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꽃과 하느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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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꽃과 하느님 나라
  • 유형선
  • 승인 2019.11.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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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을 체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작은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이니 큰아이가 만 네 살이었습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엄마와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던 때, 병원 화단에 무리 지어 예쁘게 핀 하얀 꽃을 만났습니다. 무심코 ‘꽃 모양이 꼭 별 모양 같네’라고 제가 말했더니 큰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몰랐어요? 꽃은 원래 별이었어요. 꽃은 별이 떨어져서 된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지인이 아이의 시선이 놀랍다며 과학책에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과학자 하인츠 오버훔머는 <4시간 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 인간도 꽃도 모두 별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들(탄소, 칼슘, 철분 등)은 모두 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오래된 과거 별의 유산이자 자손인 셈입니다. 만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당신은 나의 별이오!’라고 말한다면 과학적으로도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랍니다. 어른은 과학을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사실을 제 큰아이는 겨우 만 네 살이지만 분명하게 알아채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혜안을 잃어버린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별과 꽃을 보며 고요히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들이 우리 존재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밤하늘의 별과 들판의 꽃을 보면 절로 힘이 빠지며 숨을 멈추거나 조심스레 내쉬는 경험을 합니다. 일순간 세상은 고요히 멈추며, 있는 그대로의 그 순간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깨어 있고, 고요하고, 온전히 현재의 순간에 머무는 경험입니다. 별을 보며 내 가슴 속 별을 보고, 꽃을 보며 내 가슴 속 꽃을 보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떨어진 별이고 던져진 꽃입니다. 비록 걱정과 불안, 두려움과 욕망에 휩싸여 있더라고 우리 존재의 심연에는 하느님이 손수 창조하신 별과 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눈동자에서 별과 꽃을 볼 수 있다면 이게 바로 하느님 나라에 사는 경험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 20-21).

 

* 한국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2019년 11월 17일)에 게재한 글입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가톨릭일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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