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베대오의 아내: 부끄러운 청탁, 행복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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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베대오의 아내: 부끄러운 청탁, 행복한 나라
  • 한상봉
  • 승인 2019.05.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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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0,20-28: 성서의 조연들-29

제가 말씀을 드렸을 때 그분은 참 딱하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꼭 말을 해야 아나요? 눈빛만으로 그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님을 일러주시는 것이지요. 제 자식들은 정말 만사 다 제쳐두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제 남편 제베대오야 본래 제 할 일만 묵묵히 하는 양반이라 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긋한 성격 때문에 복창이 터지곤 했던 것은 저였지요.

몸을 바쳤으면 뭔가 확실한 보상을 약속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요. 세상 이치가 다 그런데 저를 나무라진 말아 주세요. 바깥양반은 제가 자식들 문제로 안절부절 못하고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거참, 요란하네.” 하였지만, 아이들이나 그 아비나 제대로 똑 부러진 구석이 없으니 저라도 나서야 할 판이지요.

우리 집안은 아이들 할아버지 적부터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왔답니다. 남의 배를 빌려 그물을 던지는 것이었지만 그런대로 먹고는 살았지요. 그날도 제 착한 순둥이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도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들은 제 때에 손을 보아두지 않으면, 꼭 결정적인 순간에 뜯어져 애를 먹이곤 하니까요. 참을 내어 식구들에게 가려는데, 건너편에서 일을 하던 식구들이 웬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가 손을 둥굴게 말아올리며 이야기할 때마다 호숫가를 찰랑대는 물결이 은빛으로 잘게 부서져 내리곤 하였지요.

저는 햇볕을 마주 보고 걸어야 했으므로 그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옆에 둘러서 있던 사람은 분명 시몬과 안드레아가 맞습니다. 그리곤 이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반대편 언덕으로 넘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이윽고 남편에게로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제베대오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말뿐이었지요.

그 사내는 사람의 일은 사람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자식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꾀었다는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저는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전 분명한 걸 좋아합니다. 애매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기는 건 질색입니다. 착한 우리 자식들은 그 뒤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만 믿음직스러운 시몬과 안드레아가 함께 따라 나섰다는 사실만이 조금 위안을 주더군요.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예수라는 그 사내를 따라나선 것은 제 자식뿐 아니었지요. 그들은 떼를 지어 산지사방을 돌아다니며 무리를 모으고 있었는데, 예수가 한 번 설교를 할라치면 그 언설(言說)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본래 목수의 아들이었다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유식하고 박식하답니다. 이따금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몸에서 광채가 나며 입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답니다. 소경을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며,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지녔답니다. 이게 다 뜬소문이라고 해도 그가 대단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 모양입니다. 그가 새로운 유다 왕국을 세우려고 오신 메시아라고 숨어서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갈릴래아를 떠돌던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지요.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거기서 뭔가 큰일을 벌일 모양이지요.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그 일행을 찾아가 야고보와 요한, 우리 자식들을 불러 세워 예수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짐을 받아 주자는 것이지요. “선생님, 당신의 나라에서 제 자식들이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는 “그 청탁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어머니?”하고 물었습니다. 이미 주변에 있던 다른 제자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술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차, 실수했구나, 생각했지만 어쩌겠어요. 어미 마음이 그렇게 하라는데 말입니다. 그때에 예수는 잠시 나무그늘에 앉으라고 청하고, 물을 한 잔 얻어 마시곤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잘 들어 보세요.

“제 아버지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아드님이 그물을 던지고 저를 따라 나설 때 이미 야고보와 요한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그렇게 하느님 때문에 자기를 버리는 자들 속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된 것이지요. 모두가 누구라 할 것 없이 형제이며 자매인 나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아버지요 어머니인 나라가 그 나라입니다. 제 자식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나라, 마음으로 간절히 잘 되기를 빌어주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백성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자가 없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 하면 종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 존경받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왼편 오른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도 많은 이들의 몸값을 치르려고 목숨을 바치러 온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더군요. 과연 말씀이 사람의 생각을 따갑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풀어주더군요. 부끄럽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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