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고집센 하느님, 또는 섬세한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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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고집센 하느님, 또는 섬세한 하느님
  • 마크 H. 엘리스
  • 승인 2021.07.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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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공동체에서 보낸 1년-3월 7일, 10일

3월 7일

오늘은 날이 좀 풀렸다. 기분 좋은 변화이다. 햇빛이 빛나고 있었고, 나는 워싱턴 광장으로 산보를 나갔다. 가는 길에 바우어리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했다. 첫번째 만난 대일은 4번가에서 후작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다음에 6번가에서 만난 죠안은 블라우스 정장을 하고 주머니에 작은 위스키 병을 넣은 채였다. 그 후에 블리커가를 건너면서 나는 공원 스프라인에서 만난 나를 알아보는 세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마침내 워싱톤 광장에 들어섰을 때 또다른 친구가 내 손을 붙잡고 흔들어 대며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낄낄댈 수 있는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한 주일전 마크가에 있는 극장에 해롤드와 모드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일꾼 집과 가까웠고 1달러 내고 두 개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마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간다. 값은 쌌고 극장은 따뜻하기 때문에 많은 바우어리 사람들이 그 오후를 채우고 있다.

내가 앉았을 때 두 줄 앞에 스프라인에서 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머리는 길었고 외투의 이를 죽이고 있었다. 내 왼편에는 또 다른 남자가 의자에 파묻혀서 팔은 한쪽으로 떨어뜨린 채 주머니에서 포도주병이 굴러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절대로 마크가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영화를 즐겼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310

오늘밤 미사는 존경과 웃음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당신은 미사의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 주일 전에는 윌이 주님의 기도 때에 유리창을 내리쳤다. 오늘밤에는 신자들의 기도 지향이 그 절정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조용했다. 암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위한 기도가 봉헌된다. 다시 침묵이다. 오랫동안 일꾼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는 레스터가 무신론의 공산주의패배를 위하여 또한 러시아의 어머니 교회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마가렛이 웃었다.

마이클에게서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는 랄프가 마이클이 스프 만들기를 중단하기를 바라며 기도를 한다. 마이클은 첫번째 줄에 앉아 있다. 죠안이 지하실에서 올라와 복도에 비틀거리며 앉아서 루스가(지하실에서 죠안과 함께 자는) 돼지이고 도둑년이라고 불평한다. 루이스는 거실에 서서 미사에 가는 거룩한 위선자들에 대하여 중얼거리고 보통 하는 방식으로 죠안에게 반응을 보인다. “, 마담, 술에 취하고 싶으면 내가 너를 치기 전에 어서 꺼져 버려”. 제프가 나서서 루이스와 죠안이 싸우기 전에 루이스를 진정시킨다. 샤론이 낄낄댄다. 물론 미사는 계속된다

그러나 하느님과 예수의 말씀이 오로지 미사 때와 저녁기도 때에만 이 집에서 들리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한 일이다. 아무도 은총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상담도 별로 없다. 이곳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의 삶에 관여하는 하느님의 역할에 관심을 가져도 그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가 역력하다. 누가 가톨릭이고 아닌가에 대한 구분이, 누가 믿고 안 믿는가의 구분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내 문제의 일부는 종교교육에서 쓰여지는 용어의 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전능하신 왕 하느님,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누가 하느님인가 묻는다면 범주화 된 대답이 있다. 하느님은 …… 당신 주변에는 하느님이 누구인가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이 사는 방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믿음은 눈에 띌 만한 사람의 사랑이나 관심을 증가시키지 못했다. 말씀이신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고 정의하면서도, 효과와 그 정신은 상실되고 말았다.

이곳에선 웅변도, 특징에 대한 정의도 누가 하느님이며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하여도 쉬운 대답이 보이지 않는다. 때로 당신은 타인을 섬기면서 거기에서 떠오르는 하느님을 느낀다. 아마도 이 섬김 안에서 성령이 발견되는 것 같다. 그러나 확실히 하자면 크고 고집센 하느님이 아니라 섬세한 하느님을 발견한다. 또 때로는 당신과 혹은 다른 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고통받는 그분의 현존을 느낄 것이다. 어떤 때는 부서진 그분의 몸을 볼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때에는 당신이 은총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낀다.

 

마크 H. 엘리스 /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의 저자. 엘리스는 미국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유다학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다학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그는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쓰고 편집했다. 그의 대표작은 <해방의 유다신학>, <거룩하지 않은 동맹>, <우리시대의 종교와 포악성>, <예언의 미래: 고대 이스라엘 지혜의 재현> 등이 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극우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팔레스티나와의 평화로운 연대에서 찾고 있다. 최근에는 <불타는 아이들: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유대적 관점>(2014), <추방과 예언: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이미지>(2015)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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