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조페의 ‘미션’에 영감을 준 예수회 선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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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조페의 ‘미션’에 영감을 준 예수회 선교사들
  • 짐 맥더못
  • 승인 2020.05.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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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500년 역사를 지닌 예수회의 수많은 사역 중 지금의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지역의 과라니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선교와 사목은 아마도 가장 전설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예수회 공화국’ 혹은 ‘잃어버린 낙원’으로 통칭되는 이들의 선교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17-18세기의 비전을 원주민 문화에 대한 존중과 결합시켰는데, 이는 애초에 이 지역에 대한 예수회의 접근을 허용했던 세속 권력을 격분케 했다. 한동안 과라니 사람들이 만든 교회음악은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예수회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노예 소유자 및 지주에 맞서 일어서자 결국 그들은 쫓겨났고 미션은 허물어졌다.

그 누구보다 필립 캐러맨, 맥내스피(둘 다 예수회 사제였다)에 의한 예수회-원주민 공동체(일명 Reductions라 불린다) 연구에 착안하여 워너 브러더스는 가톨릭 역사에서 빛나면서도 비극적인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 1986년 발표하였다. 영화 <미션>의 제작은 작품에 관계한 사람들에게는 예수회와 과라니 사람들이 체험했던 원(原) 경험의 요소를 예기치 않게 재현하고, 다음 세대의 선교사들에게는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모태가 된 이야기

1984년 크메르 루즈에 관한 드라마 <킬링 필드>가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그것은 롤랑 조페의 장편 데뷔작으로 오스카상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촬영의 크리스 멘지스, 편집의 짐 클라크를 포함하여 세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제작팀 구성원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하지만 조페와 그의 제작 파트너였던 데이비드 푸트남은 "킬링 필드"팀을 위해 몇 가지 더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있었다.

 

롤랑 조페와 로버트 드니로

<아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페는 이렇게 말했다. “<킬링 필드>를 만든 뒤 로버트 볼트, 그리고 이탈리아 제작자 페르난도 지아를 만났어요.” 볼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계절의 사나이>, <닥터 지바고> 등의 각본을 쓴 극작가로 파라과이의 예수회 공동체에서 자신을 속죄하려는 전직 노예상과 한 성스러운 예수회 사제에 관한 미완성 단계의 각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건 훌륭한 영화가 될 거라고 항상 생각해 왔어요’라고 했죠.”

“불쌍한 로버트, 그는 잊혀진 사람이었다.” 짐 클라크가 자신의 회고록 <꿈 수리공>(Dream Repairman)에 적어 놓은 말이다. 1979년 (로버트)볼트는 뇌졸증으로 오른쪽 반신 마비가 왔고 거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원하는 단어를 찾으려 애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페의 회고다. 그는 볼트에게 각본을 다듬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단서만 달고서. “우린 인디언들을 영화에서 살려낼 필요가 있어요.”

볼트가 동의하자 조페는 딱 들어맞는 원주민 공동체를 찾아 나섰다. 과라니족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일단 구성원 수가 너무 너무 적었죠.” 조페의 설명이다. “그들을 정말 쓰고 싶었지만 너무 학대받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여서 도저히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조페는 과라니족을 대신할 원주민을 찾아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 마침내 콜롬비아의 어느 외딴 지역에서 구성원 3백 명 정도 되는 와우나나 공동체를 발견하였다. 이들은 대도시 문명에 어느 정도 노출되긴 했으나 그다지 많이 노출된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 같은 것을 보긴 했죠.” 조페가 회상했다. “영화가 무엇인지 정말로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어요.”

“이상하게 예수회 사제들과 비슷한 상황에 빠진 나를 발견했어요.” 그가 말했다. “부족에게 어떤 스토리인지 설명하고 아마도 함께 나아갈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 설득하는 것 말이에요.”

그는 또한 과라니족이 경험했던 체계적 위협의 증인이 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의 제안을 듣고 부족사회는 수락 여부를 논의하는데 며칠을 보냈다. “저는 강가에 앉아 있었죠.” 조페가 회상했다. “그때 약간 나이 든 부부가 와서 내 옆에 앉았습니다. 남자는 자신들 둘은 당장이라도 우리와 함께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는 보증을 요구했죠.”

