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라사의 군대 "그만 되었다, 주님께서는 벌써 용서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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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라사의 군대 "그만 되었다, 주님께서는 벌써 용서하셨으니"
  • 한상봉
  • 승인 2019.07.1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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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성서의 조연들-36

 

어젯밤 내내 미친 바람과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아침이 오기 무섭게 물러나 앉고, 마당에 서 있는 나뭇가지 끝에는 남아있던 물기가 매달려 지난밤의 어지러운 꿈자리를 포개고 있습니다. 사위가 고요합니다. 이제 가족들이 깨어나 아침밥을 재촉할 것이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이슬처럼 맑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볼 것입니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행한 눈빛으로 말입니다.

그 아이들은 저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지만, 제가 다시 아버지로 돌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서운 사내였고, 잊혀진, 아니 없었으면 좋았을 그런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다른 젤롯당 사람들처럼 유다 백성과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면, 로마의 칼도 비껴가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사가 된다는 것이 눈앞에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임을 나중에야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여린 심성을 가졌던 내 칼끝은 항상 망설이고 있었으며, 내 칼이 허공을 가르고 춤출 때마다 튀어 오르는 혈흔을 따라서 내 가슴도 어지럽게 난도질 당하였지요. 그러나 이력이 붙을수록 느낌도 무디어지고, 어느 순간부터 로마의 갑옷을 입은 자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그저 원수로 보일 뿐이었지요. 해치워버려야 할 무엇이지요.

그렇게 내 영혼의 평온한 저녁은 사라져 버리고, 우린 로마의 칼을 거꾸로 잡고 싸운 셈입니다. 잔인한 그들처럼 우리도 잔인해지고, 야수와 같은 그들의 더러운 입냄새가 우리 몸에도 짐승처럼 배이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이념에 충실하였으나, 우리 안에 원수가 남몰래 심어놓은 짐승을 길들이는 데는 미숙했습니다.

우리는 헌신하였지만, 셈 없이 싸우면 싸울수록 적뿐 아니라 우리 동포들과 우리 자신마저도 상처를 입곤 했습니다. 우린 우리 자신 안에 깃들어 사는 사나운 짐승에게 매일 먹을 것을 던져 주었으며,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당장의 평화를 얻곤 했지요. 내일은 내일의 먹이를 찾아 거리에서 빈들에서 은밀히 누군가를 정탐하고 명분 있게 덮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만 저들을 정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로마군대의 기습을 받아 몰살당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호수 동남쪽 산악을 넘어 고향에서 가까운 게라사로 갔습니다. 나는 한동안 무덤으로 쓰던 빈 동굴에 살았는데, 처음부터 집에 찾아가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집을 떠나 젤롯당의 무리에 합류하였을 때 아내는 세 번째 아이를 가졌는데, 그 아이가 그새 많이 자랐더군요. 할아버지가 지어준 손주딸의 이름은 사라였지요. 눈물 나게 그리운 가족들이었지만,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밤마다 나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하루 낮의 고요가 끝나고 땅거미가 찾아들기 시작하면 이내 나를 덮치고 옥죄는 그림자들이 창밖 언저리를 서성거리기 시작하였고, 나는 두려움에 질려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어야 하였지요. 어쩌다 잠이 들면 밤새 로마병사들에게 도망 다니느라 진땀을 빼고, 수없이 창검에 찔러 죽는 내 모습을 확인해야 했지요.

내가 죽였던 자들이 다시 나를 죽이고, 죽은 자의 몸에선 구더기가 끓었습니다. 가끔 동료들마저도 꿈에 나타나 내 멱살을 잡았습니다. 꿈의 끝에서 끝까지 피비린내가 진동하였고, 나는 밤새 칼목을 움켜잡고 고함지르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고 말입니다.

나중엔 아내가 차려놓은 밥그릇에서도 비린내를 맡았고, 아이들의 입에서 손에서도 피 냄새가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게 미친 사람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내 눈동자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가족들은 나를 점점 무서워했고, 아이들도 제 곁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내 비명소리가 점점 커지던 어느 날 밤, 잠결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게라사의 산속을 헤매다 무덤으로 쓰던 빈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앉았던 것입니다. 거기서 밤낮으로 소리 지르고 뒹굴고 몸에 생채기를 내곤 했습니다. 가끔 산에 올라가 구르기도 하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아랫마을에선 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무성해졌지요. 그들은 내가 ‘더러운 영’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제게 예수란 분이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말했죠. ‘군대’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난 피범벅이 된 채 살아가는 군대이지요. 죽음을 생산하기 위해 살육을 훈련하는 군대가 제 이름입니다. 그밖에 제게 붙일만한 이름이란 없는 게지요. 그 자학적인 이름을 떼어내라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나는 나를 이렇게라도 학대하여야 안심하는데, 그는 그 이름을, 그 안전장치를 벗어던지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이의 눈빛을 보지 않았다면 나를 다시한번 소동을 벌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 강렬하면서 따뜻한 시선은 “그만 되었다, 주님께서는 벌써 용서하셨으니 이젠 네가 네 자신을 용서할 차례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습니다.
“군대는 돼지에게나 던져주시오.”

내가 한숨을 크게 내쉬는 동안, 농부들이 언덕 위에 놓아기르던 돼지들이 갑자기 호수로 달려가 빠져죽고 말았지요. 기막힌 광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와 눈시울을 흥건히 적시고, 나는 성한 사람이 되어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그분을 통해 제게 구원처럼 온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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