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씨GreenC, 비자림로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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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씨GreenC, 비자림로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 장영식
  • 승인 2020.08.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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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아름다운 비자림로는 한라산으로 붉은오름으로 사려니숲으로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을 옆에 두었다, 앞에 두었다 하며 비자림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길입니다. 비자림로 숲은 그 길의 일부(2.94km)이며, '제주 제2공항 연결도로'라고 불립니다.(사진=장영식)
아름다운 비자림로는 한라산으로 붉은오름으로 사려니숲으로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을 옆에 두었다, 앞에 두었다 하며 비자림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길입니다. 비자림로 숲은 그 길의 일부(2.94km)이며, '제주 제2공항 연결도로'라고 불립니다.(사진=장영식)

'그린씨(GreenC)'를 처음 만난 것은 2019년 6월이었습니다. 언론에서 보았던 비자림로 숲의 파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다가 무조건 비자림로 숲으로 달려가서 껴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모순되게도 탄소 배출의 원흉인 비행기를 타고 평화의 섬 제주를 향했습니다. 부산에서 제주를 가는 하늘길은 가덕도를 통과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라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가덕도는 ‘신공항’이라는 토건의 이름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제주 땅에 내려 버스를 타고 비자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비자림로 숲이 가까울수록 창문 밖의 풍경은 참담했습니다. 벌목된 삼나무들의 모습에 목구멍이 뜨거워졌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삼나무들이 토해낸 생채기들로 가득한 포장도로를 걸었습니다. 아프고 뜨거웠습니다.

비자림로 숲에는 삼나무들이 벌목되다가 중단된 채로 있었습니다. 숲에는 얼마나 많은 뭇생명들이 살고 있었는지요. 그 생명들 안에서 그 생명들과 함께 있는 사람과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숲에서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숲의 요정 그린씨를 만났습니다.

 

서울숲공원 내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2017 녹색여름전 워크숍'에 참여한 청소년들과 그린씨의 모습.(그린씨 제공)
서울숲공원 내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2017 녹색여름전 워크숍'에 참여한 청소년들과 그린씨의 모습.(사진=그린씨 제공)

그이는 2006년 10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첫 전시에서 '그린씨(GreenC)'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도 '그린씨'가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전에 그이는 서울에 살고 머물렀습니다. 그린디자이너, 생태예술강사, 작가, 비영리단체 멤버, 은평구 진광동의 '검바우마을학교' 마을PD, 학교운영위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과 인간 사이를 잇는 '녹색생각에 물을 주는 전시나 워크숍'을 기획하거나, 아이들이 자라는 마을에서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학교와 공원 그리고 에너지자립마을 등과 함께 마을예술제와 동네놀이터를 '함께 돌보고 만들고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린씨가 제주를 오가게 된 지는 8년 정도 되었고, 제주에서 뿌리내린 지는 3년이 되어갑니다. 그이는 2012년 3월, 강정마을 '구럼비'라는 너럭바위가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로 들었습니다. 그곳이 제주 남쪽의 작은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제주에서 사는 친구 덕분에 강정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마을 곳곳이 공사장 펜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린씨에게서 제주는 강정이 되었습니다.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은 4월 25일, 베어진 숲 비자림로에서 '제주환경선언'을 했습니다. (사진=장영식)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은 4월 25일, 베어진 숲 비자림로에서 '제주환경선언'을 했습니다. (사진=장영식)

2012년 12월로부터는 두 달에 한 번, 겨울에는 2~3달 머물며 강정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2018년 2월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가방 하나 메고 천주교 강정공소회장 정선녀(잔다르크) 님이 지내는 집으로 내려와 함께 제주도연합 여성농민회의 토종씨앗농사를 지으며, 공소회장님이 강정에서 일구는 생명평화농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깨져버린 마을공동체가 안타까워, 어느 날에는 부서진 구럼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그림을 그리며, 노령의 신부님이 주례하는 매일 미사와 강정지킴이들의 인간띠잇기를 하며, 사람이 그리운 삼거리식당 삼춘의 음식에 기대여, 시인이 된 농부삼춘이 농사지은 한라봉과 딸기를 담는 명함이나 홍보전단을 만들고, 그렇게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생명평화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속에 살았습니다.

문제의 '비자림로'는 한라산으로 붉은오름으로 사려니숲으로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을 옆에 두었다, 앞에 두었다 하며 비자림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비자림로 숲'은 그 길의 일부(2.94km)이며, '제주 제2공항 연결도로'라고 불립니다. 이 길을 지금의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면, 사라질지 모르는 10개의 오름과 5개의 마을로 연결되는 '금백조로‘(14Km)와 만나 다시 길을 확장해야 한다고 하며,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린씨는 비자림로 숲 속의 요정이 되었고, 한 그루 나무가 되었습니다.(사진=장영식)
그린씨는 비자림로 숲 속의 요정이 되었고, 한 그루 나무가 되었습니다.(사진=장영식)

그린씨는 이 길에서 비자림로 삼나무숲이 베어지는 풍경을 목격합니다. 2018년 8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사람이 되어 “어쩌면 우리도 베어질지 모르는 한 그루의 나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민모임은 더 이상 버틸 수도 없고 버티지도 못하고 있는 제주에 확정되지도 않았고, 확정될 수도 없는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군사기지화를 부추기는 제주도정과 정부를 반대하며, 비자림로 숲에서 시민모니터링과 나무 심기를 이어가며, 시민행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린씨는 ‘혼듸 자왈(더불어숲)’이 되기 위해 2020년 4월 25일, 50주년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베어진 숲 비자림로에서 시민들과 ‘제주환경선언’을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서고, 나무를 심었던 시민들과 최근 ‘혼듸자왈(더불어숲)’이 되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이는 나에게 “더불어숲이 되고, 나무가 되고, 좋은 흙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 함께 더불어숲이 되어요.”라고 말합니다. “제주에 산다는 것, 숲을 지킨다는 것은 수많은 무너짐과 깨짐, 그럼에도 살아가고 사랑하는 모든 행위를 품는 것이구나,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제주에 살며, 아꼬운(귀한) 이들과 속시끄러운 하루를 살고 살아갑니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비자림로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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