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신부가 보여준 하느님의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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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신부가 보여준 하느님의 셈법
  • 유형선
  • 승인 2019.10.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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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한국 최초로 사회적 기업을 만든 아일랜드인 신부가 있습니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한국명 임피제 신부(1928-2018)입니다. 고국 아일랜드에서 서품을 받고, 1954년 스물여섯 살에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선교사로 한국 남단의 섬 제주에 왔습니다.

당시 제주는 한국전쟁과 4·3 사건으로 환경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폐허 상태였습니다. 임피제 신부는 가난과 맞서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새끼 밴 암퇘지 한 마리를 데려와 양돈사업을 시작하면서 외국 자선단체를 설득해 기금을 모았습니다. ‘돼지 신부님’이란 별칭도 이때 생겼습니다.

황무지에서 시작한 임피제 신부의 도전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지역민들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습니다. 한번은 농가에 돼지를 20마리씩 무상으로 분양하면서 축사와 옥수수 배합사료까지 무상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돼지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이 사료 속 옥수수 알갱이를 빼돌려 술 공장에 팔았습니다. 농민들 대부분이 연 60% 사채 이자를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다시 거두어 들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임피제 신부는 지역신용협동조합(한국 네 번째)을 시작했고 농민들이 고리대금의 굴레를 벗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폐허에서 시작한 양돈 사업은 현재 아시아 최대 규모 목장인 ‘성이시돌목장’으로 성장했고 제주 축산업의 기둥이 됐습니다. 현재 임피제 신부의 정신은 목장 뿐 아니라 병원, 호스피스, 어린이집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성이시돌농촌개발협회’로 이어집니다. 복지사업 운영비의 대부분이 협회가 책임지고 특히 호스피스 사업은 지역주민이면 100% 무료입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협회 수익을 모조리 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등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셈법은 자본주의 셈법과 전혀 다릅니다. 부유할 부(富)는 하나(一)의 집(宀)에 사는 사람들이 땅(田)을 집어 삼킨다(口)는 뜻입니다. 독점하여 쌓은 재물에 하느님의 축복이 머물 리 없습니다. 가난할 빈(貧)은 재물(貝)을 나눈다(分)는 의미입니다. 나누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사유재산은 법적으로 유효할지 몰라도 나눔의 가치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곳에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존재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 40)  
 

*수원교구 9월 29일자 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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