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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공부하며, 이시도로

공부하던 머리로 일을 하고
일하던 몸으로 공부를 하면
시간이 필요 하겠지요.
그럼요, 좀 걸리겠지요.
어느덧 새삼 새록
몸이 생각을 하고
머리가 몸을 보살피겠지요.
자비하신 그분처럼
생각을 더듬고
자비하신 그분처럼
마음을 담아 행하겠지요. 
 

내게로 날아든 천사 

LEIGHTON, Frederic (1830–1896) Elijah in the Wilderness, detail 1878 Oil on canvas, 210.4 x 234.3 cm Walker Art Gallery,

정말 천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울어진 어깨를 바로 잡아주고, 기력이 다한 팔을 붙들어주고, 지친 다리에 힘을 보태주는 천사 말입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주고, 탁한 공기를 몸 밖으로 내어보내며, 눈빛을 맑게 헹구어줄 그런 천사 말입니다. 내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기에 죄송스럽고, 자잘한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기엔 멋쩍어서 그냥 그대로 미루어 두었던 바램을 그분 숨결에 담아 도와줄 천사 말입니다.  

우린 우리의 힘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곤 합니다. 그래요, 내 뜻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그리 흔하겠어요. 가장 중요한 결정은 더 크신 분이 하시고, 그분이 내어놓으신 길을 따라 우리는 걷고, 그 길에서 눈비도 맞고 따스운 햇볕도 쪼이겠지요. 그 길에서 실족할까 두려워할 때, 내 근심을 받아 안아줄 천사가 필요하지요. 그 천사는 지금 영등포역전 지하도에 누워있기도 할 테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옆집에 이웃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손길에서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고, 겸손하라, 겸손하라 타이르는 무덤가의 할미꽃에서도 천사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생각 없이 살아갈 때 생각을 더해주고, 마음 없이 살아갈 때 정성스런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 그 애잔한 얼굴들이 하늘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자비를 전하는 천사(天使)겠지요.  

부모님들은 내가 태어나서 걷기도 전에 이미 내게 천사 한 분을 붙여주셨습니다. 이시도로 성인입니다. 내가 선택한 분은 아니었지요. 하긴 돌이켜보면 살면서 무엇 하나 내가 선택한 것이 있었던가요? 내가 부모를 고를 수 없듯이, 모세가 먼저 나서서 히브리 노예들을 구출하라는 사명을 얻어낸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갈망해 오셨다는, 우리들의 얼굴을 낱낱이 손바닥에 새겨놓으셨다는 하느님의 기운이 풀씨 같은 나를 지금-여기에 내려놓으신 것이지요.  

철이 들고 나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느 이시도로가 제 주보성인이지요?” 이시도로 성인은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분은 주교학자 이시도로, 한분은 농부 이시도로입니다.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셨다는 어머니의 대답은 “글쎄!”였습니다. 아마도 유아세례를 받을 때, 본당 수녀님께서 지어주신 모양입니다. 관례대로 한다면, 내 생일이 양력 4월 5일이니까, 아마도 4월 4일에 축일을 지내는 ‘주교학자 이시도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보성인이 주교학자라는 게 웬일인지 흔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은 ‘농부 이시도로’에게로 끌려가고 있었으니까요.  

책상 앞에 앉아 있느니, 세상을 위해 뭔가 구체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의 마음이 좀더 ‘민중적인’ 인물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싶었던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내기로 했습니다. 제 뜻과 상관없이 주어진 성인이 이시도로라면, 두 분을 모두 나의 주보성인으로 모시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5월 15일은 나의 또 다른 주보성인 농부 이시도로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내미신 양 손을 모두 잡기로 한 것입니다. ‘학자이며 농부이신 이시도로 성인’은 그 뒤로 삶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선택의 잣대로 내 앞에 서 계셨습니다. “힘써 일하고 또한 공부하라.”

 

세비야의 주교학자 이시도로

교회학자 이시도로

주교학자 이시도로와 농부 이시도로는 두 분 모두 스페인 사람입니다. 교회학자였던 이시도로 성인(isidorus 560-636)은 이단사설(異端邪說)이 어지럽게 등장하던 시대에 학문을 통하여 스페인을 통일하여 다른 유럽 나라들에도 영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였는데, 신학은 물론이고 문법과 수사학, 수학과 의학, 역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의 권리와 의무, 전례에 관한 책 등을 썼습니다.  

