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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이미 너를 용서하였다(마태 26,69-75)성서의 조연들-24

그날 대사제의 저택에 가지 말아야 했을까요? 겟세마니 동산에서 선생님만 남겨두고 달아난 뒤로 우리 형제들은 불안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넋 나간 사람들처럼 천정만 바라보며 늘 가던 그 다락방에 숨어 있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못 배운 게 한스럽더군요.

명치 끝에 묵직한 덩어리가 잡히는데, 그 놈이 부글거리고 목줄을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러다 미칠 지경이니 어쩌겠습니까? 큰 눈을 굴려가며 주변을 살피고 골목을 빠져나와 옷깃을 끌어당겨 턱을 가린 채 성전에 들어가 기웃거렸습니다. 그분은 대사제 앞으로 끌려갔다는데, 먼발치에서라도 그분을 한번쯤 다시 봐야 온 몸에 엉겨붙는 송구함을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지요.

저택 안뜰에는 호기심에 구경삼아 몰려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지만, 그래도 그분을 볼 수는 있었지요. 멀리서도 몇 사람이 그분을 밀치며 손찌검을 하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자식이! 가슴이 전갈에 찔린듯 욱신거립니다. 아, 선생님!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되돌아 나가려는데 어느 아낙네가 날 알아본 모양입니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과 함께 있었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른 아낙네도 저를 가리키더군요. 사람들이 제게 몰려드는 걸 보며 엉겁결에 손사래를 치며 “생사람 잡지 마쇼. 난 저 이를 모르오!”하며 자리에서 도망쳐 나오는데, 눈에선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더군요. 죄송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그분 곁에 다가섰다가 회한이 물밀듯 밀려와 어떻게 다시 형제들의 다락방으로 돌아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 때 그 안뜰에서 심문을 받던 그분은 저를 보았을까요? 제가 손사래 치는 꼴을 보시진 않았겠지요? 저보다 그분의 마음이 더 비참해질 것이기에, 못난 제자 때문에 더 큰 슬픔으로 아플 것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둡고 암담합니다. 내 영혼이 내 몸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의연한 모습 예전 그대로인데, 저희들만이 제 몸 하나 건사하자고 이렇게 숨어 있는 것입니다. 암말 못하고 저는 제 자신이 도리어 원망스러워 슬피 울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당신을 떠날지라도 난 아니라고, 난 언제든지 그분 곁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순간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저는 그분을 세 번이나 배신했습니다. 겟세마니에서는 선생님을 잡으러 온 대사제의 종에게는 칼을 들이댔던 제가 가야파의 저택에서 한 아낙네의 말 한마디에 기겁을 하였지요. 저는 용서를 청할 자신도 없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저승에서라도 이젠 그분 앞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짓거리라면, 유다를 욕하는 것뿐이었지요.

어제까지도 우리의 형제였던 유다를 원망하고 힐난하고 욕하는 것으로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붙잡아 갖은 욕설로 뒤집어씌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고, 마음으론 유다에게 무수히 몽둥이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중 누구도 그보다 나을 게 없었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그분처럼 아파하고 그분처럼 사랑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무엇이든 그분의 입만 바라보고 살지 않았습니까? 우린 추종자이긴 했지만 그분의 동행으로 처신하진 못했습니다. 그분 뒤를 졸졸 따라다니긴 했어도 그분 뜻을 미리 헤아리고 행동하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처럼 기꺼이 고난 받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동료는 우리 가운데 없었지요. 막달레나의 마리아만이 그분을 위해 향유를 부어줄 줄 알았습니다. 마르타만이 그분께 알아서 제 때에 음식을 내어드렸지요. 투정만 일삼던 우리가 앞다투어 윗자리를 탐하던 우리가 정작 그분이 어려운 지경에 놓이자 그만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유다는 우리들의 그림자였지요. 우리들의 비겁함을 드러내기 위해 주님께서 그 사람을 선택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들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비겁함이 그분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잘난 유다를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미워했는지요. 유다를 선생님 곁에서 밀어낸 것은 우리들이었고, 유다는 우리의 죄를 고발하려고 대사제의 종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겠지요.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돼지들에게 주었던 것이지요.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합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던 우리네 욕심에 쐐기를 박고, 생각 없이 스승을 모시던 무심한 마음에 못을 친 것이지요.

저와 동료들은 선생님이 재판을 받고 골고타에서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기까지 그분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각별히 사랑하시던 막내 요한만이 다른 여인네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그분의 임종을 지켜드렸을 뿐입니다. 그 뒤로 연일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사흗날 동이 트기 전에 꿈에서 그분을 잠깐 뵈었습니다. 꿈이라곤 하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생시인듯 깨어서도 가슴이 아렸습니다. 꿈에서 뵌 그분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평안하냐? 내가 바라는 것은 너의 슬픔이 아니다. 나는 이미 너를 용서하였다.”

날이 밝아서 해가 언덕에 오를 무렵에 저는 막달레나 마리아에게서 돌무덤이 비어 있노라는 전갈을 받고 놀랐습니다. 이제 그분을 만나러 가야 하겠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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