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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만남, 리 호이나키

[유형선 칼럼]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리 호이나키(Lee Honiacki)가 쓰고 김종철 선생이 번역한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녹색평론사, 2007) 입니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시험을 보던 리 호이나키가 시험을 포기하고 시험장 밖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이 책은 시작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해 구축해왔던 안락한 세계가 그날 아침 그렇게 하여 무너졌다. 무엇인가 내 인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내 위(胃)가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9쪽)

리 호이나키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자그마치 7년을 공부하여 이제 박사학위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시험을 보다가 시험을 포기하고 나옵니다. 리 호이나키는 아내와 두 자녀도 있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안정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그걸 박차고 나온 겁니다.

저자는 더 이상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제 아무리 박사학위와 교수제도가 안락하다 할 지라도 너무나 타락한 미국 사회 안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타락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하여 갈수록 만연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부도덕한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불의(不義)에서 곪아 터지고 있는 고름냄새’(13쪽)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리 호이나키는 깊이 썩어버린 미국 정권을 향해 질문합니다.

"이 나라가 도덕적으로 하나의 괴물로 변해버렸다면 내가 어떻게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가?" (21쪽)

리 호이나키는 저항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저항하는 방법을 결정합니다. 베네수엘라로 망명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아내도 동의합니다. 이윽고 두 자녀를 데리고 베네수엘라로 자발적 망명길에 오릅니다.

제목이 보여주듯 이 책은 저자 리 호이나키가 정의롭지 못한 미국의 주류 사회를 거부하며 때로는 망명생활을, 때로는 농촌생활을 하는 걸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비틀거리며 좌충우돌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자신의 가슴 속 깊숙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정의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지음), 김종철(옮김), 녹색평론사, 원제 >

리 호이나키와 녹색평론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의 일부가 국내에 가장 처음 발표된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녹색평론>에 7장 <‘아니오’의 아름다움>이 김종철 선생 번역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부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번역되어 <녹색평론>에 실리다가 2007년 드디어 완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격월간지 <녹색평론>이 어떤 잡지인지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종철 선생이 발행하는 <녹색평론>은 1991년 발행된 이후 지금껏 대한민국 생태운동을 등대처럼 비추며 이끌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되는 격월간지"라는 발간 취지를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인류가 저질러 온 환경파괴 때문에 지구생태계의 파멸이 코 앞에 닥친 상황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녹색평론>은 지구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협동 공동체를 조직하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며 농업 중심의 경제공동체를 창조적으로 복구하자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이제는 현대 문명에 저항할 때라고 외치는 잡지입니다.

창간때부터 지금껏 재생용지와 코팅하지 않은 흰 색 표지를 사용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법정스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책’이라고 칭찬하였고, 제주도 민박집 주인이 된 가수 이효리씨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이기도 합니다.

이런 멋진 잡지를 27년간 한결같이 발행하는 김종철 선생이 ‘나는 왜 이 책을 좀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라고 한탄하며 읽고 번역한 책이 바로 리 호이나키가 지은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톨릭일꾼 세미나 자리에서 김종철 선생에게 직접 들으며 도대체 어떤 책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가톨릭일꾼 세미나에서 돌아오자 마자 책을 주문했습니다. 주문한 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펼치자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제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표현을 찾지 못했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들이 페이지 마다 가득했습니다. 가슴을 무찔러 오는 문구를 만날 때마다 형광펜으로 칠하고 띠지를 붙였습니다.

책을 완독한 지금, 다시 책을 펼치면 또다른 문장들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옵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만큼은 형광펜 칠하기와 띠지 붙이지가 참으로 어리석은 독서법이었구나 싶습니다. 이 책의 모든 문장을 형광펜으로 칠할 수도 없고 모든 페이지 마다 띠지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Lee Honiacki

미국에서 미국과 다르게 살기

저자 리 호이나키가 결혼하여 대학원 학생이 되기 이전에는 도미니코회 수도사였습니다. 스페인어를 배우러 푸에르토리코에 가서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 동무가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공부를 하던 중 미국 제국주의와 부도덕한 사회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합니다. 거기서 여러 해를 보낸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을 위대한 나라가 아니라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자리’(312쪽)를 찾아 대학 교단에 섭니다. 그러나 7년 후 그 대학의 정년 보장 교수가 된 직후 대학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농부가 됩니다.

"나는 내가 다시는 소득세를 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더 많은 무기를 만드는 데 더 이상 공헌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간소하게, 가난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 근대적 미국인으로 살되,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다." (313쪽)

이 책의 대부분은 저자가 근대적 경제체제를 벗어나 농촌 공동체 속에 파묻혀 살면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리 호이나키가 비틀거리며 저항한 것은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교육, 의료, 복지 등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 아래 구축된 근대 문명에 저항합니다.

"시골 공동체에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의 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고 하는 기관들에서 내가 보아왔고 관찰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132쪽)

리 호이나키는 도시를 벗어나 농촌에서 자기 발밑의 흙을 느끼고 야생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인간이 근대적 문화에 빼앗긴 감각과 삶의 방식을 회복합니다.

