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평화네트워크 "일본인과 우리, 어우러져 동아시아 평화의 길을 묻다
상태바
화해평화네트워크 "일본인과 우리, 어우러져 동아시아 평화의 길을 묻다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10.08 2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26일~27일, 동아시아화해평화네트워크 연례회의 열려

지난 9월 26일~27일 2019년 “동아시아화해평화네트워크” 연례회의가 있었다. 동아시아화해평화네트워크는 동아시아, 특히 한일 양국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만들어 가려는 가톨릭신자들의 모임으로, 2018년 나고야에서 열린 ‘제 40회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 전국 집회’에서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제1회 세미나를 갖고 발족했다.

참가자들은 동아시아 화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연대와 실천은 계속되어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해마다 연례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최된 연례회의는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등의 공동준비로 이루어졌다.

26일 예수회센터에서 제2회 세미나가 열렸고, 27일에는 한국과 일본의 신자들이 함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DMZ 생태평화순례가 진행되었다.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9월 26일, 동아시아화해평화네트워크 2019 세미나

의정부교구장이신 이기헌 주교님의 기조연설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화해의 사명”으로 시작된 이번 세미나는 기조발제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위한 한일 그리스도인의 평화사도직”(변진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 제1발제 “한일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가톨릭교회의 입장”(후루야시키 카즈요 수녀, 히로시마교구 평화의사도추진본부), 제2발제 “탈핵 평화를 위한 한일 가톨릭교회의 교류와 연대”(박유미, 한일탈핵평화순레 한국연락담당), 제3발제 “일본 가톨릭 청년이 바라본 한일의 역사와 평화”(야나가와 토모키, 예수회 도쿄사회사목센터)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기헌 주교님은 기조연설에서 시민들의 연대에 대한 희망과 그동안 있었던 일본 주교단의 사죄의 발언을 다시 한 번 전해주셨다.

“우리는 일본교회와 한국교회의 연대를 비롯하여 선량한 시민들의 연대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정부가 진실 되고 일관되게 하지 못하는 사과를, 정부를 대신하여 사과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더욱 많아지고 그 수가 일부가 아닌 대다수가 될 때 이미 화해는 이루어지고 한일 간의 우정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일관계 안에서 화해와 평화에 대한 소리를 높이며 교회가 연대를 시작한 것은 일본주교단이었고,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한 사죄의 발언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1986년 도쿄에서 FABC총회가 있었는데, 일본주교회의의 의장이신 시라야나기 세이치 대주교는 전쟁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일본인이자 교회의 성원인 우리 주교들은 2차 세계대전 시 일본에 의해 비극을 경험했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주교협의회 평화로의 결의)"

"그 후 몇 년이 지난 1995년 2월 일본주교단은 ‘전후 50년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평화의 결의라는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교서 안에서 일본교회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비극을 바라보며 교회도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일에 대해 반성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가까운 지역에 대한 이해와 교류의 필요성을 낳았으며, 특히 식민지였던 한국과의 화해를 위한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 15일 일본 정의평화위원장 가쓰야 주교의 담화문을 읽고 깊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그동안의 일본 주교단의 사과와 노력을 들으며 일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돌아보았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 나라라는 틀에 갇혀 화해와 평화라는 단어 보다는 분노와 미움을 먼저 떠올렸다. 가톨릭신자로 살아오면서 화해와 평화라는 단어를 일상용어처럼 사용했지만, 그 대상에서 ‘일본’만은 제외시켰던 시간들이었다. 왜 일본을 화해의 대상으로 만나려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앞에서 나는 “분노로 가득 찬 한국인”이었다. 아베가 사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에선가 한국을 향해 사과하고 연대하려는 마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날 세미나에서 있었던 발제 중 예수회 도쿄 사회사목센터 소속의 야나가와 토모기의 예수회 평화 청년 프로젝트 참가후기 “일본 가톨릭 청년이 바라본 한일의 역사와 평화”를 들으며 그동안 일본을 대하는 나의 굳은 마음을 더 깊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나가와 토모기는 한국 방문을 ‘괴로운’여행이었다고 했다. 함께 참가했던 청년들 역시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며 긴장을 동반한 한국 방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일본의 죄 없는 청년들에게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을까 두려웠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들었을까 씁쓸했다. 일본인 중에서도 가톨릭신자로서 화해와 평화를 선택하려 한국을 찾은 이들의 마음이 그러했다.

그들은 왜 “괴로운 여행”에 참여했던 것일까? “과거에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실제로는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로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이 아무리 역사교육에서 일본의 과거를 지우려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알기 위해 공포와 긴장을 느끼면서도 한국을 찾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떠올리는 일본의 청년들이 있음을 보며, 나 또한 ‘분노한 한국인’이라는 피켓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일본을 향한 분노를 너머 평화를 선택하려는 마음과 손에 손을 잡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9월 27일, DMZ 생태평화순례

이번 동아시아화해평화네트워크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의 신자들이 함께 분단된 한국의 아픔에 공감하고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DMZ 생태평화순례를 다녀왔다. 파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일본의 신자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는데, 오랜 내전으로 일터를 잃어버린 캄보디아 여성들의 자립을 목적으로 세워진 비영리단체의 수공예품이었다. 일본신자들 덕분에 캄보디아 여성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어디에서든 연대가 이어짐을 느낀다. 일본 신자들이 준비해온 노래프린트에 <아침이슬>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가 일본어와 한글로 적혀 있었다. 이번 순례를 위해 준비한 일본 신자들의 마음의 온도가 프린트 한 장에 온전히 실려 있었다. 화해와 평화를 위한 순례길에 대한 의미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

DMZ생태연구소 김승호 소장님의 안내로 통일대교 남문을 지나 노상리 남방한계선 인근 생태탐방에 이어 덕진산성에서 야외 미사를 드렸다. 한국 예수회 조창모 시몬 신부님과 일본의 나카이 준 신부님의 공동집전으로 봉헌되었다. 미사 독서 또한 한국은 <가톨릭일꾼>의 신배경 클라우디아, 일본은 유카코 자매가 함께 한일 신자 공동으로 봉독하였다.