이시도로 성인은 그보다 먼저 세비야의 주교가 된 맏형 레안드로에게서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 어려서는 아둔해서 공부를 잘 못하였고, 형에게 엄청 꾸중을 많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좌절감에 빠졌던 이시도로는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 밖으로 달아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피곤해져서 우물가에 주저앉아 있는데, 얼핏 보니 한 바위 구석에 움푹 파진 데가 있었습니다. 웬일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좀처럼 알 길이 없었다. 얼마 뒤 물 길러 온 한 여인에게 물어보니 “오랜 세월 물방울이 떨어져 그와 같이 파졌지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이시도로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공부는 타고난 재주로 한다기보다 꾸준하게 성심으로 노력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용기를 얻은 이시도로는 그 뒤로 열심히 공부하여 필요한 학문을 익힐 수 있었고, 결국 교회와 세상에 유익한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시도로는 박학다식했지만, 그것만으로 성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겸손하였고 이웃사랑으로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이시도로는 죽을 날을 미리 알고 6개월 전부터 임종 준비를 시작했으며, 그 날이 닥쳐오자 성당에 가서 죄의 용서를 청하고 자신의 재산 전부를 빈민에게 나누어 주도록 부탁하고 고요히 눈을 감았답니다. 때는 636년 4월 4일 이었고, 1722년에 이시도로는 교회박사로 선언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명제집>에서는 공부한 자의 태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하느님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자주 기도하고 또 자주 독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과 함께 말하게 되고, 독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말씀하시게 됩니다. 모든 영적 진보는 독서와 묵상에서 비롯됩니다. 독서로써 우리는 모르고 있던 바를 배우고 묵상으로써 이미 배운 것을 보존합니다.”  

이시도로는 책을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애써야 하며, 그리하여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단단히 붙들어라. 그 지혜가 너를 높여 줄 것이다. 슬기를 품속에 간직하여라. 그 슬기가 너를 존귀하게 해줄 것이다.”    

 

농부 이시도로와 아내 마리아 토 리비아

농부 이시도로  

이시도로는 희랍어로 ’선물’이란 뜻입니다. 주교학자 이시도로가 학문을 통해 하느님께로 다가갔다면, 농부 이시도로는 노동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이시도로 성인은 1070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갈 여유가 없었던 그는 책을 읽고 쓰는 것을 조금도 몰랐지만, 기도 중에 직접 하느님께 배울 때도 있었고, 혹은 강론을 들으면서 진리에 다가갔습니다.  

그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어려서부터 마드리드 부근의 후안 데 베르가스라는 사람의 농장에 고용되어 일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일하라!”는 베네딕또 성인의 가르침대로 노동 시간에는 열심히 일했지만, 매일 아침 미사성제에 참여하며 기도를 올리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일요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위하여 주일답게 거룩하게 지내며 노동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질투심이 생긴 동료들이 이시도로가 신심을 빙자로 농사일을 게을리 한다고 주인에게 고발했답니다. 주인도 이시도로에게 “너 같은 느림뱅이는 없다!”라던가 “아침에 밭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도 느리니 아마도 맡겨놓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잔소리를 퍼붓곤 하였지요.

그래서 하루는 이시도로가 “그러면 내가 부치는 밭과 다른 사람이 부치는 밭 가운데 어느 쪽 수확이 더 많은지 비교해 보십시오”하고 청했습니다. 주인이 시험 삼아 살펴보니, 놀랍게도 주일날도 쉬며 아침저녁에도 오래 기도하는 이시도로의 밭이 항상 붙어서 일하는 이들의 밭보다 더 많은 수확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일할 때에는 천사가 와서 거들어 준다던가, 혹은 기도하는 동안에는 천사가 대신 일을 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기에 이르렀답니다.  

한편 생각이 바뀐 주인은 이시도로에게 호감을 느껴 더불어 일하던 ‘마리아 토 리비아’라는 여성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는데 그녀 역시 남편 못지않은 신심과 가난을 살았으므로 ‘산타 마리아 데 카베사’란 이름으로 공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화목하여 후에 한 아들을 낳았다가 조금 자라서 아들이 죽자 그 뒤부터는 남매와 같이 정결한 사랑의 생활을 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이시도로 성인은 평생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곤궁에 빠진 이를 도와주었으며, 나그네를 환대하였습니다. 그의 자비심은 동물에게도 나누어졌는데, 한겨울에는 먹이가 부족한 것을 염려해 새들에게 보리알을 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그의 농토는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작하기 힘들고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선 더욱 그러하였는데, 이시도로는 그런 고통을 ‘죄의 보속’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참아내었으며,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농사일을 하느님께 은밀히 드리는 봉헌으로 여겼지요. 종자를 뿌릴 때에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들을 때에는 하늘의 새에 대한 비유를 떠올리며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시도로는 1130년 5월 15일, 60세에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셨습니다.  

한때 내 별명이 ‘공부하는 운동권’이었답니다. 우리는 모두 운동을 하고 있지요. 숨 쉬기 운동부터 밭일까지, 내 몸을 돌보는 일부터 세상을 돌보는 일까지 하는 일이 많습니다. 공부함은 곧 우리가 경험한 것을 의식 안에서 명료화시키는 작업입니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자비의 그늘 안에서, 하느님 진리의 빛 안에서 밝히려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그러니 일하십시오, 그리고 공부하십시오. 우린 그분을 배우러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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