이것은 조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이들은 영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었다. “난 말했죠, ‘아, 그렇게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그는 그들이 왜 그런 조건을 달았는지 궁금했다. 담담한 어조로 남자가 조페에게 설명했다. “이 일이 끝나면 당신들은 우릴 죽일 겁니다. 우린 나이가 들었으니 죽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아이들마저 데려가면 우리 부족은 끝이에요.”

조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물었죠, ‘왜 우리가 당신들을 죽이겠어요?’ 남자가 대답하더군요. ‘우리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들은 언제나 그랬는걸요.’”

“아무런 비통함 없이 내뱉은 고발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고 난 후론 영화를 안 만들 재간이 없었죠.”라고 조페는 회고했다. 

예수회 사제 배역

차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음악가 가브리엘 신부와 전직 노예상 멘도사 역에는 제러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니로가 각각 캐스팅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영화평론가 빈센트 캔비는 나중에 배우들의 연기가 ‘자기 내세움 없는 성실성’을 지녔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촬영 중 클라크는 아이언스가 너무 젊은 것이 걱정되었다. “원래는 로버트 볼트가 신부 역에 알렉 기네스를 점찍어 두었다.” 클라크의 회고록에 적힌 말이다. 그리고 드니로의 연기 방식은 엄청난 편집 부담을 가져왔다. 매 장면에서 “그는 온갖 종류의 발성, 말투를 시도하여 통째로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결국, 클라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린 그를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캐내는 것이다. 그의 연기가 장면 장면에서 너무나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우리가 연기를 창조해내야만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조페는 예수회 평화 운동가였던 다니엘 베리건 신부의 조언을 구했다. “예수회 사제가 된다는 것의 심리적, 정서적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니엘 베리건 같은 사람이 대단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로 느꼈어요.” 조페의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나 단촐한” 베리건의 집에서 만났는데 대화를 나누던 중 조페는 베리건을 팀에 합류시키고 싶은 갑작스런 충동을 느꼈다. “그는 마치 얼빠진 사람 쳐다보듯 나를 쳐다보았어요,” 조페의 회상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안을 수락하더군요.”

베리건은 자문역할을 해 주었다. “그와 제러미는 거의 3주를 함께 틀어박혀 이야기를 나누었죠. 사제가 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요,” 조페의 회고다. “사제가 되어 얻는 것은 무엇인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국 조페는 영화에서 가브리엘 신부를 위해 일하는 예수회 사제의 한 사람인 세바스찬 역에 베리건을 캐스팅하였다.

나중에 베리건은 수개월간의 정글 경험에 대하여 <미션: 영화 일기>라는 책을 썼다. (제러미)아이언스에게서 그는 “준비된 영혼, 매우 유연한 정신, 조용히 나갔다 호기심 가득 돌아오는 듣는 존재”를 발견했다. “우리는 오랜 동안 믿음의 의미에 머물렀는데 내게는 믿음이란 것이, 말하자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다가와 구원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빛과 희망의 수단을 제공하는, 제삼자의 예기치 않은 개입 같은 것이었다.”

조페는 촬영장에서의 베리건의 존재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죠. 정말로 매력적인 영적 용맹 같은 것 말이죠,” 조페의 설명이다. “어떤 면에선 그는 내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습니다. 너무나 개방적이고 관심이 풍부한 그런 사람이었죠.”

“나는 그를 사랑이 최우선이라는 신념대로 살았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의 촬영에서 그는 자신의 순수성과 품격을 증명했는데 그걸 보는 것은 가슴에 북받쳤죠.”