잠시 침묵 중에 자연이 들려주는 ‘있는 그대로의’ 소리 안에 머물며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진 뒤 신자들의 기도는 자유롭게 돌아가면서 기도했다. 일본신자들이 기도할 때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기도 안에 담긴 진심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나의 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가슴이 듣고, 영혼이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임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다함께 손을 잡고 서로의 온도를 나누며, 커다란 원을 만들어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순간 올라오는 뜨거움에 뭉클했다. 한일 간의 아픔 안에, 분단의 아픔 안에 선하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미사 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비무장지대 원시림인 세월천 상류 신나무 군락지를 탐방했는데, 경계가 삼엄하여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는 구역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보존된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자연이 ‘있는 그대로’ 보존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가. 인간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이면 다른 생명들은 제거되어도 되는 것인지. 진정 인간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월천 상류 탐방에 이어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철책 너머 갈 수 없는 땅을 바라보는 뒷모습만으로는 누가 한국인이고, 누가 일본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날의 우리는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한 마음으로 모인 신자들이라는 것만이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김승호 프란치스코 소장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DMZ생태연구소 소장님께서 DMZ생태연구를 통해 느끼신 바를 나누어주셨다.

“생명이 생존하고 순환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저는 사실 7년 전에 암수술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제게는 훨씬 더 감동이 많았어요. 새들이 다쳐있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친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그들한테 연민이 참 많이 생겼고, 지금은 저의 대부분의 생각이, 그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이 땅에 살 것인가, 이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것을 느끼기 위해 암에 걸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프지 않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은총이지요. 피조물의 신음소리에 늘 언제나 반응하는 제 자신이 행복합니다. 이런 것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하더라고요. 저희들하고 같이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다 생명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깊어요. 개인의 사생활을 포기하고 이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지지와 격려는 필요합니다. 자기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지해 주는 것은 좋지요. 저희 연구소는 여러분들이 돈으로 지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 하나 꼭 지지해주실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도입니다. 늘 언제나 저희가 일을 할 수 있게 항상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장님의 세례명을 듣고 놀라웠다. 김승호 프란치스코 소장님. DMZ생태계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의 세례명이 프란치스코라니. 이런 순간에 ‘하느님의 섭리’라는 표현 외에 어울리는 다른 말이 또 있을까?

 

맨 왼편에 계신 분이 구쥬 노리꼬 자매.

프란치스코 소장님의 말씀에 이어 일본인 신자 ‘구쥬 노리꼬’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구쥬 노리꼬 자매님의 모자에는 평화의 소녀상 배지가 달려있었고, 여정 내내 동행한 일본신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DMZ 순례길에서 한일신자들이 함께 부를 노래로 <아침이슬>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를 준비하신 분이신데,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던 터라 나눠주실 이야기들이 기대되었다. 구쥬 노리꼬 님은 60세까지 간호사로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직 하신 후에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싶어서 역사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오가며 공부하셨다고 한다.

“저는 지난 박근혜 정권 때 아베 정권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에 중국의 사드 문제까지 다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희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제가 그때 명동에서 하는 동학(을 공부하는)모임에 매 달 왔었는데, 그 때 어떤 할아버지께서 일본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평화를 깨고 있는 것은 아베정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베를 보면 정말 계속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일본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제일교포들도 생각해야 되고,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해 나가야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물음 안에서 제가 이렇게 참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 더, 한국은 올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일본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독립선언서를 읽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그 모임은 100년 전 한국이 독립을 하고자 하는 그 의지에 대한 대답으로, 100년 후인 지금 우리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써 그것을 읽고자 합니다. 굉장히 놀라운 것은 100년 전에 일본에게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런 것에 대해서 미움이나 원망보다는 저희들을 불러주셔서 같이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함께 일하자고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통역: 동아시아복음화연구소 박현주 선교사)

3.1운동 100주년을 기억하며 독립선언서를 읽고 있는 일본인 구쥬 노리꼬 님은 전날(26일) 세미나 후에 일본의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 하셨던 분이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에 자신 또한 역사를 알지 못했고, 일본이 과거에 행했던 과오 또한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몰라서 미안했다고 울먹이며 사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사과해야 할 주체는 인정조차 하지 않지만 선량한 한 개인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바다를 건너와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구쥬 노리꼬 님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읊조리던 그 순간, 일본을 향해 늘 지녀왔던 분노가 희석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유카코 자매 (오른쪽)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한 이틀을 돌아보니 먹먹함이 올라온다. 그동안 일본을 향한 분노 이외에 일본을, 일본인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왔는가 돌아본다. 화해와 평화의 길을 묻는 여정을 짧은 이틀 함께했을 뿐인데, 나의 생각과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본다. 선한 마음들의 연대가 씨앗이 되어 화해와 평화의 길을 만드는 희망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DMZ 생태평화순례 미사에서 함께 독서봉독을 했던 유카코 님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DMZ에서 함께 했던 미사를 기억하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도쿄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고 하니 일본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한글을 배우려 한다는 메시지를 읽고 놀랐다. 유카코 님에게도 함께 한 이틀이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나보다.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