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사파리의 집'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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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사파리의 집'을 보셨나요?
  • 유형선
  • 승인 2018.10.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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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사건의 발단은 친구의 페이스북이었습니다. KBS스페셜 <마이크로의 사파리 집> 예고편을 공유하며 ‘역작’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재생을 눌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화면 가득 새가 날고 꽃이 핍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옵니다. 나비가 날아와 꽃에 앉습니다. ‘뒤뜰에서 만나는 작은 우주, 생명 그물로 이어진 집 속의 집’이라는 자막이 매력적입니다. 37초 예고편 동영상 링크를 옮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3q9vMpZT8)

본 방송을 하던 10월 4일, 출장 중이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끌고 호텔로 돌아와 씻고서 TV를 켰습니다. 앞 부분은 놓쳤지만 20여분 동안 숨 죽여 보았습니다. 참으로 경이롭고도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다큐멘터리 만든 분은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합니다. 방송 수신료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두 딸과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네이버에서 ‘KBS 스페셜’을 검색한 후 파란색 창 ‘다시보기’를 누르면 다운로드 화면이 나옵니다. 1,650원에 풀HD 고화질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다운 받은 파일을 TV에 연결했습니다. 58분 동안 온 가족 함께 참으로 아름답고도 놀라운 자연 속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넋을 놓은 시간이었습니다.

 

 

무려 2년 동안 파주시 오도동 장명산 아래 자리한 ‘꾸룩새연구소’에서 촬영했답니다. ‘꾸룩새연구소’는 한적한 시골마을 농가를 개조하여 정다미 소장과 어머니 임봉희 부소장이 운영합니다. 어릴 적부터 새를 좋아한 정다미 소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리부엉이와 제비를 연구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새를 연구합니다. 수리부엉이나 올빼미의 꾸룩꾸룩 울음소리가 좋아서 ‘꾸룩새 연구소’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창고를 개조해 연구실과 작은 강의실을 만들었습니다. 모이통 여러 개가 나무에 달려 있고 집 뒤에는 물먹이 웅덩이, 평상, 새 관찰대가 있습니다. 죽은 나무들을 쌓아 벌레들의 집으로 만든 ‘버그 호텔’도 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70종이 넘는 새가 뒤뜰에 찾아온답니다. 2012년 어머니의 권유로 수리부엉이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정다미 소장은 정성 들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owl.or.kr/221315821691)

다큐멘터리 <마이크로 사파리의 집>에 수많은 생물들이 출연합니다. ‘꾸룩새 연구소’를 중심으로 뒤뜰과 장명산이 서로 이어진 생태계입니다. 목련나무에 새집을 만들어 주니 곤줄박이가 둥지를 틉니다. 뒤뜰에 땅을 파서 물 웅덩이를 만들어 주니 곤줄박이, 물까치, 홍여새, 황여새가 찾아옵니다.

새들은 나무도 심습니다. 새들이 와서 먹이를 먹고 배설을 하면 씨앗이 심어집니다. 덕분에 뒤뜰은 각종 나무로 무성합니다. 때죽나무에 꽃이 피면 어리호박벌, 뒤영벌, 꿀벌이 찾아옵니다. 뒤를 이어 담쟁이덩굴도 꽃을 피웁니다. 담쟁이덩굴도 새들이 심었습니다.

 

집 뒤뜰에는 벌레들을 위한 집도 있습니다. 일명 버그 하우스. 죽은 나무를 쌓아 올려 만들었습니다. 조롱박벌, 왕가위벌, 어리극동가위벌, 홍가슴호랑하늘소, 고치벌, 어리호박벌이 버그 하우스에 삽니다. 남의 집에 알을 낳아 기생하는 생물들도 나옵니다.

별탕감벌은 애벌레를 잡아 마취시키고 알을 낳습니다. 알이 부화하면 마취된 애벌레는 싱싱한 먹이가 됩니다. 그런데 별탕감벌이 알을 낳은 자리에 청벌이 도둑처럼 찾아와 알을 낳습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부화장소에 기생하여 번식합니다. 밑들이벌은 더듬이로 나무 속 가위벌의 애벌레를 찾습니다. 가위벌 애벌레를 찾으면 몸 속에 숨겼던 산란침을 빼어 나무에 깊이 꽂아 가위벌 애벌레 근처에 알을 낳습니다. 소름 돋는 기생입니다.

집 근처 장명산에 오르면 멋쟁이새, 오색딱따구리, 흰눈썹황금새, 수리부엉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꿀벌과 깡총거미도 삽니다.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 달았더니 꿀벌들이 들어와 벌집을 지었습니다. 깽깽이풀, 서양민들레, 제비꽃도 있습니다. 제비꽃은 씨앗을 탁탁 쏘아서 멀리 퍼트립니다. 다큐멘터리는 새와 꽃과 곤충의 눈높이에서 사계절을 보여줍니다. 미물(微物)은 없습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살아가는 놀라운 우주입니다.

 

“아! 온 가족 함께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를 보니 너무 좋아요!”

중학교 1학년 큰 딸 수민이가 탄식하며 내뱉은 말입니다.

비록 TV 화면이었지만 저희 가족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주와 생명의 기적을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작은 딸 수린이는 꿀벌집에서 꿀을 따서 맛보는 장면이 가장 좋았답니다. 큰 딸도 꿀벌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 답니다. 육각형이 이어진 벌집에 꿀도 채우고 알도 낳아 기르는 게 놀라왔습니다. 아내는 버그 하우스에서 여러 곤충들이 사는 모습을 꼽습니다.

곤충들이 나무를 파고 들어가 집을 짓고 재료를 물어와 꾸미고 알을 낳고 애벌레의 먹이를 구해 저장합니다. 마치 인간들이 터를 잡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처럼 애잔하고 장엄했답니다. 저는 매미가 번데기를 뚫고 나오는 장면을 꼽습니다. 매미 심장은 등에 있습니다. 온몸의 혈액을 심장에 모아 등을 부풀려 번데기를 뚫고 나옵니다. 놀라웠습니다.

연구소를 꾸려가는 모녀의 얼굴이 참으로 해맑습니다.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얼굴 가득 배어 있습니다. 꽃과 새와 곤충과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일년 열 두 달 새와 꽃과 곤충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삶이 부럽습니다.

 

문득 알아챘습니다. 경이로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삶을 살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덧없습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속 곤충과 동식물의 몸짓이 한결같이 경이롭고 장엄하듯, 우리네 일상도 우주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분명 경이롭고 장엄하겠지요?

성경 읽을 때나 미사 드릴 때만 하느님을 만나는 게 아닐 겁니다. 별과 꽃과 풀과 새들에 깃든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가족과 이웃의 얼굴 속에서 창조의 신비를 만나고 싶습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주를 지으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
일상의 삶 속에서
해와 달과 별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하소서.
풀과 나무의 노랫소리를 듣게 하소서.
새와 벌레의 노랫소리를 듣게 하소서.
짐승과 물고기의 노랫소리를 듣게 하소서.
우주의 우렁찬 대합창 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리고 온 우주와 함께
우리도 당신께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시편을 묵상하며 바치는 오늘의 기도’ 제1권, 정호경 지음, 성서와 함께, 78쪽)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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