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에르 "굶주린 자는 빵을 갖게 하고 빵을 가진 자는 정의와 사랑에 굶주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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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피에르 "굶주린 자는 빵을 갖게 하고 빵을 가진 자는 정의와 사랑에 굶주리게 하라"
  • 방진선
  • 승인 2021.01.24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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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피에르 신부 선종 14주년

경애하는 카푸친 작은형제회 아베 피에르 신부님(1912년 8월 5일 ~ 2007년 1월 22일 ) 善終 14주년

終生토록 <단순한 기쁨> 속에 사시다 소박하게 이승을 떠나신 수도승 

유언따라 맨바닥에 누운 육신과 수도복과 베레모와 나무지팡이와 더불어 하느님 품에 안긴 성인 !

묘비명에 새겨진 敬天愛人의 삶 

"Il a essayé d'aimer”He tried to love-사랑하려고 애쓴 사람 !

● 철두철미한 하느님 사랑의 잣대로 실천한 편가르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랑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우리가 또는 그들 스스로 비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분이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단순한 기쁨>)

 

● 생전의 가르침 

☞ 존재론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걸까요?'그러면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요.' ”

☞ 정의론

굶주린 자는 빵을 갖게 하고 빵을 가진 자는 정의와 사랑에 굶주리게 하라.

☞ 지혜론

지혜란 우리가 현명해져서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오. 지혜란 라틴어로 ‘sapere’ 즉 ‘음미하다’ 또는 ‘맛보다‘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그 기쁨의 순간에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맛본 것입니다.

☞ 실천론

우리는 가난하지만 궁핍을 뛰어넘고 베푸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도 마음을 담아 나누고 구원을 베풀 수 있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부족한 것이라곤 없는 여러분이 그런 일을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이것이 엠마우스 운동이다.

☞ 희망론

희망을 소망과 혼동하지 말자. … 희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 없어질 보잘것없는 육신을 땅 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 신앙론

온갖 잔혹한 행위들이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그럼에도 내 신앙생활의 핵심은 세 가지 확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 내 신앙의 첫번째 토대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확신이다. 두번째 토대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세번째 토대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확신이다.

☞ 자유론

자유는 내가 아무렇게나 사용하거나 내 변덕에 따라 사용하면 할수록 자유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특성을 지녔다. 그와 반대로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갈망하는 어떤 일들을 단념하기를 받아들인다면 나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 이것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하느님을 자신의 절대적 자유의 장애물로 여기고 하느님을 거부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에 의지한다면, 이는 절대권력에 대한 욕망에 자신의 자유를 이용하는 것이 되어, 그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으로 인해 자유를 파괴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 그 역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다소 제한하는 인간은 전보다 더 자유롭게 된다.

☞ 죄악론

진짜 죄는 우리가 어리석게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처럼 육욕의 결과가 아니라 자만심인 것이다. "나는 앞으로 하느님에게 의존하지 않겠다. 홀로 자족하리라. 그 어떤 구원자의 도움도 내게 필요치 않으며,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게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하는 데 나의 자유를 사용하고 싶다. 바로 이 순간 카인이 아벨을 죽이며,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를 짓밟는다. 한마디로, 인류의 전 역사가 범죄와 폭력과 불의의 무리와 더불어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우리가 자유로이 하느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킴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가 사랑에 봉사할 때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 선행론

고통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신앙에 대한 설교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 관계론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너는 홀로 족하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홀로 족하거라!' 그와 반대로, 천국은 무한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빛에 에워싸인 채 나누고 교환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신자
Senex et Operarius Studens 窮究하는 늙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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