감동을 받은 것은 베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배우들(모두 남자)은 뭔가 대담한 일을 시도하고 있다. 18세기의 무지, 욕정, 탐욕의 정글을 앞장 서 헤쳐 나가 오늘날에도 경이로움으로 숨이 멎게 하는 너무나 찬란한 유토피아를 창조하였던 예수회의 눈부신 정신을 이들은 흉내 내고 있다.” 조페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배우들이 영화라면 그에 대해서는 뭐라 부를 수 있을까? 인도하는 영혼? 성속(聖俗) 막론한 복음 전달자? 격려자?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 엄격한 강요자? 친구? 고해신부? 그는 이 모두에 해당한다. 사실 내게는 때론 그가 우리 중 유일한 진짜 예수회 사제로 보였다.”

 

즉석 은총

<미션>의 오프닝 씬을 보면서 관객은 조페와 그의 팀이 시도했던 일의 대담함을 즉각 알아챌 수 있다. 로스 엔젤레스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셰일라 벤슨은 영화 전체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이과수 폭포를 “영화의 스타”로 평했다. “난 폭포 전체를 거의 기어오르다시피 했어요. 납작 엎드려 기기도 했구요.” 조페의 회고다. “자연의 힘, 그것에는 놀랍고 겸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난 영화에서 그것을 정말로 포착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폭포는 콜롬비아의 주요 촬영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것은 와우나나 사람들이 비행기에 올라타야 함을 의미했다. “그들이 비행기에 타려할 때 내가 한 여인에게 물었죠, 지금 무서워요?”, 조페의 회고다. “그녀가 말했어요. ‘아뇨, 당신들이 나비를 먹이는 걸 보았기 때문에 무섭지가 않아요.’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들은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해 나만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역자 주; 비행기를 나비로, 그리고 연료 주입을 나비 먹이 주는 것으로 이해한 걸로 보임)

이 영화는 조페 뿐 아니라 배우들과 촬영팀에게도 여러 번의 실제 폭포 등반을 요구했는데 멘도사로 분(扮)한 드니로가 낡은 갑옷을 묶고 폭포를 오르는 놀라운 장면이 포함된다. “우린 매우 조심해야 했어요.” 조페의 말이다. 폭포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 “로버트(드니로)는 이리 저리 기어 다녀야 했는데 거기서 전갈이나 뱀을 보거든요.”

하지만 그런 순간에 드니로의 순발력은 엄청난 선물임이 드러났다. “정글 속을 갑옷 꾸러미를 끌고 다닐 때 그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온갖 것들을 주었습니다.” 조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촬영장에서의 놀라움과 도전은 “항상 생겼다.” 일례로 촬영 현장이 “우연히 산타 마르타 강을 따라 내려가는 코카인 루트에” 있었는데 “촬영팀을 지키는 군인이 자주 동행했기 때문에 코카인 딜러들과의 관계는 썩 좋지 못했다.” 코카인 딜러와의 소통을 위한 연락책을 통해서 조페는 촬영팀과 군인들이 매 금요일 특정 시각에 철수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비워둔다면 촬영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땐가는 조페 자신이 앉았던 상자에 예닐곱 마리의 산호뱀이 들어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맹독성 뱀인데, 내가 그들 머리 위에 앉아 있었던 거죠.”

하지만 조페는 이러한 도전이 장면을 더욱 풍부하게 했음을 발견했다. “우리가 경험했던 일과 하고 있던 일은 너무나 잘 융합되었어요,” 그의 말이다. “리조또를 요리하는 것과 비슷했죠.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적절한 풍미를 내는 것이죠.”

촬영 과정에서 조페와 그의 팀은 가브리엘 신부의 운명과 씨름했다. 원래 대본은 그가 포르투갈 병사들이 불 지른 교회에서 교구민들과 함께 죽는 것이었다. “우리는 밀턴의 신학에서처럼 악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을, 그래서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더 매력적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베리건의 기록이다. 결국 마틴 루터 킹과 간디의 사례가 가브리엘 신부의 운명에 대해 다른 대답을 이끌었다. 베리건은 이렇게 썼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자신 뿐 아니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생명까지 내맡기고 교회를 떠난다... 압도하는 적들, 최악의 상황에 맞서 최선을 이끌어 내면서.”

