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주먹도끼처럼 연필을 쥐고, 몸으로 몸을 돌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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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주먹도끼처럼 연필을 쥐고, 몸으로 몸을 돌보며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19.07.16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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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김훈, 문학동네, 2019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곳은 국선도 도장이었다. 나이 살처럼 아랫배가 나오면서 고민이 깊어갔다. 계절이 바뀌어 장롱에서 끄집어낸 바지들이 몸에 꼭 껴서 입을 수 없었다. 허리에 밴드 처리가 된 바지들은 그런대로 입을 수 있지만, 모직바지는 언감생심이다. 뼈마디가 굳어서 허리가 지끈거리고, 굽은 어깨는 더 아래로 처지곤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국선도 도장. 예전에 정양모 신부님이 병세가 심해졌을 때 국선도에서 효험을 보았다 하고, 예전에 다녔던 단학선원의 몰염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 국선도다. 그곳에서 김훈 선생을 만났다.
 

김훈 선생은 일전에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열린 강의에서 먼 발치나마 처음 보았던 적이 있다. <흑산>(학고재, 2011)은 한국 천주교 박해기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가슴에 와 닿았고, 울림이 컸다. 그들에게 천주교 신앙이란 목숨을 건 행보였다. 굳이 니체가 “억눌린 자들의 외마디 소리”가 곧 그리스도교라는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건봉건왕조에서, 그 가렴주구의 그늘 속에서 천주교 신앙은 동학만큼 혁명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고, 몸으로 살 수 없는 ‘지복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계기였다. 이 때문에 몸을 부수어 버리는 박해가 따르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 자존의 길’이었다. 그 절박한 처지를 김훈은 하층계급 출신의 천주교인 ‘오동희’의 입을 빌어 ‘기도문’에 담았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김훈 선생은 평생 마신 술독이 가시지 않았는지 언제나 얼굴이 검고 붉었다. 예비 수련을 하다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데, 단전호흡을 하는 동안에는 사범님께서 호흡에 방해된다며 에어컨을 꺼두신다. 바닥에 누워 호흡을 고르자면 등짝에 배어든 땀이 철퍽이다 잦아들고 이내 차갑게 식어 기운을 가라앉힌다.

김훈 선생의 동작이 궁금해 이따금 힐끔거리곤 했다. 처음보다 많이 호전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그래서 힘겹다 싶으면 다음 동작을 이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계시곤 했다. 그래도 삼각형으로 모은 두 팔꿈치에 의지해 거꾸로 솟구치는 물구나무서기는 아주 잘 하신다. 잃어버린 몸을 회복하려는 안간힘을 느낀다.

연필은 몸의 연장이다

김훈 선생은 몸에 대해 아주 예민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이승을 살아가는 존재는 불가피하게 몸이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 속 번뇌도 괴로울 테지만, 매 맞고 굶어죽는 데 비할 바 아니다. 몸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구체적이어서 생생하게 파고든다. 요즘 마음이 꿀꿀해, 하는 식의 불평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생의 철학자 알랭은 모든 철학은 ‘위장(胃臟)의 철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유로운 자들의 사치스런 한담에 불과한 철학은 개나 물어가라고 말할 게 뻔한 김훈 선생이다. 오죽하면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 2004)이란 책을 쓰면서 밥벌이 노동의 신성함을 극찬했을까. 그는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고 했다. 밥벌이 노동이 더러운 게 아니라, 신성한 노동을 더럽히는 게 추할 법하다. 그는 몸으로 하는 정직한 노동에 경의를 표시한다. 대장장이의 망치와 이순신의 칼, 우륵의 가야금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 김훈은 글을 쓰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연필을 고집한다. 연필을 몸의 연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훈은 <연필로 쓰기>(문학동네, 2019)에서 “연필은 내 밥벌이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훈은 단독주택에 살적에 겨울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과 골목에 쌓인 눈을 치우던 기억을 그리워한다. “한 시간쯤 눈 속에서 일하고 나면 머릿속에 끼어 있던 말의 똥가루가 빠져나가고, 나의 생명과 삶 사이에 직접성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했다. 남한산성 오일장에서 망치, 펜치, 톱, 호미, 삽 같은 쇠붙이 연장을 파는 더벅머리 사내의 입담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아, 니미, 서울공대를 톱으로 나온 녀석들이 못대가리 하나를 못 박고, 닭모가지를 못 비틀어. 아, 제미, 로스쿨 톱으로 나온 놈들이 펜치를 못 쥐고 도라이버를 못 돌려. 이게 사람이냐, 오랑우탄이냐. 몸이 다 썩은 놈들이 어떻게 밤일을 해서 새끼를 낳는지.”

젊은이들이 검퓨터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게 되면서 도무지 연장을 쓸 줄 모르는 동물로 퇴화해 몸의 건강한 기능을 상실하고 인간성의 영역이 쪼그라 들었다는 한탄이다. 김훈은 충남 공주시 석장리박물관에서 주먹도끼를 보면서 인간에 대해 깊디깊은 상념에 빠지는 사내다. 주먹도끼는 손으로 쥐기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 앞쪽을 다른 돌멩이로 때려서 날을 만들고, 그 날의 반대 부분을 손잡이로 쓴다. “돌은 인간의 손아귀에 정확하게 밀착되어야 하고, 마음의 소망과 손의 동작을 정확히 결합해서 외물(外物)을 제압해야 한다.”

