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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면

[글쓰기 연습-이현정]

시댁에 김장을 하러 왔습니다. 아침 일찍 동네 아주머니들이 분홍 고무장갑을 하나씩 들고 한두 분씩 모이면서 김장이 시작됩니다. 구수한 평창 사투리와 숨넘어가는 질펀한 웃음, 동네의 크고 작은 일 나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의 반가움이 모두가 벌건 김장속과 함께 버무려져 배추속이 됩니다. 인정과 웃음이 넘치는 소박한 사람살이의 모습은 저 어릴 적 그것과 비슷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삽니다. 경기도와 맞닿은 서울 변두리의 낮은 담벼락 사이로 말과 정이 오고갑니다. 아빠들은 일을 하고 엄마들은 집안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웁니다. 우리집도 앞집도 옆집도, 세 살던 순영이네도 둥그런 두레밥상 위에 스뎅 밥그릇을 올려놓고 아빠가 퇴근하면 저녁밥을 먹습니다. 놀러 온 옆집 아이도 으레 밥을 먹여 보내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가난하지만 풍족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유난히 먹는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여름엔 텃밭에서 키운 상추에 쌈장만 넣어 입이 찢어지게 달게 먹었고, 겨울밤엔 아랫목에 궁둥이를 대고 삶은 고구마에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를 먹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우리집에 오셨는데, 엄마는 먹을 것을 내고 그들을 아랫목에 앉히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린 저는 어른들 이야기가 궁금해 슬쩍 엿듣기를 즐겼는데 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아주머니들은 자주 울었고 엄마는 먹을 것을 권하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습니다. 신기하게도 실컷 울던 아주머니들은 머지않아 얼굴이 환해지고 깔깔거리며 웃고, 마침내 치마를 살랑거리며 가볍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린마음에 어떻게 어른들은 그렇게 실컷 울고 또 실컷 웃을까 신기했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엄마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철이 들어 알았지만 도시노동자였던 아버지의 벌이로 세 자매와 큰집 언니, 오빠까지 함께 살던 그 시절에 엄마는 매달 쌀독을 걱정했답니다. 자식들에게 실컷 고기도 우유도 과일도 먹이지 못해 속상했다 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따뜻한 사랑 때문인지, 야문 살림 덕분인지, 뭐든 나누어 먹는 이웃 간의 정 때문인지, 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풍족하기만 합니다. 부족한 것과 풍족한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각자가 느끼는 부족과 풍족의 감도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복지전문가에서 '현정샘'으로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서울 신월3동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먹고 놀며, 동네 아이들을 위해 여러 일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사회복지사, 센터장이란 직함도 있지만, ‘현정샘’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노년학을 공부하고 노인복지를 할 때만 해도 제가 아이들과 이렇게 놀면서 지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회복지전문가, 상담가가 되어 좋은 곳에서 일하고 인정받고 싶어 학위를 따고 무슨무슨 실천방법론을 배우며 마치 내 목표가 복지관의 관장인양 승진 욕심을 부리며 살았습니다. 승진을 하고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매일 몸이 붓고 얼굴은 푸석거리고 비릿한 입 냄새가 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사례관리 하는 할머니 집 방문 후 너무나 지쳐 난곡에 있는 빈 성당에 가만히 앉아 쉬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믿음은 없어,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잠시 혼자 있을 자리가 필요했죠. 눈을 감고 있는데 내 안의 저 깊숙한 곳에서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그 울림은 귀가 아닌 몸통으로 들은 소리였기에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이 체험은 저에게 특별했지만 일상에 밀려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았습니다. 효과와 효율을 ‘은근’ 강조하는 재미없는 업무는 저를 시들게 했고, 부서, 동료 간 경쟁에서 승리해도 더 이상 기쁘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해져 마침내 9년간 일한 복지관을 대책 없이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려놓아라.” 하는 그 목소리는 제게 야곱의 사다리였고, 제 영혼이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싸우고 미워하다 다시 좋아하는...아이들

이직 후 ‘현정샘’으로 불리며 아이들과 깔깔 웃고, 놀고, 먹고, 여행 다니는 지금 저는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목표로 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당사자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며 지금 일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집중하고 정성을 다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옷을 옷걸이에 걸고, 사용한 연필과 지우개를 제자리에 정리합니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질서를 익히고, 관계 속에서 타인과 다름을 배웁니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엄마가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했듯이 화가 난 아이들의 말을 듣고, 위로하며, 달콤한 초콜릿을 건넵니다. 아이들은 그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으로 마음속 불을 뿜던 용을 잠재웁니다.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 아이는 다시 팔랑거리며 놀이에 집중합니다. 놀면서 자기와 타인의 경계를 배우고, 싸우고 미워하다 다시 좋아하고, 용서하고 용서받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찾아갑니다.

10이 넘어가는 덧셈을 하는 동생에게 자기 손가락을 빌려주고, 신발 끈이 풀려 넘어지는 동생을 일으켜 신발끈을 묶어주고,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저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에는 빈자와 부자가 따로 없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는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복잡한 행정 일도 처리해야합니다. 지자체와 정부에 예산증액 요구시위와 각종 토론회에 참여하고, 다양한 조직을 구성하여 압박합니다. ‘아동온종일돌봄체계’를 만드는 정부의 정책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변화를 시도합니다.

시 읽는 새벽

우리 집은 새벽 5시면 불이 켜집니다. 부지런한 남편은 운동과 책읽기로 새벽을 시작합니다. 중학교 1학년 딸도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공부를 합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 힘에 부치지만 저도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요즘엔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시를 필사합니다.

어두운 새벽, 이 시간은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시 필사는 마치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묘한 매력입니다. 가끔 식구들 때문에 고단하다고 짜증을 내던 제 하루 시작이 ‘변한’ 것이지요. 평소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남편은 요즘, 가끔 시를 읽어줍니다. 딸도 <윤동주 시집>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시를 읽어주고 함께 나눕니다. 책상에 여러 시집이 쌓이고, 시어들이 집안을 유유히 떠다닙니다. 2018년 초겨울, 우리 집 풍경입니다.

“땅과 가까이 살고, 명상을 할 때는 마음 깊숙이 들어가라. 다른 사람과 사귈 때는 온유하고 친절하라. 진실 되게 말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라. 일처리에 유능하되, 행동으로 옮길 때는 때를 살펴라. ...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한다.”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되어 곡기를 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산 백 년 동안 세상이 좀 더 나아졌다.”고 피케팅을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제 앞길이 어떻게 열리고 닫힐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삶과 죽음은 저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일상에서 정성을 다하며, 새벽엔 시를 읽고, 저녁 식탁에선 사랑하는 사람과 와인 한 잔 하는 여유를 느끼며 싶습니다.
 

이현정 비앙카
가톨릭일꾼 글쓰기 참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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