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 사랑의 십자군, 묵가의 나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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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 사랑의 십자군, 묵가의 나팔소리
  • 한상봉
  • 승인 2019.02.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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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종교심성으로 읽는 요한 묵시록-14]

저 안쓰러운 불빛
김건남-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의 질은 더욱 낮아지는
도시의 오지마을엔 진종일
살끝 시리게 바람이 분다
얼어붙은 밤하늘엔
차가운 쪽달 하나
허기진 꼭지마을 지키고 있다
가파른 골목마다 풀풀
한숨만 떠다니는 101번 종점
창틈으로 새어나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불빛
저 안쓰러운 불빛도
밤마다 사랑을 꽃피우고 있을까
하루하루 몸팔이로 떠도는
날삯꾼은 서러워도, 하늘 아래
언젠가 허물 벗은 삭풍이
화사한 물바람으로 불어오리니
그날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리

[오늘의 성서] 요한 묵시록 11,1 - 14

측량자를 손에 든 증인

요한 묵시록은 일곱 번째 나팔이 불기 전에,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두 증인이 나타나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리라고 전한다(묵시 11,3). 일천이백 육십 일, 즉3년 반 동안은 이방인 안티오쿠스가 유다인들을 박해하던 기간이며, 이 죄 많은 시절에 예언자들은 죄갚음을 상징하는 거친 베옷을 입고, 원수들과 의롭지 못한 자들을 고발할 것이었다.

이 두 증인은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그루 올리브나무인데, 올리브나무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정치적 지도자요, 종교적 지도자를 뜻한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릇된 세상을 비판하고, 온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기에 합당하도록 변화시킬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땅을 비추는 빛(11,4)이며, 또한 모세처럼 물에 대한 권능과 엘리야처럼 불에 대한 권능(11,5)을 받은 예언자이다.

이들 증인들은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 그리고 성전 안의 영역과 이방인들에게 더럽혀질 바깥 뜰의 영역을 구분하는 '측량자' (11,1)를 지니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잣대를 지니고 있다면 그들을 죽이고서 기뻐하는 자들은 복음과 반대되는 생각을 지니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일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심을 거부하고,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자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이 발생한 곳을 두고 '주님께서 갑자기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11,8)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끝날에 하느님께서는 이 두 증인을 불러,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리라고 한다. 이처럼 항상 피지배 민중들과 약소국의 편에 서서 차별 없는 사랑을 부르짖었던 증인들이 있었는데, 중국의 묵자와 그의 공동체였던 묵가였다. 이들은 중국에서 '사해동포주의'라는 유토피아를 성취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싸웠던 집단이며, 지배자의 논리에 밀려 결국 역사에서 사라져 간 좌절한 혁명을 상징한다.

검은 성자, 묵자

묵자

묵자(墨子, 기원전 470?-391?)의 성은 '묵'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묵자는 태어난 나라도, 태어난 날과 죽은 날도 전해지지 않는다. 단지 공자보다 뒤늦게 활동한 듯 싶다. 역사란 지배자들에 의해서 씌어지는 법일 텐데, 그의 신상 기록이 뚜렷하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묵자의 사상과 행동이 지배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묵'씨 성을갖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묵'은 '검다'는 뜻도 있고, 붓글씨 쓸 때 사용하는 '먹' 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그가 묵형(墨刑)을 받아서 얻은 이름인지도 모른다. 묵형이란 죄인의 얼굴에 먹으로 죄목을 떠 넣는 형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도둑질을 하면 '도'라는 글자를 문신처럼 새겨 넣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 형벌은 지배층에게는 가하지 않았으므로, 묵자는 아마도 하층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묵자의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묵자라고 불렸을지도 모른다. 피부가 검다는 것은 곧 그가 노동하는 계층임을 알려준다. 실제로 묵자의 사상 속에는 '먹줄'과 같은 도구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묵자를 따른 집단은 대부분 하급 무사들이거나 기술자들이었으며, 묵자 역시 뛰어난 기술자였다고 한다.

반전 평화주의를 위한 무사

처음에 유가 사상을 배웠던 묵자는, 공자가 봉건적인 신분제도를 인정하고, 분수에 적절한 덕을 강조하였으며, 주로 임금 등 지배층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편 데 실망했다. 그는 오히려 줄기차게 피지배 민중들을 편들었으며,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주장했다. 그의 사상이 담긴 책 <묵자>는 본래 71편이었는데 지금은 53편만 전해진다. 이 중에는 11편의 병법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공격용이 아니라 주로 방어 위주의 병법이다. 그는 철저한 반전주의자 였던 것이다.

