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과부 "자비의 그늘 아래, 마음으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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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 "자비의 그늘 아래, 마음으로 감사를"
  • 한상봉
  • 승인 2019.04.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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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22

부서지기 쉬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불안합니다. 덜컥 아이라도 아프면 걱정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제가 아무리 용을 쓴다하더라도 처지가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지요. 그이가 이승을 떠난 뒤로는 늘 불안한 삶이었기에, 그래요, 불안함은 제겐 너무나 익숙한 감정입니다.

다만 이제는 과부가 된 그날처럼, 그 불안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안절부절 못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손이 우주보다 크신 분에게 닿아서 그분이 제게 편안한 잠을 허락하고 계신다는 걸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아있는 걱정은 아이들일 텐데, 이젠 아이들도 제법 자라서 제 앞가림 정도는 하고 있으니, 그저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성전에 갔던 그날도 저는 무심히 제단에 나아가 헌금함에 요 며칠 동안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넣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돈입니다. 렙톤 두 닢. 사람이라면 응당 주님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조상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지요. 부자들에게는 십일조에 해당하는 돈이 어마어마하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십일조를 바치고도 여전히 부자였고, 사실상 그 십일조마저 제대로 바치는 부자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거들먹거리며 성전을 누비고 다녔으며, 저들이 성전에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고 큰소리치곤 했지요. 그 말이 영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들이 설령 이십일조, 삼십일조, 백일조를 내어놓는다고 해도, 저희 같은 사람들이 낸 헌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내어놓으면서도 수줍어하지만, 그들은 제 소유의 작은 몫을 부스러기처럼 떼어주면서도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참 요상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헌금함에 손을 넣으며 ‘자랑’할 거리를 얻지만, 저는 헌금함을 돌아 나오면서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늘 돈이 모자란다고 서로 다투며 안달하지만, 저희는 그 돈 때문에 파산하거나 재산을 지켜려고 마음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뿐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조의 첫날처럼 밝아오는 빛을 느끼며 안심합니다. 주님께서 티끌 같은 목숨에게 또 하루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근력이 남아 있으므로 일을 할 것이며, 일을 하면 또 하루의 양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보다 다스림을 받는 자가 더 낫습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보다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편안합니다. 높은 데서 어질 머리 현기증을 느끼는 것보다 낮은 곳에서 흙을 만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돈을 세는 손길보다 야채를 매만지는 손길이 더 곱고 아름답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그날 성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오물을 다루면 더러운 것이 몸에 묻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율법학자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그들은 인사받기는 좋아하지만 남을 존경할 줄 모르고, 잔치 때에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지만 필요한 일을 도울 줄 모르고, 기도는 엄청 길게 하지만 베풀 줄 모르니 우리 영혼에게 위험한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저 같은 과부의 사정을 돌아보지 못하니 제겐 화근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있는 자리엔 얼씬거릴 생각을 말고 가능한 가장 멀리 떨어져 지내며, 아예 눈에 담아두지 않는 게 나을 것입니다. 하긴 그들도 어찌 보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줄 저들인들 모르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참으로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테지요. 재산이나 지위 때문에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받습니다. 따지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자들이 오히려 섬김을 받습니다.

저는 일찍 과부가 되어 혼자서 자식 셋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 지 압니다. 주변 사람들의 자잘한 도움과 우정 때문에 저는 오늘 하루도 새 날의 빗장을 열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제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고, 부끄러워하며 이웃이 내미는 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잇고, 우물가에서 나누었던 정담이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제게 이웃으로 보내신 주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밥 한 그릇 꾹꾹 눌러 담아 자비를 베풀 듯, 제 마음을 차곡차곡 눌러 담아 렙톤 두 닢을 성전에 바치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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