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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하는 건 노예가 되는 건가요?

[유형선 칼럼] 

저는 주말이 참 좋습니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평일에는 밥 한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지만, 주말이 오면 가족과 한 밥상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5월의 햇살이 예쁜 토요일 오후, 슬슬 해가 기울어 날이 곧 저물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옷 가게에 들러 여름 맞이 티셔츠를 몇 벌 샀습니다. 주차장에서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려는 순간, 큰 딸이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 회사에서 일하는 건 노예가 되는 건가요?”

중학교 1학년 큰 딸의 질문이 마치 늑골 사이를 치고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었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었기에 큰 딸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겨를도 미처 없었습니다. 가족을 태운 자동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4차선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방금 전, 차 안에 퍼졌던 큰 딸의 질문은 저물어 가는 햇살과 4차선 도로의 혼잡함 사이로 금세 자취를 감췄습니다.

콩나물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득 두 어 시간 전 큰 딸의 질문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큰 딸을 불러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빠! 지금 하는 공부도 사실 누군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일인데,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가면 거기서도 남이 시키는 공부 하는 거죠? 취직해서 회사 다니면 거기서도 남이 시키는 일 하는 것이니 결국 노예로 사는 거죠?”

 

사진출처=pixabay.com

머리 속이 복잡해 집니다. 사실 직장에서 하는 일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불분명 할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다니는 회사는 요즘 대주주가 바뀌는 인수합병 소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상황입니다. 몇 년 전 대주주가 바뀔 때 경험했던 구조조정을 조만간 또다시 겪어야 하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 역시 매년 겪다 보니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도 같습니다. 제 어린 딸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지금 제가 하는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이 아이들도 마주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중학교 1학년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래도 아빠가 딸의 고민을 모른 척 하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민 끝에 노트북을 열고 딸에게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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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아!

지금 중학교 생활이나 나중에 대학가서나 더 나중에 직장을 다니는 일이 노예 생활이냐는 수민이 질문 말이지, 대답하기 참 어렵더라. 아빠가 왜 이리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지 아빠 스스로 놀랐어! 그래서 아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지. ‘너 지금 노예로 사는 거냐?’ 대답은 ‘나는 노예가 아니다’ 였어. 노예는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해.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도 못하지. 그러나 아빠는 직업선택의 자유도 있고 현재 직장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어.

‘평생 남이 시키는 일 하다 죽는 게 우리네 삶이냐?’는 수민이 질문이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기에 아빠도 대답하기 어려워 쩔쩔 매는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빠도 학교를 왜 다니는지, 왜 졸업하는지, 왜 취직하는지 답을 찾지 못할 때, 요컨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힘들었던 것 같아.

아빠도 대학을 졸업할 때 취업이 어려워 힘든 때가 있었어. 졸업한 이후 약 7개월을 취업준비만 하고 있었지. 그때가 참 힘들었는데, 왜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지 몰랐던 시기였어. ‘졸업하고 나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학창시절 깊게 고민하지 않고서 매일 매일의 일정만 쫓아다니다가 맞이한 졸업이었지. 준비하지 못한 졸업은 참으로 막막하더라.

어쨌거나 여러 곳에 원서를 돌리다가 덜컥 취업을 하고 보니 직장생활도 힘들더라고. ‘나는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로보트인가?’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지쳤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쉴 틈 없이 일을 하고 주말이면 고갈된 체력을 보충하려고 잠만 자는 이른바 시체놀이를 반복했어. 이것 저것 써야할 비용은 많은데 월급은 얼마 되지 않고 말이지. 의미를 찾지 못한 시간이 많았어.

 

사진출처=pixabay.com

수민아! 자신이 진짜 노예라는 생각이 든다면 공부든 직장이든 당장 멈추어야 해. 남을 억압해서도 안되지만 남에게 억압당해도 안되는 거야. 무엇보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한다면 무조건 즉시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해.

그러나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민은 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 이런 일상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허탈함과 무력감 때문일 거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노예가 되는 것도 결국 일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지. 지금 수민이가 하는 중학교 공부도, 나중에 다닐 고등학교나 대학교도, 그 다음에 가질 직업이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야.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야. 문제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 일을 해도 남이 너에게 의미를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거지. 의미는 스스로 발견하는 거야. 스스로 발견하지 않고 남이 너에게 강요한 의미는 정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야.

그러나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게 쉽지 만은 않거든.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을 몇가지 정리해 볼께.

우선, 수민이에게 가장 의미 있은 가치를 찾아보는 거야. 가장 의미 있는 가치를 종이에 써 보렴. 순서를 매기지 말고 일단 써보는 거야. 딱 열가지만 적어 보기로 하자. 다 적었으면 이번에는 하나씩 버려보는 거야. 가장 덜 의미 있는 가치를 하나씩 선택해서 지우는 거지. 가장 의미가 중요한 것 딱 하나가 남을 때까지 지워보는 거야. 쓰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어려울 수 있어. 가장 마지막에 남은 것 하나! 진심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다면 마지막 남은 단 한가지 가치가 수민이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인 것이지.

이렇게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집중하여 키워갈지 계획을 세워보는 거야. 가장 가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거야.

글을 쓰는 것도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규칙적으로 글을 쓰면 생각도 정리되고 일상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거든. 사실 엄마나 아빠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아마도 수민이와 수린이가 가끔씩 그리는 만화도 일종의 글이니까 같은 효과를 가질 것 같아. 수민이에게 스마트 폰도 있고 컴퓨터도 있으니 이런 기기들에 꾸준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저장하는 게 일상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아주 좋은 습관이 될 것 같아.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는 게 기도였어. ‘도대체 제가 태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의 노예가 되라고 저를 태어나게 한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기도 중에 질문을 드려보렴.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보여주시지 않겠니? 아빠도 돌이켜보면 하느님께 매달릴 때 삶의 방향성을 가장 잘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진출처=pixabay.com

아빠는 요즘 성당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창세기를 공부하고 있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나는 대목은 언제 읽어도 늘 새롭게 생각할 꺼리를 주더라.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빠 인생에서 어떨 때는 하느님과 에덴동산을 함께 거닐 때도 있었고, 어떤 순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신세 같기도 했더라고.

‘어떤 순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먹고 살기위한 생존의 노예로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을 창세기 방식으로 답을 구해보면 ‘남 탓하지 말고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따 먹지 말라는 나무 열매를 따 먹었느냐?’고 질문하는 하느님에게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고 하와는 뱀에 꾀어서 먹게 되었다고 대답을 하지.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존재라고 느껴진다면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길을 결코 남 탓 만하지 말고 자신 안에서 답을 찾아내야 할 일이야.

카인이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였지. 그런데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아벨을 보았느냐고 물으신 거야. 그러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잡아떼거든. 이 역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대답이야. 타인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결국 카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쫓겨난 존재가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생각해 보니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들어오더라. 하느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쫓아내고서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창세기 3장 말미에 적혀 있어. 커룹은 사자, 소, 독수리, 사람의 네 얼굴을 가진 괴수를 의미하는데 결국 두려운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고, 번쩍이는 불칼은 욕망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거든. 커룹과 불칼은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두 감정을 의미하는 거야. 요컨대 두려움과 욕망을 만나더라도 용기 내어 길을 갈 때 비로소 인생의 참다운 의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꺼야.

아빠는 수민이와 수린이에게 무엇을 되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다만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시민으로 살아 가길 바래. 아빠 딸이 되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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