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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교황 권고 발표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ultate) 요약

제1장 성덕의 소명

많은 유형의 성인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공식 인정하는 성인들 외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비록 역사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우리 시대의 특징인 순교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화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곧 끊임없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부활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친밀성, 그분의 가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덕의 양상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성직자, 봉헌 생활자, 또는 관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각 신자를 위한 특별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건 간에 날마다 하느님을 향하여 사랑의 실천과 증거의 삶으로 성덕에 이르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성덕은 커다란 도전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험담을 거부하고, 인내와 사람으로 경청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은 작은 일들을 통해서도 성장합니다.  

제2장 성덕에 대한 두 가지 원수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는 교회 초기부터 두 가지 그릇된 성덕의 형태였고, 여전히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끕니다. 영지주의의 잘못 가운데 하나는 사랑으로 완덕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고 정보 또는 지식으로 도달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영지주의는 지성을 육신에서 분리시켜, 예수님의 가르침을 차가운 논리로 격하시킵니다. 영지주의가 지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펠라지우스주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의지를 순수하고 완전하며 전능한 것으로 여기고 은총은 거기에 덧붙여지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율법에 얽매이거나 교회의 전례와, 교리 등에 관해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3장 주님의 빛 안에서

예수님의 행복 선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묘사해 줍니다. 여기에서 “행복”은 “거룩함”과 동의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각 행복 선언을 거룩함이라는 말로 마무리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거룩함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대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는 법을 아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거룩함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사랑을 변질시키는 온갖 것들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우리 주변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날마다 복음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 줄지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제4장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징표    

교황님께서는 오늘날 특별히 의미가 있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다섯 가지 표현 형태로, 인내와 온유함, 기쁨과 유머 감각, 대범함과 열정, 공동체성, 그리고 지속적 기도에 관하여 언급하십니다.  

제5장 영적 투쟁, 깨어 있음, 그리고 식별 

악은 성경의 가장 첫 장부터 등장합니다. 우리는 악마를 미신, 비유적인 말, 또는 하나의 생각으로 치부하여서는 안 됩니다. 거룩함으로 향하는 우리의 길은 끊임없는 투쟁이며,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 미사 거행, 성체 조배, 화해 성사, 자선 활동 등을 하도록 이끄십니다.  

거룩함의 길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와 기쁨의 원천입니다. 우리 세상의 정신이나 악한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성령에게서 오는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는 지성과 일반 상식과는 다른 식별로 할 수 있습니다. 식별이라는 선물은 오늘날 그 어느 것보다 더욱 필요합니다. 식별은 은총입니다. 이는 더 총명한 사람이나 교육을 더 잘 교육받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식별은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경청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과 다른 이들,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하는 현실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경청은 우리 자신의 일부, 충분하지 않은 생각,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식을 잊도록 해 줍니다. 우리가 성장하도록 하는 하느님의 초대를 무시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식별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주님과 참된 대화를 나누는 대화 안에서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기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언어를 더욱 잘 이해하고 우리가 받았다고 믿는 영감의 참된 의미를 해석하며, 우리의 걱정을 차분하게 만들고, 하느님의 빛 안에 우리가 새롭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침묵 가운데 긴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시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시고자 우리 삶 안에 들어오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열렬한 갈망을 쏟아 부어 주시기를 빕니다.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 관한 질문과 답변

1. 교황님께서 이 권고를 쓰신 이유와 지금 발표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도록 돕는 것은 모든 시대에서 교회의 주요 과업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성덕(聖德)은 오도된 또는 신화적 생각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당신을 따라 지금 여기 구체적인 일상의 여정을 나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몸짓과 작은 것에서 더욱더 하느님 은총의 이끄심을 따르도록 “권고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모든 신자가 선교하는 제자들이 되라고 부름받은 소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는 이러한 부르심의 핵심인 선교에 관한 것입니다. 곧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하십니다. 성덕은 선택받은 몇몇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성덕은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덕에 대한 어떠한 위협이나 강압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덕은 해방, 곧 참된 우리가 되는 길입니다.

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새로운 점은 무엇입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어조와 강조점에서 이전 문서들과는 다릅니다. 먼저, 이 권고는 우리 삶의 상태나 교육이나 발전의 수준에 관계없이 우리 각자와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친구나 가족에게 일상적으로 쓰는 단수 라틴어 표현 tu(너, 당신)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는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개인적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다음으로, 이 권고의 표현과 초대의 대상은 평신도, 곧 이 세상에서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많은 압박을 받으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교육이나 자질이나 종교적 서약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 안에서 그리고 복음을 읽음으로써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열린 마음과 열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평신도들이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성덕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점,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께서는 매우 실질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성덕을 향한 여정이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여정이 우리를 더욱 활기차고 더욱 인간답게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3. 실질적인 제안들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안하시는 많은 부분은 가톨릭 생활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자주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하며, 날마다 양심 성찰을 하고, 정기적으로 복음을 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삶과 우리의 삶이 더욱더 친밀하게 일치됩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는 “영적” 활동과 자비에 근거한 행동을 매우 긴밀히 연결 지으십니다. 실제로, 교황님께서는 이 둘은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 기도의 진정성은 우리가 더욱 겸손하고 자비롭게 되고 그렇게 행동하는 방식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마태오 복음 5장의 참행복에 관한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성덕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다음에 마태오 복음 25장에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받게 될 심판의 가장 명확한 기준,” 곧 우리가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이의 구체적 요구에 얼마만큼 응답했는지를 묻는 도전적 질문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응답이 없이는 성덕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는 믿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4. 이 문서는 고대의 두 가지 이단에 관하여 한 장을 모두 할애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왜 여기에 이토록 관심을 집중하고 계실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현대판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에 대하여 자주 말씀해 오셨고, 2월에 발표된 신앙교리성 문헌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Placuit Deo)에서도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이끌리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우 현실적인 유혹이 됩니다. 이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상의 힘이나 인간적 노력을 통해 구원을 찾으려는 방도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신학자뿐 아니라 모든 이가 그러한 위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일상 언어로 이를 설명하십니다.    

