아 대고 터진 앞창 기워 신고
당신네들 갈 길로 걸어가시라.
걸어가시라 개오릿들 건너 샛말 지나
두고 온 우리 동에 고샅길 꺾어 돌아
왼쪽으로 세 번째 집 머무를 곳 거기
못 가는 사정 아는 이 없어도 서운치 않나니|
사과궤짝 위 낡은 구두 몇 켤레여
먼지와 해으름과 눈곱과 잔기침과
그런 것 아랑곳 말고 걸어가시라.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그러자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하고 물으니, 수석 사제들이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요한 19,12-16)

무상을 넘어선 김홍섭 판사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바오로딸)라는 유고집을 남긴 김정훈 부제의 아버지는, 그 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김홍섭 판사이다. 김홍섭 판사는 평생을 가난과 청빈 속에서 살면서 숱한 종교편력을 일삼다가,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 천주교회로 귀의하였다. 그는 두 마디로 인생을 요약했다. 구도와 연민이다.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가련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재판석에 앉기를 싫어했다. 전쟁 때 그 자신도 배가 고파 배급을 더 타먹은 적이 있는데, 굶주림을 참다못해 남의 집 장독에서 장을 좀 거둬 갔다고 심판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평생을 법관으로 살면서도 양복 한 벌 제대로 입지 않은 청렴한 법관이었던 김홍섭은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컸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의 죄를 묻는다는 것 자체를 어렵게 여겼다. 그래서 한때는 법복을 벗어버리고 뚝섬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짓고 닭과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한국전쟁 당시 부역자로 몰린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들은 사상과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난리통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총칼 아래서 부역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들을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둔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련한 인생 앞에 심판관으로 나서기를 꺼려 했던 그분은 교도소를 찾아가 죄수들에게 영적 변화를 주는 데 관심을 쏟았다.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책을 넣어주고 대부를 서주었다.

물론 본인은 누구보다도 철저한 신앙인으로서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 프란치스코 제삼회 회원으로 서약했던 그이가 간직했던 《준주성범》은 하도 읽어서 닳고닳았다. 그리고 훗날 펴낸 《무상(無常)을 넘어서》라는 책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심판을 ‘사상 최대의 오판’이라고 썼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김홍섭 판사는 죄인을 미워하지 않았다기보다 죄인을 사랑하였다. 더구나 예수님은 죄도 없이 죄인으로 심판받았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겠는가.

리토스트로토스

빌라도는 이 역사상 최대의 잘못된 재판을 위해서 리토스트로토스 위 재판석에 앉아 있었다. 리토스트로토스란 ‘돌 깔아 놓은 자리’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율법과 카이사르의 이름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유다인들은 “율법대로 하면 그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요한 19,7)라고 예수님을 고소했으며, 그들에게 왕은 오직 카이사르밖에 없다고 하였다.

예정되어 있는 판결을 위해서 사전행사도 있었다. 병사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홍색 용포를 입혔다. 그리고 소리를 모아 “유다인의 왕 만세!”를 외치며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19,2-3).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의 이 몰골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면서 “자, 이 사람이다.” 하고 피고인을 가리켰다.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동족을 굳이 죽이려고 하는데, 가뜩이나 민중소요를 걱정하고 있던 터에 이처럼 재미있는 일은 아마도 빌라도에게 없었을 것이다.

그는 굿을 보고 떡만 먹으면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관대한 지배자처럼 행세하면 족했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냐?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을 모르느냐?”(19,10) 결국 몸이 단 유다 지도층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만일 그자를 놓아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카이사르의 적이 아닙니까?” 하고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19,12).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를 너(빌라도)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가 더 크다.”라고 하였으며, 유다인의 극성에 밀려 마지못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상 예수님은 민중반란을 진압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의 군대와 유다 지도층의 음모 때문에 죽을 운명에 얽혀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이름만큼이나 평범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집을 짓는 대신에 미래세계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하느님 나라’라는 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이 나라를 몸으로 살고 선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이 세계에 끌어들인 사람이었다. 그는 하느님을 ‘아빠(abba)’라고 다정하게 불렀으며, 그의 제자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의 세계, 즉 폭력과 권위주의에 입각한 세계상을 타파하고 어머니와 형제, 자매로 이루어진 자모(慈母)적 공동체를 희망하였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을 택하여 살고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간적 품위를 되찾아 주었으며,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는 권위주의와 군대의 힘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로마 제국과 유다 지배층에 도전하는 반역행위였다. 그 결과 예수는 죽을 지경에 놓인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자발적으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지배층의 심장부를 공격했기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민족

네로 황제는 온 백성의 목숨을 주고 빼앗을 수 있는 황제의 권리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세네카는 전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만이 기쁨을 느끼고, 지상에서 신적인 직책을 수행하는 자로 선택되었는가? 나는 민족의 생사를 결정하는 주(主)인가? 각 사람의 운명과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내 손에 달렸는가? 내 결정이 백성들과 도시에게 기쁨의 원인이 되는가? 내 자애로운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는가? 내 평화가 통제하는 수천의 검사들은 내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가? 어느 민족을 멸망시켜야 하고, 어느 민족을 이주시켜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 빼앗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왕을 노예로 삼고, 왕에게 어느 수행원을 딸려주는지, 어느 도시를 멸망시키고 어느 도시를 존속시켜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내 판결이 결정하는가?”