김훈은 구석기 사람들이 짐승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바짝 접근해서 급소를 치는 장면을 상상한다. 성공하면 인간이 짐승을 먹고, 실패하면 짐승이 인간을 먹는 죽살판이다. 이런 주먹도끼의 손잡이에는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의 손바닥 체온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짐승의 머리를 치다가 도리어 잡아먹힌 사내들, 하루종일 허탕치고선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내들, 비가 오고 눈이 와서 나가지 못하고 움막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내들을 생각했다.

김훈은 아마 그때 우리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이 주먹도끼를 쓰던 그 사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데서 나오는 글이 진짜다. 김훈은 아마 이들의 심경으로 돌아가 주먹도끼처럼 연필을 들고 삶의 한가운데를 건너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국선도 도장 바닥에 누워 ‘몸’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공차기의 행복’만한 게 없다

젊은이들은 건강한 몸보다 멋진 몸을 즐겨 상상한다. 탄력 있고 예쁜 게 최고다. 아직 몸은 쌩쌩해서 자유롭고 살날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허나, 오십 줄을 넘어서면 생각이 달라진다. 여전히 살날이 적지 않은데, 몸이 나를 구속한다. 내 맘대로 몸은 움직여지지 않고 녹슬고 고장이 잦다. 병원 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약을 먹고, 저녁바람이 불면 공원에 나가서 운동기구를 돌려본다. 이제 나는 늙음과 죽음에 친숙해진다. 불가항력이다.

김훈은 ‘늙기와 죽기’라는 글에서 어르신뿐 아니라 친구들의 죽음을 접한다. 빈소를 찾는 날이 잦아지고, 죽음을 자주 접하지만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며 안타깝게 여긴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 없다. 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남처럼 느껴진다.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염을 받고 관에 드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범접할 수 없는 타인이라고 느꼈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제가 죽었는지를 모르고, 제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산 자는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모른다. 살아서도 모르고 죽어서도 모르니 사람은 대체 무엇을 아는가.”

김훈은 죽음이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늙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는 늙는 게 “기쁨”이라 했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면서,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처럼 늙으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의식이 물러나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 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라 말한다. 그 세계는 내가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세계다. 내가 한창일 때는 몰랐지만, 70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늘 춤추듯이 걸어가는 아이들의 생명력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아, 그리고서 내게도 가슴 뜨끔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내가 지금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고 읽는 것보다 듣고 들여다보는 게 관상(contemplation)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한다. 나태주 시인을 흉내내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닿아야 할까, 싶다.

김훈은 ‘공차기의 행복’에서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보면서 얻은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땅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 몸의 운명이다. 솟구쳐오를 때도 다리가 땅을 박차면서 몸은 땅의 반동에 의지한다. 몸은 땅에 저항함으로써 앞으로 내달릴 수 있다. 땅과 몸이 끝없이 교섭함으로써 몸은 달리고 돌고 치솟고 다시 땅바닥에 닿는다. 이 저항은 육체를 관통한다. 공차기는 몸과 땅의 교감이다. 높이 뜬 공을 쫓을 때, 몸은 땅을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떨리지만 땅의 저항을 벗어나서는 뜬 공에 다가갈 수 없다. 몸은 뜨려는 꿈과 몸을 옭아매는 땅 사이에서 떨리면서 달린다. 뜬 공을 향해 몸을 날릴 때, 그리고 다시 땅에 내려와 닿을 때, 나는 내 몸의 한계와 속박 속에서 자유로웠다. 속박과 그 속박을 벗어나려는 꿈이 이 아름다운 동작을 빚어낸다. 그러나 공 차는 사람은 그 동작의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못한다. 저절로 되어진다.”

그래, 공차기야 새삼스러울 리 없는 풍경이지만, 이글에선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을 알아차린다. 중력 안에서 살아가는 몸이 솟구치고 내달리기 위해 중력에 저항하면서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란 우주에서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하는 우주인의 몸짓과 사뭇 다르다. 모든 아름다움은 몸과 땅의 밀고 당기는 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기실 삶도 그렇다. 뉴스에 늘 오르내리는 재벌 2세들의 추한 모습은 삶에서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서 빚어진 비극이다. 복음적 긴장을 놓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그러하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나라”라고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과 땅의 긴장 가운데서 공 차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동작을 기대한다. 먹고 살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진공상태에 있다. 성직자의 삶이 안온한 사제관과 교회 안에만 머물 때, 이 무중력 상태에서 복음적 긴장이 느껴질 리 없다. 아직 천국이 오지 않은 까닭에 “매 맞음”과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이 중력의 힘에 저항할 복음이 없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 몸으로 사는 이들의 현실을 긍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중력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엘살바도르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로메로 대주교는 “박해받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지 모른다.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에 “아멘”(그렇게 될지어다) 하는 자는 행복하다. 예수는 우리에게 당신 몸을 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란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몸의 흐름을 중력 속에서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들이다. 내 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내 발이 누구를 향해 발길질 하고, 내 입이 어떤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지 살피는 사람들이다. 내 몸이 가벼운지 무거운지, 내 몸이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지, 제 문제에 얽매어 무너지고 있는지 성찰하는 사람들이다. 아멘.

* 이 글은 <공동선> 2019년 7-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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