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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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욕설
  • 유형선
  • 승인 2019.12.2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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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Editorial image of 'Armenian Antique Book Closeup.'
Editorial image of 'Armenian Antique Book Closeup.'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인자(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 시대에 그렇게 얘기 안 했을 거 같아요. ‘나는 사람 새끼다.’ 예수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아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에서 판자촌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 정일우 신부님이 하신 이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새끼’라는 말이 어쩜 이리도 따뜻하게 다가오던지요.

성경을 보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는 기득권자들을 대놓고 욕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마태 3,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욕설도 여러 번 나옵니다.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마귀의 힘을 빌었다고 모함하는 바리사이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마태 12,34)라고 호통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도 아브라함의 행동은 따르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요한 8,44)라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다인들을 ‘개들’(필리 3,2)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을 개들이라 부르던 시대이니 그대로 돌려준 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을 때도 욕설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자 베드로는 반박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7,33)라고 꾸짖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명예와 부와 권력을 얻을 거라고 여기던 제자들을 마치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듯 따끔하게 가르치는 대목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욕설이 천박하지 않은 이유는 의로운 분노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식민지 상황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고 권력에 기생하여 명예와 부를 누리던 기존 교회가 주님 마음에 들 리가 없었습니다. 본래 주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는 분노하는 주님의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하늘에 좌정하신 분께서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마침내 진노하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분노하시어 그들을 놀라게 하시리라.”(시편 2,4-5)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을 기다리며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교회와 저희 가슴에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 한국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2019년 12월 22일)에 게재한 글입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중1독서습관> 저자
가톨릭일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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