황제는 백성으로부터 숭배받아야 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원로원은 집정관과 사제가 5년마다 황제의 안녕을 위해 기원할 것을 결정했으며, 시민들도 신전에서 황제의 건강을 위해 기도할 것을 선포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곧 죽음을 불러오는 행위였다.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것은 곧 로마제국의 지배를 확실히 굳히는 행위였다. 아엘레우스 아리스티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로마인들은 처음부터 자유롭고,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목적에 맞는 것들을 찾으려 했으며,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국가 형태를 찾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확고한 법과 규칙을 제정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들 아에네아스에게 “너 로마인이여. 명령으로 민족을 통치하고 평화의 법을 제정하여 항복 한 자들을 경계하고 반역자들을 쳐부술 것을 항상 명심하라.”고 말하곤 했다. 로마 제국의 이러한 거대한 힘과 교만함에 비하여, 유다교 지도자들의 태도는 오히려 구차하다고 말해야 옳다.

 

사상 최대의 야수 그리고 아우슈비츠

유다의 지도층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 로마 제국의 힘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후 40년이 지난 다음 바로 그 로마군대에 의해 유다인들은 대량으로 학살당했다. 유다인은 맛사다 전투에서 끝까지 로마 제국에 저항했지만 어린아이까지 자살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그 이후 유다인들은 세계의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틀러 제3제국에 의해서 다시 한번 대량학살을 당해야 했다.

1941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 아우슈비츠 나치 포로수용소 제4동에서 대규모 선발대회가 있었다. 3천 명이 넘는 유다인 여자들이 이 선발대회에서 행진을 해야 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나 회슬러와 에나, 케오니히라는 의사 앞에서 알몸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침상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번호를 받았는데,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매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나 너무 마른 사람들, 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독일인들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 사람들 역시 번호를 받았다.

번호를 받은 사람들은 알몸인 채로 다음날 트럭에 실려 갔다. 그곳은 화장터였다. 트럭은 이내 감자나 석탄을 쏟아놓듯이 이들을 부려놓았다. 이들이 쓸려 들어간 방은 샤워실 같았다. 수건과 분무기, 심지어 거울까지 걸려 있었다. 조만간 가스가 스며들어왔다. 사람들은 처음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서로 고함지르고 때리기조차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이승을 떠났다. 이렇게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2백5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나치의 다카우 수용소에서 일했던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란츠 블리하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대략 7천 구의 시체를 해부했으며, 건강한 죄수를 대상으로 약 5백 건의 수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수술은 나치 친위대의 의과 대학생들과 의사들을 위한 교육용 수술이었는데 복부·담낭·비장·기관지와 같은 위험한 부위를 겨우 2년밖에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이 공부 겸 실습으로 수술한 것이다. 죄수들은 수술대 위에서 죽어가거나 수술 후 합병증으로 죽었다.

클라우스 쉴링 박사는 1천2백 명 가량을 대상으로 말라리아 실험을 하였다. 라셔 박사는 건강한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기압변화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였다. 유다인들은 한 번에 25명씩 필요에 따라서 압력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대형 트럭에 태워졌다. 이 실험의 목적은 고공비행과 급속한 낙하산 하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이용된 대부분의 죄수들은 폐와 뇌에 내출혈을 일으켜 죽었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병동으로 옮겨진 후 곧 사형에 처해졌다.

또한 라셔 박사는 찬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였는데, 바다에 떨어진 비행사들을 살려낼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실험대상이 된 사람들은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에 던져져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 속에 있어야 했다. 온도가 1도씩 떨어질 때마다 매번 그의 목에서 피를 뽑아 체온을 측정했다. 그들은 죄수들의 몸에서 가죽을 벗겨내 화학처리하여 햇볕에 말렸다. 가죽이 마르면 각각 다른 크기로 잘라 말 안장, 장갑, 슬리퍼, 여자 손가방 등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세계 정복을 위한 인종차별

그러나 이를 두고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유다인에게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던 유다인 지도층의 어리석은 욕심을 탓해야 하며,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세계 지배를 위해 이용했던 제국의 야망을 단죄하여야 한다.

수세기에 걸친 유다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은 언제나 지배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유럽의 지배층은 항상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다인들의 재산을 약탈해 왔으며, 히틀러 역시 유다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세계 정복을 통해 게르만 혈통의 우수성을 입증한다는 명목으로 유다인들을 학살하고, 경제공황으로 굶주린 독일 시민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를 종교적으로 변호해주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말이다. 여기서 다시금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 교인들은 구도와 연민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않고 진리만 따르기 위해 구도심(求道心)을 잃어버리지 않고, 결국에는 연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태도가 요청되는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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