"조용하면서도 기분 좋은, 현실과의 변화무쌍한 접촉을 즐기자면 주류로부터 밀려난 어떤 종류의 주변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낙오할 물리적인 장소, 주류와 떨어져서 살 물리적인 공간, 건강한 고립에 도달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기율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은 바보로 보일 만큼 어리석은 괴짜의 삶을 택하여야 할지 모른다."(134쪽)

땅에, 공동체에 다시 뿌리내리기 위하여

리 호아니키는 근대 문명을 근본적으로 비판합니다. ‘진보’라는 이름아래 추구되어 온 근대적 세계는 온 세상를 유동성의 통로 아래 위치시킵니다. 근대적 세계관이 확보한 유동성은 자본과 권력과 지식을 빠르게 이동시킵니다. 문제는 유동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정신마저 특정 장소에 뿌리박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근대’라는 삶의 방식은 결국 인간을 구체적인 장소, 즉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이탈시킵니다. 이제 인간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인 장소와 공동체에 애정을 느낄 기회를 박탈당하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자본의 흐름에 충성하도록 길들여 집니다. 이러한 근대적 문화를 통해 몇몇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흐름에 밀려 끊임없이 부유합니다. 특정 지역에 발붙여 보지 못한 인간들은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인간의 도덕성은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죄명 아래 벌거 벗겨져 문명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나는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수미일관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 것을 본다. 즉, 사람을 그 육체와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놓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이 세 종류의 분리야말로 현대적 혼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는 믿는다."(132쪽)

근대 문명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시선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리 호이나키의 여정을 뒤따라 걷다보면 문명에 길들여진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웃 주민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 맨발바닥으로 느끼는 흙 감촉, 야생 새들의 노래 같은 것들은 근대 도시생활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치들입니다. 이런 가치들을 삶의 일부로 당연히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농촌 사람들의 방식, 요컨대 한 장소에서 흙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대를 이어 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근대 문명은 농촌을 떠나는 않는 사람들을 낙오자로 평가합니다.

추방당하는 시

리 호아니키는 무엇보다 시(詩)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詩)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절[寺]에서 쓰는 말[言]’이라고 합니다. 수도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영혼의 노래가 시입니다. 그러나 근대 문명은 시를 ‘학교에서 정해진 과목에서, 그리고 아마도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일시적인 순간’(138쪽)에 감상하는 것으로 국한시켰습니다. 근대 문명은 인간 사회에서 시를 추방하면서 인간의 영혼마저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농촌사회 민중음악 속에서 시가 여전히 숨쉬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문자사회에서 시의 부재(不在)는 그 사회의 정신적 어둠을 가리키는 가장 불길한 징표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민중음악 속에 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희망의 징표이다. 저 시골교회의 일요일 오후의 행사 가운데 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이곳이 문자사회라기보다 구비사회에 더 가까운 사회임을 증언해 주는 것인지 모른다. (중략) 확실히 삶의 어떤 근본적 기초에 뿌리박고 있었다"(138쪽)

리 호이나키가 시(詩) 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구절을 하나 더 옮겨봅니다.

"시는 교육자나 설교사처럼 나를 가르치지 않는다. 시는 인간적 정념의 영원한 드라마, 변함없는 인간적 의미를 가진 주제들, 늘 새롭고 신선한 힘과 공포, 미와 질서의 이미지들을 내 앞에 제시함으로써 나를 가르친다. 나는 시적 언어의 진실 속에서 나 자신을 본다. 나는 그 언어에 이끌려 자신에 관한 진실을 성찰하게 된다."(138쪽)

돌이켜 보면 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이유는 리 호이나키가 시(詩) 언어를 충실하게 학습해 온 작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이나키와 도로시 데이, 피터 모린-아나키스트

마지막으로 이 책은 도로시데이와 피터모린의 가톨릭일꾼 운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일꾼’ 운동을 이 책에서는 ‘가톨릭노동자운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일꾼 인터넷 화면을 통해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가톨릭일꾼 운동은 1930년대 미국의 도로시데이와 피터 모린이 공동으로 창시한 운동입니다.

갈수록 커져가는 국가의 힘에 맞서서 아나키스트적 비협력주의를, 소비주의에 맞서서 가난을, 기술적 추상화에 맞서서 이웃과 친밀한 사귐을, 풍요와 성공을 외치는 사회에 맞서서 남루하고 멸시당하는 이웃들 곁에 서기를 택한 운동입니다. 리 호이나키는 로스엔젤레스 가톨릭노동자센터의 책임자로 일해온 제프 디트리치의 말을 인용하여 가톨릭일꾼 운동의 성과를 정리합니다.

"이번 세기 동안 우리가 얻은 집합적인 경험은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행한 작은 방식이 낡은 공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 – 좀더 인간다운 세계 – 를 성취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관료적이든, 권력이라는 수단은, 세상이 우리 더러 믿으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오직 재앙을 불러들일 뿐이다."(57쪽)

'사숙'(師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여 모범으로 삼고 배운다는 뜻입니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책을 읽은 지금, 리 호이나키 저자를 직접 만날 수는 없어도 책을 통해 사숙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이름도 생소했지만 삶의 자세를 배울 만한 분입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문명 속에서 푸른 숨길 하나 찾아 낸 것도 같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 책의 제목에 쓰인 표현이 성경 시편에 나오는 구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 옮기면서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독서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며 그의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그는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주시기 때문이다."(시편 37,23-24)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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