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 신부 "정작 중요한 건 교리도 신학도 아닌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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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정작 중요한 건 교리도 신학도 아닌 예수"
  • 정일우 신부
  • 승인 2019.05.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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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교회인가?-1

왜 가난한 교회인가?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의 관심거리는 교회를 잘 유지시켜야 하는데 교회가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보면 그 속에 복음적인 가치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걸 보면 ‘교회’가 복음적이라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입니다.

‘예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임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시는지요? 우리 교회를 보통 ‘홀리 로만 가톨릭 처치’(Holy Roman Catholic Church)라고 부릅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로마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보편됨은 ‘가톨릭’이라는 뜻이고요. 그러나 사실 우리 교회는 ‘로마의 것’도 아니고, 교황님이나 주교님이나 성직자들의 것도 아니고, 백성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모시고 모이는 단체입니다. 지금 교회가 이런 생각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 믿음에 첫째가는 대상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신자들은 “천주교를 믿습니다. 교리를 믿습니다. 교회를 믿습니다.” 합니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믿음은 이차, 삼차, 사차, 오차입니다. 우리 믿음의 일차적인 대상은 야훼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닙니다. 삼위일체도 아닙니다. 일차적인 대상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야훼나 하느님이나 삼위일체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차적인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얼마 전에 이병호 주교님이 저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신자들이 야훼를 믿는 건지, 예수님을 믿는 건지 어느 때는 불분명하다.”고 그러셨어요. 이 말씀은 신자들에게 구약과 신약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야훼를 믿기가 어떤 면에서는 훨씬 쉬워요. 왜냐하면 전통적인 의미의 야훼는 내용이 별로 없거든요. 애매하고 엄격한 그 존재 앞에서 굽실굽실하면서 ‘잘 봐주시오’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 그렇거든요. 예수님은 너무너무 구체적입니다. 또 요구하시는 게 너무 많아요. 하여튼 우리의 첫째가는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뿐이란 걸 알아두셨으면 해요.

예수를 믿는 것은 길(道)이기 때문입니다

첫째가는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이라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어떤 면부터 믿어야 하나요? 저는 ‘예수님이 우리의 하느님이다. 예수님께서 신성을 지니셨다’ 그런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고 메시아다. 예수님은 구세주다’ 이런 것도 첫 단계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인격이요, 위격입니다. 우리 신앙의 일차적인 대상은 어떤 이념이나 개념, 아이디어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신학도 아니고, 교리도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인격이요 ‘예수님’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이다’라는 것도 나중에 생각하면 됩니다. 우선 예수님이 바로 ‘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것도 믿어야 하지만,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믿는 게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천주교회 역사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신자들을 ‘신도’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사는 사람들, 이것이 맨 처음의 이름이었습니다. 새로운 도(道)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무작정 예수님을 ‘하느님이다. 야훼다’ 하면 아주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기 쉬워요.

이런 생각도 해보았어요. ‘천주교’랑 ‘천주교회’랑 어떻게 다른지 말입니다. ‘천주교’라는 말에는 ‘모임’이라는 뜻이 빠져 있어요. 저는 교회는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회는 예수님이 길인 것을 믿고 그 길을 걷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애매한 개념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따라 걸어야 할 길이고, 그분이 길인 것을 믿고 그 길을 걷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천주교회’입니다.

그 길은 누군가 따라 걸어야 사실상 길이 됩니다. 그 길은 ‘하늘로 가는 길’이요, ‘참사람이 되게끔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참 종교가 어떤 것인지, 참 인간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고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이 바로 참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가는 길입니다. 그분을 ‘길’로 생각하면 우리의 믿음이 추상적이지 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이 됩니다.

[자료제공]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정일우 신부 S.J.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인 정일우는 1953년 8월 8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에 왔고, 1963년 실습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66년 사제서품을 받고,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한국은 떠난 지 4년 뒤 1967년에 다시 한국으로 와서 서강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정일우 신부의 은사 프라이스 신부는 서강대학교 설립의 주역으로,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연구소를 열고, 이후 34년 동안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선구자이다. 

 

정일우 신부

서강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예수회 수련장으로 일하고 있던 정일우 신부는 그 자신에 대해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생겼다. 이에 정일우 신부는 1973년 예수회 수련장에서 물러나고 찾아 들어간 청계천 판자촌에서 평생 동지였던 ‘배달학당’ 야학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고 제정구 선생(1944~1999, 바오로)과 처음 만났다.

이후 제정구 선생과 정일우 신부는 1975년 11월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 집단이주 마을로 복음자리(1977년), 한독주택(1979년), 목화마을(1985년)을 건립하였다. 양평동 판자촌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주거민을 이끌고 집단 이주해 조성한 공동체가 '복음자리 마을'이고, 이 복음자리 공동체에서 만든 제품이 복음자리 딸기잼이다.

1980년대는 목동, 상계동 등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에 함께 하였다. 1985년 천주교 도시빈민회, 198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를 교구장 자문기구로 설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1988년 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 설립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일우 신부는 1986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고 제정구 전의원과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정일우 신부는 1991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빈민촌에 ‘한몸공동체’를 세웠다. 청소년들의 쉼터, 외국인 노동자들 쉼터, 농촌의 누룩공동체 등 예수회 사회사도직은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약물청소년, 아이들 공부방, 농촌 분야로 확산되었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정일우 신부는 도시빈민 운동이 교회와 사회에서 자리잡아 가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값싼 노동력 제공과 저가 미곡정책으로 희생을 강요 당한 농촌으로 눈을 돌려 농민들을 위한 신앙과 생활 공동체인 '예수회 누룩공동체'를 충북 괴산군 삼송리에 세웠다.

정 신부는 누룩공동체의 삼송리 농부생활 8년을 마감하고, 2002년 4월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서울 무악동 '한몸공동체'로 다시 왔다. 그러면서 2006년까지 예수회 제3수련장을 맡았다.

정일우 신부는 2004년 70살 생일을 앞두고 63일간 지속한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오다, 2014년 6월 2일 선종하였다.(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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