베리건은 자신이 제시한 캐릭터가 믿음과 친교의 유대(紐帶) 공동체라는 예수회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가브리엘과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조페는 동의했다.

 

인간 희원(希願)의 음악

<미션>을 가장 기억에 남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전설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사운드 트랙이다. 하지만 조페에 따르면 모리꼬네는 처음에는 곡을 만드는데 선뜻 나서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에 가브리엘 신부의 주제가로 알레산드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을 사용했습니다.” 조페의 설명이다. 모리꼬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개인 상영회가 있었는데 조페는 이렇게 회상한다. “끝나고 나서 모리꼬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글썽했죠. 하지만 곧이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롤란도, 이 영화를 위한 음악이 따로 필요 없어요. 난 마르첼로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조페는 모리꼬네에게 영화를 보여준 것이 큰 실수가 된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그의 제작 파트너인 푸트남은 그에게 좀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3주 뒤 전화가 왔어요.” 조페의 회상이다. “롤란도, 엔니오에요. 내게 자그마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러고 나서 피아노로 뭔가 연주하는 것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더니 이에 못마땅했는지 모리꼬네가 가브리엘의 오보에 협주곡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죠.” 조페의 말이다. “이건 그냥 자그마한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조페가 모리꼬네에게 말했다. “이건 영화 자체에요.”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조페는 자신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렇게 반추한다. “위로와 고독이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조합되었다는 생각이었죠,” 가브리엘의 오보에 주제가에 대한 조페의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둘이 함께 하는 것이죠. 외롭기도 하고 동시에 강렬하지만 이 둘은 놀랍도록 얽혀있어요. 저는 그것이 바로 인간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고 느꼈어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린 항상 이 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노래에 들어갔습니다. 인간에서 이 둘이 결합되는 순간에 피어난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쁨이 거기에 있었죠. 우리들 안에서 항시적으로 나란히 살아가는 외로움과 열망의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생기는 것, 기쁨은 그런 것이죠.”

영화 편집자로서 클라크는 모리꼬네의 작업에 대해 처음에는 겁을 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런던 필 하모닉과의 2주간 녹음비용이 25만 파운드였고(역자 주: 약 3억7500만원) 제일 첫 주의 연주는 “전혀 조율이 되지 않아 들리는 것이라곤 ‘찌잉~찡, 찌잉~찡’하는 소리가 전부였다.”

둘째 주에 다른 악기와 합창단이 들어오면서 제작팀은 모리꼬네가 창조해내는 사운드 레이어링(역자 주; 음악용어. 다른 사운드 소스를 섞어서 소리를 풍부하게 하는 기법)의 진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2주 동안 녹음한 뒤에야 우리는 실제로 음악을 알아들을 수 있었죠,” 조페의 말이다. “그건 장엄했습니다.”

조페에 의하면 모리꼬네의 음악은 “언어에 비해 전달력이 너무나 강해 음악이 지닌 풍부하고 환상적인 조합에 비하면 언어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동시에, 모리꼬네의 음악만큼 감탄할만한 것은 그것이 실제 과라니족의 음악 – 촬영 당시에는 거의 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 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션 시대의 음악을 연구하며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 30년간 지냈던 선교사 겸 음악학자인 피오트르 노롯은 1987년에 미국 예수회의 프랭크 케네디를 비롯한 서구의 학자들이 볼리비아에서 5천 페이지의 놀랄만한 악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사라져버린 음악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은 인디언들에게는 결코 잊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문서들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텍스트로 소중히 여겼다. “유대인의 성궤와 같은 것이죠. 어디를 가든 그들은 이 신성한 음악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음악이 그저 소리와 하모니가 아니었죠. 그것은 그들의 신성한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노롯은 모리꼬네의 음악에 대해 칭찬 일색이다. 노롯에 따르면 “모리꼬네의 프로젝트는 예수회-과라니 공동체의 음악에 최대한 비슷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라니 사람들과 예수회의 오리지널 음악이 제공했던 신성(神性)과의 만남을 관객들 안에서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의 음악은 인디언 복음화의 초기에 오리지널 음악이 수행했던 역할과 동일한 것을 수행했죠,” 노롯의 설명이다. “사운드 트랙은 전적으로 매혹적입니다.”

