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여자, 청하지 않아도 받은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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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굽은 여자, 청하지 않아도 받은 자비
  • 한상봉
  • 승인 2019.07.0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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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3,10-17: 성서의 조연들-34

 

저는 느리고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아침에 해가 언덕 위로 솟아오르는 것도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저를 조롱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시간이라 여겨졌지요. 그분은 저랑 아무 상관없는 존재였고, 저는 습지고 그늘진 곳에 버림받은 채 그저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빙충이’라고 불렀지요.

사내아이들은 밖에 나가 뭐든 도왔지만, 저는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였으므로 어머니는 내게 바느질조차 시키지 않았습니다. 제 여동생은 눈빛이 총명하고 바지런해서 늘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는데, 그 말씨에선 향내가 나는 듯 했지요. 내 하룻일은 그저 우물에 가서 먹을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노상 물을 만지다 보니 손목이 자주 부어올랐지만, 그래요, 그 일이라도 제게 주어진 것은 행운이지요. 고마운 일이지요. 저도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제게 묘한 습관이 하나 붙었습니다. 물을 보면 물끄럼이 한정없이 물속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물속을 들여다보면, 한 계집아이가 저를 빤한 얼굴로 들여다보고 있었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움직이더군요. 우물물을 길어 올리고 나서 파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오늘은 어떤 얼굴과 어떤 하늘이 저를 희롱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롯한 저의 기쁨이었지요. 물은 숨김없이 어그러짐 없이 저 그대로 비추어주고, 저는 그 안에서 잠시 행복했습니다. 물은 저를 타박하지도 않고, 제게 뭔가 말해보라고 다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은 슬픔이고 아쉬움이고 외로움이고 탄식이며 한숨이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집으로 돌아서면, 동생은 어머니와 더불어 뜨개질을 하고, 음식을 만듭니다. 식구들은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그들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무렇게나 던져진 옷들을 챙겨서 때를 벗기고 빨아서 줄에 걸고, 이내 또 뒷길을 돌아서 물을 길어 와야 합니다. 식구들에게 저는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서러움이 몰려올 때면, 제 눈물이 우물물에 닿아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곤 합니다. 물에 비친 제 얼굴이 흐려지고, 한동안 가슴속이 먹먹해집니다.

열여덟 살 되던 어느 해, 갑자기 등이 굽어 허리를 펼 수가 없었습니다. 등이 굽어 물동이를 이고 갈 수 없었으므로, 우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밑 모를 슬픔으로 울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땅바닥만 쳐다보는 것이었지요. 저는 땅바닥에서 저만의 우주를 찾아내야 하였고,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떼가 줄지어 먹이를 지고 나르는 광경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열여덟 해를 더 살았습니다. 저를 위해 지참금을 지불하고 데려갈 남자도 없었고, 등이 굽은 채 외롭게 늙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무게가 제게는 너무 무거웠던 시절입니다. 하늘을 등지고 살아온 열여덟 해였습니다.

구원은 다짜고짜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저는 회당 돌바닥에 앉아 있었고, 이따금 들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젠 부산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내력을 꿸만 합니다. 저는 언제나 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제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 등에 와서 따갑게 꽂히는 걸 느꼈기 때문에 웅크린 채 예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던 정물(靜物)처럼 그렇게 가만히 있었지요.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지긋이 감고 졸듯이 앉아 있었지요.

잠시 훈풍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더니, 그 기운이 도로 제 곁에 와서 머물고, 누군가 제 어깨를 지긋이 누르는 걸 느끼는 순간,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병에서 낫기를 청한 바 없었으나 허리에 힘이 들어가는 걸 깨닫게 되었고, 제가 일어서기를 바란 바 없었으나 저는 똑바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시는 분이 누구신가? 원하지 않아도 제게 하늘을 열어주시는 분 누구신가? 그저 자비로 먼저 손을 얹어주신 분 대체 누구신가?

자비를 베푸는 일에는 때가 따로 없다는 말일까? 회당장이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는데 하필이면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었느냐며 그분에게 항의할 때, 그분이 제게 빙긋이 눈짓을 주셨습니다. 괜찮다,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지요. 그리곤 회당장을 향해 단호한 말투로 꾸짖었죠. “여보시오. 당신네들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가는 데 안식일을 마다하지 않을 걸 다 알고 있소. 이 여인도 아브라함의 딸이오. 사탄이 무려 열여덞 해 동안이나 이 여인을 묶어 두었는데 안식일이라 해도 이 여인을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소. 안식일은 주님의 날이고, 주님께서 자비를 원하시니 나도 그리 할 뿐이오.”

회당장이 말문이 막혀 머쓱해 있는 동안 예수라 하는 그분은 겨자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윽고 자라서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러하다면, 보잘 것 없는 저를 통해서도 하느님 나라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래 그래, 하실 것 같았습니다. 제 몸에 처음으로 손을 댄 그 남자가 저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저는 바닥에 익숙하므로, 엎드려 살아가는 마음들을 잘 헤아려 살필 수 있으므로, 그 길을 통하여 받은 자비를 세상에 돌려줄 생각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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