예를 들어, 교황님께서는 복잡한 논리 체계로 만물을 설명하는 듯 보이는 아름다운 사상들, 또는 법칙과 방법들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점은 우리 자신의 현학적 사상들이나 굳센 노력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나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에 끊임없이 마음을 열고 있음으로써 구원받는다–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도우심 또는 은총은 의로운 이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형제자매들에게 응답하는 우리의 방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공로와 노력이 아닌 언제나 주도권을 지니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거룩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을 우리가 자유로이 수락하고 받아들여 응답함으로써 이루는 점진적인 변모에 관한 것입니다.             

5. 교리에 대하여 말하는 43항과 44항은, 교회 안에는 교리를 해석하는―또는 이해하는―수많은 방법이 있으며 폐쇄적인 체계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전통적 가르침을 재확언해 왔던 이전 교황들에 대한 비판을 함의합니까?  

이 부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리적 명료화 또는 이성의 사용에 대해 경고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교리를 단일화하려는 시도들이나, 작은 차이나 다양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획일적 지적 체계를 경고하십니다. 실제로 많은 가톨릭 교리들이 이성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그 진리는 설명에 의해서가 아닌 관상에 의해서만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성이 차지하는 자리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진리는 이성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6. 58항은 교회를 박물관의 전시작 또는 선택된 소수를 위한 단체로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공격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부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 안의 “신(新)펠라지우스주의자”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이들은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가 아니라, 예를 들자면 율법에 얽매이거나 전례, 교리 등에 관해 엄격한 경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분명 교황님께서는 전례와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이 그러한 것들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영지주의적이거나 펠라지우스주의적 태도에 빠져 있다는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7. 교황님께서는 험담의 위험에 관하여 왜 그토록 강조하고 계십니까?(87항)

교황님께서는 전에도 험담에 관하여 자주 언급하시면서, 이는 분열과 의혹의 씨를 뿌리며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의 사회 매체가 그릇된 정보의 유포를 너무도 손쉽게 만들어 주기에 그 위험은 오늘날 점점 더 커져 갑니다(115항). 교황님께서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여덟째 계명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계명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시어, 성덕의 여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십니다. 험담하는 데 동조하지 말고 그 험담을 퍼뜨리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8. 98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추운 밤에 노숙자를 만나는 예를 드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권유하시는 것입니까?  

교황님께서는 어떤 계명을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덕이 세상과 특히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 사람을 일종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로 볼 때, 나는 바로 그리스도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는 행동은 직접적으로 수많은 요인들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99항에서, 교황님께서는 세상을 이러한 방식으로 바라볼 때 우리가 겪는 “지속적이고 불편한 불안감”에 대해 언급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성덕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9. 101항에서, 교황님께서는, 낙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시지 않지만, 낙태가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다른 수많은 관행들과 동등한 윤리적 악행이라고 논증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여기에서 다른 모든 윤리적 관심 분야에서 하나만 따로 떼어내어 이를 절대화하는 좋지 않은 태도를 비난하시는 것입니다. 생명 수호의 명분을 열심히 믿으면서도 다른 가톨릭 신자들이 ‘정치적’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외면하는 매우 평범한 가톨릭 신자에 대한 예를 드십니다. 성덕의 소명은 매우 폭넓은 시각을 요구합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인간 존엄이 위협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걱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례 가운데 두 가지 예를 들면, 유혈 사태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가족, 또는 성인신매매를 당한 사람의 경우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인간 존엄에 대한 모든 위협을 다 살피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곳에서 다른 이들이 이에 대응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10. 102항과 103항에서, 교황님께서는 이민의 주제에 대해 다루시면서, 이는 몇몇 교황이 만들어낸 개념도 아니고 일시적인 유행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은, 모든 이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까? 이민은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제 가운데 하나인 만큼, 교황님께서 성덕의 소명을 정치화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교황님께서는 모든 이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거나 환영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부유한 나라들이 더 아량 있는 나라들이 되고 이민들이 그들 사회에 더 잘 통합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장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가교를 구축하는 일과,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장벽을 철폐하는 일에 대해서 늘 말씀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늘 이민들을 통계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그분께서는 이민들의 상황이 ‘부차적’인 문제나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하십니다. 성덕의 소명은 복음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부르심이고 또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의미입니다(마태 25,35 참조). 

11. 160항과 161항에서, 교황님께서는 악마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이에 미루어 짐작건대, 교황님께서 지옥에 대해서도 믿고 계신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다른 데서도 여러 차례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는 지옥이 아니라 악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덕을 향한 모든 여정이 성덕의 적들이 가하는 공격에 휘말리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단 한 번으로 그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되는 싸움이고, 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악마를 단지 하나의 상징이나 관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악마의 유혹에 맞서는 많은 강력한 무기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특히 식별의 선물이 있습니다. 이는 겉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수많은 것이 우리 정신을 현혹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더 필요합니다. 성덕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련의 승리입니다. 

[출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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