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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길을 함께 열어주는 '공동기도'전례적 영성이란 무엇인가?-2

모든 그리스도교 영성은 궁극적으로 그 영감을 성서에서 찾는다. 그리고 전례전통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전통의 대변자들은 전례의 회중이 성서 이야기 주위에 모이고, 거기에서 동기와 에너지를 뽑아낸다고 인정한다.

어떤 형태와 양상을 취하든 간에 전례는 언제나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기념하고, 특히 예수님의 삶, 죽음과 부활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기념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신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참으로 예배의 섬김에서 성서읽기는 전례전통이 성서에 의존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전례의 영적 힘은 또한 성사성, 인간 역사 속에서 거룩한 자비와 사랑을 볼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의지를 성서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그 뿌리를 둔다.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말한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피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1,20).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례전통에서 교회의 공동 기도는 하느님의 본성과 힘의 ‘가시성’이 가장 선명하게 실현되는 사건이다. 이 점이 전례전통 전체를 통하여 울림을 거듭하는 것이다. 우리는 ‘몸을 취하고’, 그리고 하느님은(우리를 창조한)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로 몸을 입어야 함을 아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감각이 인지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고 인지할 수 있는 것들조차 모두 다 영적이다. 그래서 세례에서도, 선물은 물이라는 인지할 수 있는 것에 의하여 주어진다. 그러나 성취되는 것은 영적인 것으로, 그것은 탄생이며 쇄신이다. 만일 우리에게 형체가 없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옷을 입지 않는 형체 없는 선물을 주었을 것이지만,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인지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영적인 것을 주는 것이다."(요한 크리소스톰)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적 신심에 있어 교회 전례 생활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이 전통을 뒷받침해주는 성서적 인류학도 있다.

 

 

예식적인 행동은 –그리스도교 전례가 그 한 가지 예인데– 인간존재가 ‘중심이 되고,’ ‘성찰하며,’ ‘선택으로 깨어있고,’ ‘확신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 이 모든 단어들은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영적 성장을 묘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례전통은 언제나 영적 삶에 있어 예식(의식)의 힘에 관하여 알아왔다. 우리는 전례적 의식이 주는 영적 혜택을 성찰하기 위하여 니싸의 그레고리(335~395)가 사용하는 단어에서 이와 똑같은 통찰을 짙게 발견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절한다. 또한 아드님 앞에서도 똑같은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절한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그리고 이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절한다." 

이렇게 말한다 하여 전례전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신심, 묵상 그리고 관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것들은 언제나 이차적이고 교회의 공동 예배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의미다.

개인 기도보다 전례의 우선성에 대한 전통의 주장 일부는 전례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형성되는 ‘문화’ 자체라는 확신에 자리하고 있다. 또다른 사람들은 개인 기도에 대한 전례의 우선성은 전례가 몸, 정신, 마음과 영혼이 다 관여하는 더 ‘전적인’ 신심의 형태라는 사실로부터 온다고 주장한다.

전례전통의 다른 주자들은 여전히 전례의 힘은 우리의 신심을 볼 수 있게 하는 그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개인 기도는 우리의 가슴 안에 갇혀있는 신심에 불과하지만, 공동 기도는 우리의 외적 행위로 표현되고 예증되는 신심이다. 그것은 거룩함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빛은 사람들 앞에, 그리고 세상의 눈앞에 빛난다. 공동 기도는 거룩함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고, 인류 가운데에 종교의 모습과 감각을 고양시킨다."(죠지 하버트)

또다른 사람들은 공동 예배가 인간의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으려면 필요한 ‘영혼의 양식’이라고 말한다. 어떤 퀘이커 교도는 전통을 이렇게 표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융합하고 기대하는 곳에는 누적된 영적 힘이 확실히 있다 … 각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그의 영혼을 뻗으며,’ 이어 모아진 세찬 기운은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영혼의 길들을 열도록 도와준다."(루퍼스 죤스)

퀘이커와 성공회 교인, 그들의 예배 형식은 다양하고 다르지만, 어떤 공동 기도이든 간에 예배가 영적 생활에 기본이라는 사실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6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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