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청년의 벗, 조셉 카르댕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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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년의 벗, 조셉 카르댕 추기경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10.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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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요한복음 묵상 [지상에 몸푼 말씀]-30

 폐업-박영근

새 한 마리 흐린 하늘을 울고 있다

배고프게 흘러가는 공장굴뚝 연기 몇 모금 훔치고 있다

아아, 가을비 치고 찬서리 깔리면
한 마음 디딜 곳마저
차갑게 얼어붙으리

어서 날아가자, 절벽 같은 허공을 찢어
피 묻은 부리에 쟁쟁한 햇살 몰고
우짖던 노래
꿈에 젖어 외롭게 하늘을 흐르다
노을 속 탄다, 새여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1-9)

서글픈 나막신 소리

벨기에 브뤼셀 하크르가 (街)에 자리잡은 블롱도가 (家) 집사 부부가 둘째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조셉 카르댕이다. 부친 앙리 카르댕은 아내와 함께 블롱도가에 일을 나갔다. 남편은 그 집안의 마부 겸 정원사 노릇을 했고, 아내는 집안 청소와 부엌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던 해에 하알로 더부살이를 갔고 그때부터 손수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그 시절만 해도 고된 노동계층의 가정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 아기자기한 맛이 없었고 속을 털어놓거나 잔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집안은 한 덩어리가 되어 고락(苦樂)을 나누었다. 그저 천진하기만 한 조셉 카르댕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였으나 쾌활한 성품을 지녔다. 그리고 조그만 마을인지라 미장이 · 수장이 · 신기료 장수 · 빵가게 주인 · 목수 · 재봉사 · 농사꾼 · 마구상(馬具商)을 비롯 대장간의 일꾼들과 심지어 놀이터에서 이빨 뽑아주는 사람과 거지들마저도 낯이 익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이 그들의 일 솜씨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네들에게 말을 걸고 연장을 만지작거리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침 저녁이면 소년의 눈에는 서글픈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르댕의 집 앞으로 가까운 촌락에서 모여 오는 남녀 노동자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것이다. 근처의 제지공장 · 유리공장 · 주물공장 특히 튀비즈의 인조견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튀비즈의 방직공장은 에테르산 (酸) 을 써서 일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았고, 여인네들은 그 약품에 취하여 체신을 잃는 일이 흔했다.

아직 잠자리에 든 새벽 4시, 바둑돌로 포장된 골목길로 나막신 끄는 소리에 잠을 깬 조셉은 창 밑으로 지나가는 기다란 행렬을 바라보곤 했다. 거기엔 10대 소년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자기 또래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반쯤 졸면서 어른들의 손에 끌려 일터로 갔다. 어른들은 서로 수군거리곤 했다. 광부들이 파업을 했다. 경찰들이 그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다.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노동조합원들은 집회를 하러 하알로 내려왔다. 거의 다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사회문제에 일찍 눈뜬 단스(Daens) 신부가 등장했다. 회합을 조직하고 그리스도교 교리에 입각한 사회의식을 고취시켰다. 조셉도 아버지를 따라서 그런 회합에 몇 번 참석했다. 함께 놀던 조무래기들 틈을 빠져나와 어른들의 강연회를 찾아다니곤 했다. 이런 어두운 시간들이 소년의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조셉은 또래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이는 순전히 부모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하알에서 조그만 석탄 파는 가게를 열었으며, 어머니는 술집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생활형편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셉은 사제가 되기로 마음 먹었고, 이 역시 부모들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맬 결심을 하였던 까닭이었다. 결국 조셉은 메헬른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방학이 되어 조셉이 기숙사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아무도 그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다들 공장 노동에 지쳐 있었으며, 노동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던 교회에 대한 환멸에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조셉 카르댕에게 그것은 무서운 경험이었다. 옛 친구들은 조셉을 ‘꼬마 신부’라고 부르면서, 사제들이란 노동자들을 이해할 줄 모르며 노동자들을 역경에 내버려 두는 자들이라고 욕했다. 카르댕은 이미 자신이 ‘노동자의 원수’요 자본주의 착취자들을 감싸주는 ‘사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에 조셉은 “마치 내 가슴이 비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며 평생을 두고 고백했다.

 

빈민의 보호자이며 평화의 사도, 조셉 카르댕

1906년 사제로 서품을 받은 조셉 카르댕은 라컨의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동료 사제들이 병자성사를 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를 빼고는 전혀 발을 들여놓지 않는 노동자 거주지, 빈민가를 늘상 헤집고 다녔다.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노동세계의 그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14년, 독일군이 벨기에로 진주해 왔을 때는 저항운동에 참여하였다. 성구둘라 성당에서 전몰자를 위한 장엄미사를 봉헌하면서 독일군의 침공을 규탄하고, 1916년에는 브뤼셀 그리스도인 노동조합원 13만 명의 이름으로 벨기에 노동자들이 독일로 징용당하는 데 대한 공개 항의문을 점령군과 중립국들과 교황 앞으로 발송했다. 그 대가로 조셉 카르댕은 군사법정에 서야 했다. 13개월 징역과 130마르크의 벌금형, 그리고 생질 형무소 58호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감방은 결코 빈 방이 아니다. 감방은 온갖 공상과 환영으로 항상 꽉 차 있으며 그것이 죄수의 생활이고 목표이다. 감방생활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언젠가 나의 생활로 되돌아간다는 간절한 소망과 정열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여태까지보다 백배의 정열과 깊은 확신과 굳은 각오를 갖고 하리라는 결의이다. 타인과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염원은 격한 분노로 응어리지기까지 한다. 고통은 시련과 장애에 부딪혀 사람의 용기를 굳혀주는가 보다.” 감방은 그에게 오히려 귀중한 사색의 시간을 주었다. 성서를 다시 읽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꼼꼼히 읽었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새 세계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세계는 혁명과 투쟁과 파괴를 겪지 않고는 오지 않으리라. 평화롭고 조용하게 새 질서가 들어서기에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분노가 쌓였고,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너무나 많은 불의가 저질러졌고, 너무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다.”