하급 무사 출신이 많았던 제자들도 전쟁에 참여했지만,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는 방어 전쟁만 행했다. 보통 병사들은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따지지 않고 오직 이기겠다는 생각만으로, 또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임금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슨 전쟁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 들었다. 그러나 묵자의 제자들은 전쟁에서 윤리를 따졌으며, '평화주의' 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방편으로만 전쟁에 참여했다.

묵자가 전쟁에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이며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벌이는 지배 집단을 '도둑' 으로 비유했다. 군주는 전쟁으로 땅과 전리품을 얻겠지만 농부들은 전쟁터에 끌려나가 농사일을 망치고, 농토는 쑥대밭이 되며, 자칫하면 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묵자는 '인의'를 강조했는데, 어느날 '공수반'이란 기술자가 이를 비웃으며 물었다. "나는 바다에서 전쟁할 때 상대방의 배를 잡아당기는 갈고리와 상대방의 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밀대를 만들었소. 선생은 걸핏하면 어질게 살라, 의롭게 살라 하는데 거기에도 내가 만든 갈고리나 밀대 같은 것이 있소?"

그러자 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만든 갈고리와 밀대는 당신것보다 더 훌륭하지요. 나는 사랑을 이용해서 남을 끌어들이고 겸손을 이용해서 남을 막아냅니다. 사랑이 아니면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고, 겸손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에게 대들게 되지요. " 이처럼 묵가는 단순한 기술자나 무사들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관을 지니고, 그들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강철 같은 동지들이었다.

 

무차별적 사랑의 의인

묵자 사상의 핵심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였다. 겸애는 차별 없이 서로 사랑하여 정치적 평등을 이루자는 뜻이며, 교리는 서로 이익을 나누어 경제적 평등을 이루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둘이 다른 게 아니라서 겸애가 이뤄지면 교리는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전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묵가 사람들이 방어 전쟁을 할 때 무사들은 성벽에 둘러서서 적을 막아내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성벽 어느 한쪽이라도 무너지는 날이면 결국 다같이 죽게 된다. 따라서 우리편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서로 사랑으로 아끼고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묵자는 자기를 위하듯 친구를 위하고, 내 부모를 위하듯 친구의 부모를 위하라는 보편적 사랑(겸애)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가 반대한 것은 차별적 사랑을 뜻하는 '별애'(別愛)였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못살게 굴고, 다수가 소수를 괴롭히고, 귀한 자리에 있는 자가 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부리고, 교활한 자가 어리석은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은 모두 차별적 사랑때문이라는 것이다.

묵자는 이런 상황을 무차별적 사랑(겸애)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위하듯 남을 위하고, 자기 나라를 위하듯 남을 위하고, 자기 나라를 위하듯 남의 나라를 위한다면 온 세상이 이로워져서 결국 그 이익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잃어버린 유토피아의 꿈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는데 '거자'(鉅子)라고 불리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굳게 뭉쳤다. '

거자'란 "큰 사람"이라는 듯으로, 기술자들의 연장통을 관리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회남자>에는 '묵자를 따르는 무리가 180명인데, 그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속에 들어가는 일이건 칼날을 밟고 서는 일이건 절대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적혀있다.

아울러 이들은 금욕적 생활을 하였는데, 비좁은 방에 살면서 기둥에 조각을 하거나 벽을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다. 음식은 흙으로 빚은 그릇에 담긴 옥수수나 조밥, 그리고 국뿐이었다. 옷도 여름에는 베옷, 겨울에는 사슴 가죽만을 입었다. 또한 상류층만이 특권적으로 누리던 노래나 오락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화려한 장례를 반대하고 얇은 관 하나만 가지고 검소하게 치르길 바랐다.

이들은 오늘날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처럼 오로지 남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할 뿐이었다. 규율을 어기면 엄한 벌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벼슬자리에 있다가 묵가의 금기사항인 공격 전쟁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거자로부터 소환당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묵자의 사상은 대다수 지배계층으로부터 외면당할수밖에 없었다. 특히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뒤를 이은 한나라가 유가를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이자 묵가의 설 자리는 더이상 없어졌다. 결국 고대 중국대륙에서 서로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세상에 대한 꿈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마무리 묵상] 

총포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세상은 이미 전쟁 마당입니다.
화살촉과 칼날이 번득이지 않아도
살기가 도처에 사방에 낭자합니다.
이윤 전쟁,
출세 전쟁,
온갖 성공 전략과 처세술이 난무하지만
맨 정신으론 사람 만날 수 없고
투명한 시선으론 영혼을 거둘 수 없습니다.
선물이 뇌물이 되고
사랑은 불륜으로 변했습니다.
나눔은 주식 배당이 되고
섬김은 아부로 전락했습니다.
이젠 세상에
순수한 사랑이란, 형제애란
아예 없어진 것일까요, 하느님.
세상을 거슬러 사는 그런
당신의 증인이
아예 없어진 것일까요, 하느님.
그런 사람 우리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우리 주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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