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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세상,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아시아 종교심성으로 읽는 요한 묵시록-18]

어느 지사의 전기
-김광규

관청에서는 그를 특이자라고 불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길바닥에 쓰러진 이교도를 보살펴 주었고, 젊었을때는 교활하고 잔인한 강력범을 옹호했으며, 나이가 들자 불온한 모임에 드나들며 지하활동을 벌였다.

세상은 언제나 난세였다
도저히 그가 편안하게 자고, 맛있게 먹고, 돈을 벌어 즐겁게 살 수가 없었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언제나 몸보다 마음을 앞세운 그는 수많은 일화가 증명하듯 크고 높은 뜻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형대에 올라가기 전에 성자처럼 태연할 수 없었던 그는 담배 한 개비와 술 한 잔을 달라고 했단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졌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자기의 몸과 헤어지게 된 순간 그는 큰소리로 만세를 부르는 대신 연약한 인간이 되어 떨었던 것이다.
그의 지사 답지 못한 최후가 나를 가장 감동시킨다.

[오늘의 성경]
요한 묵시록 14, 6 - 13

 

사진출처=namdokorea.com

미륵존불이 남북을 오르내리고

미륵신앙은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들어왔을 때부터 있었으며, 특히 왕조 말과 같은 변혁기에는 말세의식과 관련하여, 미륵불이 내려와 고통받는 민중을 구제하고 새 세상을 열어주기를 기원하는 신앙운동이 일어났다. 고려시대에는 민심 수습 차원에서 왕권의 지원으로 옛 후백제 땅을 중심으로 미륵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 뒤로 민중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고통스러울 때마다 미륵신앙이 민중신앙으로 불거져 나왔다.

현재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는 거칠고 소박하게 만들어진 90여 개의 돌부처들이 '운주골' 또는 '천불천탑동'이란 곳에 흩어져 있다. 설화에 따르면 그 골짜기에 천 개의 돌부처와 천 기의 탑이 세워지면 누워 있는 와불이 일어나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형펀없이 되었으며 민중들의 신분해방 요구가 거세어졌다. 이 시기에도 낡은 세상을 바꾸어 새 세상을 연다는 미륵하생 신앙, 곧 미륵이 세상에 내려온다는 신앙이 민중 사이에 널리 퍼졌다. 그래서 조선 지배층의 불교 억압과 불상 파괴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은 끊임없이 미륵불을 만들어 치성을 드렸다. 머리가 잘린 돌부처에 새로 머리를 만들어 붙이거나 그냥 돌을 올려놓고 미륵불로 신봉했다.

한편 1688년(숙종 14년)에는 강원도 통천의 승려였던 여환이 무당ㆍ풍수ㆍ아전 등을 포섭하여 "석가가 다하고 미륵이 나오며, 세상 또한 다른 세상이 된다."며 미륵농민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에게 석가의 시대인 현재는 양반이 민중을 착취하는 낡은 세상이기 때문에 '끝장나야 할' 세상이었다. 그들은 마땅히 '와야 할' 세상으로서 미륵이 주장하는 새 세상을 예언했다.

불교사상에서 석가와 미륵을 대립 시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민간에 퍼진 미륵신앙에서는 미륵의 세월에는 섬들이 말들이로 밥을 먹었는데, 석가가 나타나 미륵 세월을 빼앗았다고 믿었다. 미륵이 석가의 세상을 두고 "내 무릎에 핀 모란꽃을 꺾어다 네 무릎에 꽂았으니 꽃이 피어도 열흘이 못 가고 심어도 십년을 못 넘기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즉 양반들의 세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위에 미륵에 대한 민중신앙이 발전했다.

따라서 여환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미륵이 또한 말하기를, '지금은 승려가 부처를 공경하지 않고 속인이 부처를 공경한다. 너는 과연 이것을 아느냐? 이같은 때에는 용이 아들을 낳아 나라를 주장하리라. 풍우가 고르지 못하여 농사가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될 때, 미륵존불이 북쪽에서 나와 손바닥만한 큰 눈을 해가지고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손에 큰 징을 쥐고 남북을 오르내릴 것이다.' 하였다." 여기선 이미 불법이 승려의 손을 떠나 민중의 손으로 넘어왔음을 보여주며, 바야흐로 미륵이 내려와 이룰 용화세계가 시작될 것임을 알려준다.

 

사진출처=namdokorea.com

민중구원을 위한 발심, 미륵과 지장

석가에게 미륵과 지장이 가장 탁월한 제자였는데, 미륵은 불교 종단이 체계를 잡기 전에 요절했으며, 지장은 본래 불교의 초기 교단에서 석가세존이 중생들에게 적절하게 설법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정리해주던 분이었다. 그래서 늘 그 민심의 흐름과 민중의 정서와 신앙의식 등을 살폈다. 그러다가 스승인 석가세존이 죽은 뒤 모든 직무에서 물러나 자신이 줄곧 발원해 왔던 대로 '지옥중생의 구제'를 위해 길을 떠났다.

