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시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
상태바
뚜벅뚜벅 시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
  • 가톨릭일꾼
  • 승인 2021.03.16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사진=장영식.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 간의 '희망뚜벅이' 행진은 정의의 길이요 인간화의 길이며 민주주의를 향한 멈출 수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사진=장영식)

2020년 12월 3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청와대까지 걷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호포역에서부터 ‘희망뚜벅이’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 때 ‘한진스머프’로 알려졌던 빛바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항암으로 옷을 줄여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달려왔습니다. 원동역까지 걷는 길에는 한 걸음을 떼어 놓기가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손에는 동그란 하얀 부채가 있었습니다. 그 부채 한쪽에는 “한진중공업 고용 안정 없는 매각 반대!”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가 구호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이른바 ‘부채요정’의 등장이었습니다.

김진숙과 희망뚜벅이

12월 31일 오전, 원동역에 도착했을 때는 10여 명의 ‘희망뚜벅이’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남대의료원 고공 농성을 진행했던 박문진 지도위원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해찬 스님도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험한 천태산을 넘어 삼랑진역에 도착했습니다. ‘희망뚜벅이’들의 행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십 명에서 때로는 2~300명 대오로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청와대로 가는 길에서 비바람을 맞기도 했고, 눈보라를 맞기도 했습니다. 서영섭 신부는 단식 36일째가 되는 날,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계속 울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전역을 눈앞에 둔 옥천에서 노모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긴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신탄진역에서 다시 합류하여 청와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었습니다.

충북과 충남을 지나는 길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인 녹색당 성미선 씨가 40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녹색병원으로 달려가서 성미선 씨를 면회하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로 향하는 중에는 경찰병력의 제지가 시작되었습니다. 평택에서부터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합류했습니다. 전주에서 문규현 신부와 골롬반 외방선교회 함 페트릭 신부도 함께 걸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평택역에서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던 땅. 공장 밖 천막 농성장에선 아이들이 자라고, 공장 안에선 ‘오 필승 코리아’가 귀를 찢고, 돌팔매가 난무하던 곳. 이곳 평택엘 다시 왔습니다.”라며 “이곳 평택을 떠나 부산 영도까지 부르튼 발로 핏자국을 찍으며 천리길을 걸어왔던 쌍차 동지들. 11년 만에 그 길을 거슬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승리의 시간은 짧고, 고통의 시간들은 길지만, 우린 또 헤치고 나갈 것입니다. 그 길이 노동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정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존중’ 사회는 어디로 갔습니까?

저는 솔직하게 경기도로 접어들기 전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소식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기다리던 복직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로 접어들면서 대오는 더 늘어났습니다. 대오가 늘어난 만큼 경찰병력도 증가됐습니다, 인덕원역을 향한 행진 때에는 세월호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님과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 군의 어머니 김미숙 님께서 동행해서 ‘3숙’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미숙 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29일 동안 단식을 했었습니다.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인 남태령 고갯길은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서울로 진입하면서 ‘희망뚜벅이’ 대오들보다 경찰병력이 더 많았습니다. 남태령을 지나면서 경찰들은 인도로 걷는 행진 대오를 제지하기 시작했고, ‘희망뚜벅이’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청와대를 향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부채요정’의 부채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에서 “‘노동존중’ 사회는 어디로 갔습니까?”라는 글귀로 바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렵게 열린 노사교섭에서 사측은 전혀 해결 의지 없이 기만으로 일관했습니다. 사측은 ‘복직’이 아니라 ‘재취업’을 주장했습니다. ‘배상’이 아니라 ‘위로금’과 임원들의 ‘성금’을 모아서 일정액을 지급하겠다며 교섭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송경동 시인이 국회의장과 면담을 가진 후 국회의장실에서 물과 효소마저 끊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경비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왔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이 과정에서 실신하여 병원으로 이송되며, 생명의 위중함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밤에 “국회로 가겠다.”라고 했지만, 만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덕원역에서 흑석역까지는 대오가 500명이 넘어섰습니다. 강정에서 문정현 신부도 오셨고, 과천 시민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깃발들을 가로수에 걸어 두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흑석역에서 녹색병원으로 달려가 송경동 시인과 성미선 씨를 면회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46일을 굶고, 국회에서 끌려 나왔던 시인이 웃습니다. 세상 마음이 놓이는 웃음. 치료도 받고 물 같은 미음도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성미선 님은 이제 2단계 보식을 시작하셨구요. 두 분 다 몸에 치명적인 손상이 남겼지만, 치료에만 집중하셔서 얼른 뽀얗게 회복하시길”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사진출처=장영식
사진출처=장영식

김진숙의 길은 정의의 길이며 인간화의 길

2월 7일. ‘희망뚜벅이’들이 청와대로 가는 날입니다.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강대교를 건넜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한강 다리 위에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침묵하는 정치권과 청와대가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날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청와대의 무능이 절망적이었습니다. ‘배임’만을 강조하는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설득하지 못하는 잔인한 한국 사회가 아팠습니다.

서울역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에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거리 두기를 준수하며, “김진숙 복직”을 위한 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길 위에서 이들을 만날 때마다 부채를 흔들며 화답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날 때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군사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 청운동 거리는 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뚫고 청와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와대 앞에서 코레일 네트웍스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앞 마지막 단식자들인 김우 씨와 금속노조 부양지부 정홍형 수석을 만나 눈물의 포옹을 나눴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 48일을 단식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겠습니까. 얼마나 미안하고 아픈 일이었을까요. 김우 씨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웃음을 “곧 피어날 매화처럼 어쩌면 목련처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서 감동적인 발언을 합니다. 그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 가는가.”라며 비수 같은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청와대를 향해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딱지가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절규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동지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부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느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해고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정권이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진보시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절규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진심으로 가지고 있는 애증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이틀 일정을 빼고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걸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걸었던 길은 김진숙의 복직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복직 문제 보다는 해고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이는 한국의 노동운동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걷는 길에는 대우버스와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과 LG트윈타워 비정규직 해고 청소 노동자들과 코레일 네트웍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아사히 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아시아나 오케이 해고노동자 등이 함께 걸었습니다. 김진숙의 길은 불의에 저항한 정의의 길이며 인간화의 길이며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김진숙의 길은 우리 모두가 함께 복직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김진숙의 길은 시대의 길입니다. 이 길에 함께 걸어서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1년 봄호.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게재했던 ‘포토 에세이’를 수정하여 기고하였습니다.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