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 처음 만나 영원히 사랑한 여인
상태바
마리아 막달레나, 처음 만나 영원히 사랑한 여인
  • 한상봉
  • 승인 2019.01.14 0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서의 조연들-13
The Sorrow of Mary Magdalene - Jules Joseph Lefebvre, (1836–1911).


그날 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임은 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고, 저는 여지껏 임에게서 떠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이름으로는 그분을 불러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제가 엄마의 자궁에 들어앉기 전부터 영원에서 영원까지 갈망하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랑만으로 충분한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어지간히 상처를 받았던 가엾은 여인입니다.

제 사랑이 저를 배신하고 몰인정한 바리사이들이 저를 광장으로 내몰아 그분 앞에 내동댕이쳤을 때, 저는 우주 가운데 홀로 던져진 불쌍한 짐승이었지요. 사람들은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면서도, 저게 돌을 던져 자신의 숨은 욕망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의 죄업을 대신해서 죽을 목숨이었고, 욕정에 눈먼 이들을 위해 봉헌될 희생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사악한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 저는 흙 묻은 그분의 발치에 주저앉아서 그분의 단호한 떨림을 들었지요. “누구든 죄 없는 이가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수런거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사위는 이내 고요한 침묵이 장악했습니다. 아무도 스스로 결백함을 마음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마른 모래먼지가 얼굴에 훅 끼칠 때, 그분이 제 손끝을 이끌어 세우며 말씀하셨죠. “여인이여, 나도 당신의 죄를 묻지 않겠소.” 그 음성은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들렸는데, 고개를 들어 그분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저는 눈멀고 귀멀었습니다. 그분은 제 영혼을 자석처럼 빨아들이고, 저는 연모(戀慕)의 정에 휩싸였습니다.

귀에서 이명(耳鳴)이 들리는데, 한참을 흙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답니다. 마른 흙에 눈물이 고이고, 제 가슴에선 엉키고 뒤틀려 있던 모든 게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탐하고 학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마저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저는 텅빈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분은 당신의 길을 가고 없었고, 저는 저대로 두어 시간을 더 그 자리에 앉아 ‘이게 무엇인가?’ 묻고 있었지요. 

더 큰 사랑에 접속되어 그 뒤로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초점이 고정되었으므로 저는 오히려 만사에 자유로와졌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그분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어떤 영향력도 제게 줄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이란 게 이런 것일까요?

저는 여인의 몸으로 먼 발치에서 그분을 따라 다녔습니다. 밤이 되어 그분이 언덕아래 올리브 나무아래서 동료들과 주무시려고 하실 때, 저 역시 다른 무리와 함께 건너편 언덕에 자리를 잡고 누워 생애의 가장 편안한 잠을 청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이들이 은밀히 저를 찾아왔지만, 이젠 제가 은밀히 꿈결에서 그분을 찾아갑니다.

저를 죽이려 했던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끌려가 그분이 억울한 재판을 받고 참혹한 십자가를 지셨을 때, 마음으로는 저도 그분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분이 피를 토하면 저 역시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분의 상처를 저 역시 새겨넣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이 혼비백산 흩어졌을 때, 저는 그분의 어머니와 함께 있었고, 그분이 십자나무 위에서 고통과 외롭게 투쟁하고 계실 때도 저는 그분 발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분이 제 발목을 꽉 쥐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분께 눈이 멀어 그분의 미세한 음성이라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다음날 어둠이 미처 걷히기 전에 저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분이 이승을 떠난 지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저는 그분 주위를 떠나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작 그분께 달려가 보니 무덤은 비어 있었고, 누군가 제 임을 아예 가져가 버린 줄 알았습니다. 제가 무덤 앞에서 밤을 지내야 했던 것일까요? 정신이 아득해지고, 제 창백한 사랑은 발을 동동구르며 울며불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침내 새벽 동이 무덤을 밝히기 시작했지만, 제 영혼은 뜻모를 어둠에 잠겨 있었던 거지요. 그때에 햇발처럼 따스한 음성이 다가왔습니다. “마리아야!” 그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살아 제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이여!”하던 그 음성이 다시 발음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분은 죽어 영원히 제게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덧붙임: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돌팔매를 맞을뻔 했던 그 여인과 마리아 막달레나가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같은 이야기에선 동일인으로 가정하고 풀어보았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종이신문을 구독 신청하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하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