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 신부 "가난하지 않은 교회는 '괴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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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가난하지 않은 교회는 '괴회’입니다"
  • 정일우 신부
  • 승인 2019.05.22 12: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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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교회인가?-3
사진=한상봉

교회가 가난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상의 부정, 부패, 불의에 참여하여 공범이 됩니다

우리 신자들 안에도 부자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부자이기 때문에 악한가, 나쁜 사람인가? 아니잖아요. 또 대부분 부자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죠. “나는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돈 벌었다. 또한 돈 벌어 오면서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거의 다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요. 그게 사실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칩시다.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을 안 하고서 부자가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제도’라는 게 있어요. 그들이 나쁜 짓을 안 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경제 안에서는 악한 조건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그래서 본인의 죄가 아니라도 그 악한, 안 좋은, 불평등한, 불의한 그 제도의 덕택을 봐서 돈을 많이 벌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노력만으로 따지고 보면 없는 사람들이 몇 수십 배 노력을 하죠. 간혹 노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나라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부지런합니다. 굉장히 노력해요.

부자라면 불로소득(不勞所得)이 가능하지만 빈자라면 불로사득(不勞死得)입니다. 사실 부자들은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일을 안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땅 투기’ 하면 일하지 않고서도 엄청난 소득이 들어와요. 그러나 없는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죽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은 잘못한 일이 없더라도, 제도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돈을 잘 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제자리입니다. 제도적인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밥 공기 열 개가 있고 사람도 열 명입니다. 고루고루 돌아가죠. 그런데 한 명이 강력한 사람이 되어서 나는 다섯 개를 먹겠다,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아홉 명이 다섯 개를 가지고 나눠 먹어야 해요.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지구의 자원과 물자는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제가 보기에 수학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넉넉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인구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무지무지하게 돈이 많아요. 돌아가게끔 되어 있어요.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산을 잘못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잘 쓰면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꼴이에요.

지금 이 지구의 생산물 중에 80퍼센트를 이 지구 인구의 20퍼센트가 쓰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인구 80퍼센트가 생산물의 20퍼센트를 쓰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봐서도 그렇고, 세계를 봐서도 그렇습니다. 자원이나 밥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러면 고루고루 나누어 먹어야죠. 한정되어 있는데 한 사람이 너무 많이 가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못 갖죠. 아주 간단한 수학문제입니다.

교부들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내가 꼭 필요한 이상의 무엇인가 소유하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훔친 것이다.” 물론 알고서 훔친 것이 아니죠. 그런데 내가 필요한 이상 가지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못 갖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많이 가졌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죄가 있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죄가 안 되느냐?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도가 어떻게 나쁜지 모르고,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고, 그냥 단순히 내가 일하고 일한만큼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죄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가진 것 그 자체가 죄입니다. 개인적으로 죄가 안 된다 해도 객관적으로 봐서 나쁜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욕할 것이 아니라, 알게끔 해야죠.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죠.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나자로 이야기’를 아시잖아요. 그 부자는 나중에 어찌 될지 몰랐지만, 우린 이제 알았으니, 몰랐다고 발뺌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몰랐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사진=한상봉

교회가 가난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상의 힘을 빌어서 이 세상의 이치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거 뻔한 얘기죠. 사람이란 돈이든 무엇이든 있다면 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죠. 돈이 많아지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죠. 돈 있으면 권력도 살 수 있으니까요. 돈 자체가 힘이 되고, 그 힘을 쉽게 믿게 됩니다. 사실 필요한 것들이 다 주어지고, 하고 싶은 만큼 다 할 수 있다면 ‘하느님 생각’이 언제 나겠어요. 이 세상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또 돈 있으면 내 것을 지키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먼저 지금 상태, 지금 수준을 지키느라고 정신이 없고, 조금만 갖게 되면 더 갖고 싶듯이 돈도 재산도 많으면 많을수록 더 늘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또 재산이 많은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만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없는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됩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주교님, 신부님들이 승용차를 모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승용차가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스운 규칙입니다. 사목하면서 승용차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자동차를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아셔야 합니다. 승용차 때문에 사목적 손해도 많이 본다는 것입니다.

보통 승용차는 혼자 타게 되지요. 예수님이 민중더러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는데,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언제 소금 맛을 보느냐는 겁니다. 제 얘기 오해하지 마세요. 승용차가 있다는 것, 몰고 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급하지 않은 경우 대중버스나 전철을 타고서 이 나라 서민들과 비비는 것, 부딪히는 것이 사목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말하는 것입니다.

아! 그만 해야죠. 그런데 제가 원고를 준비할 때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한글 타자가 서툴러요. 그래서 한 번 쳐서 인쇄해서 봤는데, ‘교회’대신 ‘괴회’가 나왔어요.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이 되네요. 왜냐하면 교회가 가난하지 않을 때 ‘괴회’입니다. 아주 이상한 모임이고,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모임이 됩니다. 우리 대장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을 모시고 모인 모임인데, 예수님이 핵심으로 가르친 ‘가난’을 무시해 버리고서는 ‘괴회’가 되고 맙니다.

요새 교회는 가난한 예수님을 잘 팔아서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전철 안에서 예수님을 만병통치약으로 팔고, 대학입시 성공하는데 예수님 팔고요. 가난한 예수님을 선전하고 팔아서 얼마나 돈을 모으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신적이고 구복적인 것입니다.

추기경님! 제가 너무 과격하게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추기경님은 좀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이천 년을 기다려왔는데 더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온 세계에서 성령께서 새롭게 움직이시는 것 같아요. 우선 우리 다같이 ‘교회가 가난해야 된다.’는 그 원칙만 조금 더 뚜렷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만 하면 더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Ω

[자료제공_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정일우 신부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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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글씨 2019-06-18 23:53:08
와. 쉬운 말씀인데 무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