“스토리는 매우 정확합니다,” 노롯의 지적이다. “과장이 거의 없어요.” 오리지널 악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라면 엔니오가 만들었던 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상상할 수 없어요. 난 음악학자입니다. 그리고 인디언 공동체에서 30년 이상 살았어요. 장담컨대 믿기 힘든 일입니다. 그저 경탄할 수밖에요. 나는 엔니오를 현대의 사도라 부르겠습니다.”

 

불꽃을 부르는 불꽃

미국에서 데뷔하기 전 <미션>은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어 오스카에서도 감독상의 조페, 음악상의 모리꼬네를 포함하여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결국 크리스 멘지스가 촬영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영화는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 고작 티켓 판매액 1700만 달러에 그쳐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노롯은 그것이 남미 원주민 공동체의 가톨릭 선교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예수회-원주민 공동체가 무엇인지,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니었죠,” 노롯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린 갑자기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린 그것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어요.... 거기에는 우리를 (미션으로 이끄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있었죠. 우린 이 이야기를 되찾고 싶었어요.”

노롯은 남미 원주민과 함께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모국 폴란드를 떠났다. 수년에 걸쳐 원주민 공동체는 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의 선교시기에 남겨진 1만3천 페이지의 악보를 읽고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꼭 같은 (원주민) 미사곡을 두 번째로 들으려면 하루도 안 빠지고 꼬박 네 달을 미사에 참여해야 가능하죠,“ 그가 말했다.

그는 또한 이들 공동체의 음악을 장려하는데 일조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볼리비아와 그 너머에서 가장 음악적으로 능숙한 사람들에 속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정글의 볼리비아인 네 명 중 한 명은 악보를 읽을 수 있어요,” 노롯이 말했다.

<미션>에 나오는 노래가 실제 과라니 음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리꼬네의 작품은 선교 노력이 움트는 씨앗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볼리비아에 가서 과라니 (예수회-과라니 공동체) 노래를 부를 때, 종종 우리는 엔니오 모리꼬네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오리지널 곡으로 넘어가지요. 마치 그가 이 모든 것의 아버지였던 것처럼요. 나는 그가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인간 중 하나라고 말하겠습니다. 비록 그가 이 사실을 모를지라도요.”

많은 예수회에 대해서도 영화와 모리꼬네의 작품과 관련해서 꼭 같이 말할 수 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예수회 기관에서 성령 미사, 졸업 기념, 수품식, 장례식 및 성 이냐시오 축일에 종종 등장한다.

이렇게 단순한 멜로디가 오늘날 수많은 예수회 수도자들의 소명과 인간 인식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고독과 열망의 “기묘한 결합”을 포착해낸다.

베리건은 이 영화가 “흔치 않은, 나아가 고유한 작업이었다”고 썼다. “이 영화는 결정적이지만 무시되어왔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어떤 헛된 목적으로? 혹은 어떤 고귀한 이상을 위해서? 이렇게 모든 물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핵심적인, 괴롭고 성가신 질문을 제기한다.”

돌아보면, 조페가 말했다. “나로서는 이것이 영적 여정의 바탕에 깔려있는 어떤 것을 짚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나는 진리가 신기루 같은 거라는 생각이 맘에 듭니다. 찾아내기도 어렵고, 종종 같은 이유와 동기로 인해 정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하죠.”

“나 자신에 대해서는 허약한 불가지론자라 생각해요. 신성(神性)에 대한 저 나름의 인식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삶을 통해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지요. 내게는 한편에는 다니엘 베리건, 다른 한편에는 와우나나 인디언이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이것은 심각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가?"

 

짐 맥더못
아메리카 매거진에 기고하고 있으며 동(同) 잡지의 LA 특파원이다.

[출처] 미국 예수회 매거진 <America>, 2019년 12월 10일자 기사를 이준균 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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