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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오그라든 사람, 그에게 슬픈 눈빛과 친밀한 음성으로마르 3,1-6: 성서의 조연들-28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그렇게 무너뜨리기도 하고, 그렇게 세우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서서 발끝을 들어 올려야 겨우 열매에 손이 닿던 시절이었지요. 황혼이 무섭게 아름다웠던 저녁이었는데, 아버지가 새로 엄마를 들이셨지요. 수굿하니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오는 중년의 여인을 보면서, 나는 아, 내게도 엄마가 생겼구나, 하는 사람에 대한 간절함으로 눈빛이 빛나기도 하고, 이젠 기억도 어슴프레한 엄마의 젖가슴을 생각하며 마음이 젖어드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나 슬픔을 알기엔 너무 어렸으나, 고통을 알기엔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밝으면서, 나는 어머니를 얻은 게 아니라 아버지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아픔을 느껴야 했으니까요.

새 엄마가 들어온 뒤로 아버지는 집에 계시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집안 일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당신은 바깥일에만 마음을 쓰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돌을 만지는 사람이었고, 로마 사람들의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성채를 짓는 일을 도왔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여러 땅에 군사기지를 세우려 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멀리 갈릴래아 땅인 세포리스까지 따라가서 공사를 하고 돌아오신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번 집을 떠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소식이 없었습니다. 무심한 아버지! 새로 어머니가 오시지 않았을 때는 멀리 다른 지방에서 벌이는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더랬는데, 그 즈음엔 집에 안 계신 날이 더 많았고, 그마저도 한 마디 말도 없이 하루 종일 주무시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시곤 했지요. 저는 지금도 아버지의 눈빛을 기억할 수가 없어요. 서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탓이겠지요. 그래서 말하는 것입니다. 무심한 아버지!

새 엄마는 제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이리도 모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지요. 어머니는 매사에 신경질적이어서 나는 한 순간도 마음을 졸이지 않고 편안히 밥상에 앉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화로 곁에는 언젠가 제가 다듬어 놓은 나뭇가지가 하나 있었는데, 회초리로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셨는데, 아버지가 집에 다녀가시고 난 다음날이면 더욱 심했습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제 손등에 회초리가 떨어지곤 했지요. 그리고 돌아서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무심한 양반!”

처음엔 윤이 나던 그릇도 얼룩이 지고, 창틀엔 먼지가 풀풀 날려도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청소를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네깟 게 뭘!” 하시며,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전갈이 오면 그제야 좀 주변정리를 할뿐, 어머니의 신경질은 더해가고, 어머니의 불면증은 나의 평화로운 잠을 망쳐놓곤 하였지요.

저는 늘 창밑에 앉아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말없는 아버지, 그렇게 친절한 기억이 없던 아버지, 그래도 적막한 집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그리 큰 몫을 차지했답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면 더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그래도 저는 무언가 기다릴 것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양을 치는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를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일은 고되어도 양치기 아버지의 아이들은 노상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뭔가 배우고 고함치고 웃고 떠들곤 하였던 것이지요. 내 어머니와 내 얼굴이 사위어가는 동안에, 제 오른손이 오그라들기 시작했지요. 어느 순간엔 아예 펴지질 않더군요.

저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 구실을 못하였습니다. 아니 사람구실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작 아무도 버린 적이 없었으나 버려진 아이처럼 살았던 습성이 남아 회당 창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아마도 저는 평생 이 말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기를 갈망해 왔던 것이지요.

내 손이 벌써 간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맘보다 제 몸이 더 먼저 그 음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둘러 선 사람들은 음산한 눈빛으로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분은 슬픈 눈빛으로 내게 말했죠. “손을 뻗어라!” 그분이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미 제 손은 부드러워졌고, 이내 사람들 눈앞에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람이다, 제 속에서 제가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해치려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안식일법을 어기고 제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고, 그분은 저를 살리려 하였습니다. 아버지, 그분은 제가 바라던 친밀감을 느끼게 해준, 그래서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살아있도록 만들어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제 구석진 삶의 자리에서 햇살 눈부신 주님의 광장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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