미륵과 마찬가지로 유난히 실천적인 보살이었던 지장은 지옥으로 내려가 지옥 중생들이 그들의 고통을 다 마치고 성불할 때까지 남아서 교화하다가 지옥이 텅 비면 그제야 마지막으로 성불하겠노라는 비장한 서원을 하였다. 지옥이 과연 있는지 우린 모른다. 다만 지옥중생을 돌보겠다는 지장의 염원은 곧 지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가겠다는 뜻임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인도 사회에서 지옥이란 다름 아닌 불가촉 천민들만이 모여 살면서 참혹한 삶을 견뎌야 하는 빈민지역이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미륵은 본래 불교의 상상세계인 천상계 사천(四天)의 하나인 도솔천 내원궁에서 석가보살과 함께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륵의 근기는 석가의 근기보다 단연 뺴어나서 먼저 성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가의 수행이 맹렬하여 100겁이나 걸리는 보살의 수행기간을 91겁에 마치고 먼저 성불함으로써 석가가 미륵의 스승, 또는 선배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석가가 지금 세상의 부처(현재불)라면 미륵은 미래에 성취될 부처(미래불)라고 경전에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륵은 석가의 탁월한 제자로서 종교적 천재였는데 일찍 요절했으며, 이후 신화적 존재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요절했다는 젊은 미륵보살은 석가의 법을 미래로부터 실현할 분이었다. 미륵은 지장과 마찬가지로 민중 구원의 염원을 빌었는데, 미륵(彌勒)이란 말 자체가 한자로 풀면 '자씨(慈氏)' 곧 서방정토의 관세음보살이 베푸는 것과 같은 '자비' 란 뜻이다.

 

사진출처=namdokorea.com

불교의 유토피아, 미륵세계

그러나 본래 미륵신앙은 미륵이 메시아로 내려와 세상을 온통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민중들의 열망에서 나온 것이다. 도무지 불법이 통하지 않는 말법시대가 가까이 오면, 고대의 이상적 통치자인 전륜성왕이 나타나서 온 땅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다스려 불국토를 만들 것인데, 이때엔 사람이 8만4천 살까지 살게되고, 그래야 미륵이 마침내 도솔천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취된 미륵세계에서는 미륵만이 홀로 부처가 되어 추앙받는게 아니라, 모든 중생이 다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적 구원의 상태가 곧 미륵세상이다.

"미륵불 정토는 깨끗하기 짝이 없는 삶이라 거짓과 아첨이 없는 경계다. 온 세상이 평화로워 도둑이 들어올 근심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 또한 늙고 병드는 데 대한 걱정도 없고, 물과 불로 인한 재앙이 없으며, 전쟁이나 가난이 없고, 짐승이나 식물로 인한 해독도 없다."(<중국의 천년왕국>, 고려원, 69-70쪽)

그런데 이런 세상은 아시아의 전 역사 속에서 새로운 나라의 도래를 열망하며, 현실적인 부조리와 고통을 낳는 난세 속에서 사회를 변혁시키는 민중운동의 실마리가 되었다.

미륵세계를 뜻하는 '용화세계(龍華世界)'는 민중들이 지금 겪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다른 현실이었기 떄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이 세계에서 계두성이란 큰 도시가 생길 것이다. 그 나라의 땅이 기름지고 풍족하여 많은 사람과 높은 문리로 거리가 번성할 것이다. ... 대지는 평탄하고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갖가지 보배가 수없이 많으며, 마을과 마을의 닭 우는 소리가 서로 접하여 있다. 이때에 아름답지 아니한 꽃이며 과실나무는 말라서 없어지고 추하고 악한 것 또한 스스로 소멸한다. 기후가 화창하고 적당하여 사시의 계절이 순조로워 사람의 몸에 질병이 없으며,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커지지 아니하고 은근하여서 사람이 평등하고 모두 한가지 뜻으로 서로를 보게 되어 기쁘고 즐거워하며, 착한 말로 서로 오가는 뜻이 같아서 차별함이 없다."(「미륵경의 세계」, 여익구, 지양사 114-115쪽)

그러니 어느 중생인들 이런 세계를 바라지 않으랴. 이런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꿈꾸지 않으랴.

첫번째 천사가 전하는 기쁜 소식

말법시대가 가까이 옴에 따라서 현세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달할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요한은 증언한다(묵시 14,6). 그가 미륵이어도 좋고 전륜성왕이 오심을 알리는 사자라 해도 좋다. 그 천사는 이제 심판의 때가 왔으며,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무도한 짐승들이 다스리는 바빌론이 무너졌다고 알렸다.

이제 새로운 나라가 올 것인데 누구든지 그가 왕후장상이라 해도 그 짐승에게 절을 한 자들은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자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의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14,10). 그래서 우상숭배를 한 자들은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하리라. 다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킨 거룩한 백성들만이 행복을 누릴 것이다. 짐승의 통치 아래서 신음하고 목숨을 위협받으며 견뎌왔던 백성만이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 나라는 저승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묵시록에서는 한사코 그 나라가 가까운 장래에 올 것이며, 이 땅에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런 나라를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아미타불'만을 부르면서 제 잇속을 챙기는 데 바빴던 사람들에게 보장된 현세와 다름없는 안녕을 약속하는 나라가 아니다. 현세에서 죄없이 고통받으면서도 미륵세계, 유토피아, 하느님의 나라를 믿으며 자신의 영혼을 정갈하게 준비해왔던 백성들의 몫이 될 나라이다. 우리의 힘이 미약하다고 하여도, 그날이 오면 부족한 것은 메시아께서 채워줄 것이며, 어린양이 세워줄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마무리 묵상] 

지옥중생들에게로만
치달리던 마음.
땅으로 흙으로 바닥으로만
시선을 모으려는 마음.
풀섶을 헤치고 얼굴을 내미는 새순처럼
여린 목숨 더더욱 아끼려는
우리네 살풋한 마음이
세상을 구원한다지요.
하느님.
모든 위대한 것은 바닥에서 시작된다는
소박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저희가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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