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공부하며 사회교리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
사물화 된 지식은 상품이다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7
  • 존 프란시스 카바나
  • 승인 2019.04.08 14:51
  • 댓글 0

팔고 사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과 자세에 스며들어 와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하는 체험도 이 팔고 사는 것에 의해 여과된다. 또한 우리의 최종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팔고 사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사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물의 신세라면 우리들의 지능은 사물이나 상품과 같은 지식을 얻기 위한 거두절미의 조건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지식 자체가 팔리는 상품이 되고 학교들은 지식상품 제조 공장이 되어버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식행위 자체가 사물이나 상품을 보다 더 적절하게 파악하는 형태로 모호하게 타락한다. 

사물은 소유할 능력이 없으며 자기성찰도 할 수 없다. 내적인 의식도 없으며 어떤 방식의 내면성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사물을 아는 행위는 수단이 되는 지성, 기능적인 지식, 그리고 기계적인 인식 등으로 변질된다. 이어 이렇게 변질된 자질들은 사물에 의하여 “앎”을 규정당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어떤 과학자들은 컴퓨터에 지성을 귀속시킨다. 내면성이나 자기성찰은 이제 인간의 이성적 지식의 기초로 인정받지 못한다. 객체를 아는 기본적인 방식은 외적인 관찰, 외적인 측량과 예측, 조작 그리고 수량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 안다는 것은 상품을 생산하고 팔고 사는 데만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상품화의 세계에서 사물이 되어버린 앎의 행위는 인간존재와 자기자신에 관한 믿을만한 지식을 결정짓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행동과학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 행동과학 분야는 여전히 경제학, 사회과학, 심리학, 철학 등에 있어 수량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생의 자질과 미래를 평가할 때에도 심지어 개인적인 체험의 신뢰도를 재어볼 때에도 이 양적인 측면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의 일차적인 체험(모든 과학적 지식의 조건)의 구조와 본질,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의식, 사랑 연민 희망에 관한 우리의 체험, 충실성이나 평등에 관한 우리의 갈망 등은 모두 의문에 부쳐진다. 그런 것들은 이제 수단이 되어버린 상품-지식의 방법으로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생각과 느낌에 관한 심각한 회의가 인간의 지식을 기술적인 지능으로 전락시켜 버렸기 때문에 야기된 현상이다.

우리는 기술적인 지능을 마치 완성으로 향해가는 인류의 여정에서 위대한 역사적 도약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에 대한 이러한 제국주의적인 사물지식이 산업자본주의의 발효와 우리 생활의 중심에 왕으로 등극한 상품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조차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물-지식의 지배가 결국, 점차적으로 인간인격의 발전과 실현을 소비와 시장경제로 대체시킨 이념과 손을 잡게 되리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거나 이상으로서의 신앙, 현재나 미래의 신앙, 새로움을 낳고 생명 노동 사랑에 대한 투신을 요청하는 그런 지식들 모두가 측량, 수량화 그리고 외적인 관찰이라는 수축된 세계로부터 축출되어 버린다. 이 인격적인 형태의 지식은 과학적으로 이해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취약성과 위험성을 안고 있다. 모험과 신비는 인격적인 만남에 나타나는 고유한 측면인데도 이 사물-지식의 세계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는 요소가 된다. 

그 결과 기술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이나 수단이 되어버린 이성은 믿을만한 지식과 이어 인간적인 체험까지도 측정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며 직관, 느낌, 감성, 심미적인 판단, 감각, 지혜, 목적성과 도덕적인 판단 등은 모두 일방적으로 ‘선(先)-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더 파괴적인 것은, 우리 앎의 가장 인간적인 차원이 거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 사실이다. 사랑받고 믿음을 가지며,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인간 존엄성과 가능성에 대한 도덕적인 원칙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체험에서 절정의 순간들, 흔히 이런 순간들은 수량으로 측정할 수 없고 기술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 하여 과학적으로 완전치 못하거나 믿을만한 지식이 못된다고 판정된다. 공적으로 증명되고 되풀이되는 체험들, 측량할 수 있는 체험들만이 참으로 믿을만한 체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인간 지식의 상품화는 모든 영역과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와 있다. 과학실험과 연구라는 “무가치”의 세계에서나 양과 경쟁의 방법으로 자기가치를 측정하고 있는 아이들의 세계 모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자본주의의 영향이나 우리의 생각과 체험에 대한 소비주의의 확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의식 가장 깊은 바닥에서 사물화된 지식은 상품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가장 놀랄만한 영향을 미치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상품 형태의 지식을 진심을 다해 신뢰하면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생산품의 형상과 모상대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재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과학주의나 문학, 예술분야에서 우리는 사물에 대해 가장 신비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을 말할적에 우리는 가장 기계적이 된다.

[원출처]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문화적 저항의 영성>, 존 프란시스 카바나 신부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1996년 3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존 프란시스 카바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