노동청년의 벗, 노동세계의 추기경

전쟁 이후 카르댕은 열성적으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의 건설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평신도들의 사제직을 믿고 있는 현대의 가톨릭 사제였다. 카르댕은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지 청년들을 모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청년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가꾸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는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해방하시는 노동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였다. 이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렛대로 하여 노동세계를 ‘들어 높이는 것.’이 카르댕의 생각이었다. 그만큼 카르댕은 노동자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복음적 정신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르댕이 노동자들의 당파적이고 정치적인 요구를 자주 옹호하고 나서자, 주교들과 교회의 부유한 권력층은 카르댕이 사회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고발하였다. 이들은 단지 노동자들에 대한 자선을 좋아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조직화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카르댕의 노동청년운동은 질풍노도같이 번져나갔다. 그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으며, 이미 늙어버린 메르시에 추기경도 가톨릭노동청년회를 방어할 능력이 사라져 갔다. 결국 카르댕은 이 문제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판결해 주도록 맡겼으며, 교황은 의외로 “이제야 마침내 대중에 관해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반가워하며 카르댕의 청년운동을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브뤼셀 JOC 창설 10주년 기념식에는 8만 5천 명의 청년노동자들이 참석했고, 그 중에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온 유럽과 캐나다 · 콜롬비아 · 콩고 등지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1937년에는 프랑스 JOC회원만 6만 5천 명을 헤아렸다.

노동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카르댕 신부는 교회에서 노동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현실을 어려서부터 보아왔으며, 이는 곧 교회가 노동현실에 냉담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왔다. 이는 단순히 젊은 노동자들에게 더 열심히 교리교육을 시킨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가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문제였다. 이미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노동헌장⌟을 발표하여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적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연대를 극구 반대하였고, 기업가들의 선의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교회에서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주의운동이 노동계급을 지도하면 할수록 교회는 사회주의운동뿐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를 거부해 왔던 것이다. 이에 카르댕 신부는 교회에게 복음과 노동세계의 현실을 제대로 볼 것을 주장했다. “반(反) 사회주의와 반공주의로는 노동자 계급을 구하고 교회에서 멀어진 민중을 다시 교회로 이끄는 데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주의 안에는 하나의 진리의 핵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점을 사람들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즉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에 세계를 구원할 임무, 메시아적 사명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강점이다. 공산주의를 논하는 교황의 회칙은 문제를 부정적인 면에서만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내용이 공산주의를 말살하는 방법만을 찾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노동자 계급의 사명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결국 교황 비오 12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JOC가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JOC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계급투쟁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JOC는 그리스도와 마르크스라는 두 주인을 섬긴다는 비방을 받았다. 즉 노동운동을 지지하면 마르크스를 지지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곧 그리스도를 버리는 행위라는 어거지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바오로 6세 교황에 이르러서야 매듭지어졌다.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은 83세의 카르댕 신부를 추기경으로 지명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노동세계의 구원을 위한 확신이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었다. 비오 12세의 비판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을 즈음 1950년, 52개국에서 1만 명이 넘는 남녀 노동자들이 브뤼셀에 모였으며, 거의 10만 명이 넘는 노동청년들에게 카르댕 JOC 총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박한 노동자 한 사람을 하나의 선봉투사요, 동료 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는 사도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순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작고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드러내시고 크고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감추셨으니 감사하다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는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또 역사를 보십시오. 작은 이들이 교회를 키워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 이들의 부요함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쳐내실 것이며,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전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뭇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으로 살지 못하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와 같이 버려져 말라 죽을 것이다. 그들이 포도나무와 같이 포도맛을 내는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비 복음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포도맛을 내어야 하느님 보시기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은 땅에서 노동하며 생명을 키우는 ‘농부’라고 표현된다 (요한 15,1).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대로 노동하는 인간이므로 당연히 존엄한 존재이며, 그들의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억압적 노동 속에서 고통받는데도 이들의 해방을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은 농부이신 하느님을 능멸하는 것이며, 그분과 그분의 아드님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곧 노동세계의 인간화를 위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곧 예수님과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이 마당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5,12)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5,13) 라고 전한다. 이는 투신적 사랑이다. 그리고 투신적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이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알게 되고, 이제부터 그들은 종이 아니라 ‘벗’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15,15). 이 벗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택하여 세운 사도들이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15,16)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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