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항쟁과 천주교] 경찰력을 분산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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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항쟁과 천주교] 경찰력을 분산시켜라
  • 이명준
  • 승인 2018.03.2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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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련에는 각 정보기관들이 계속 나와 있었다. 당시 이해찬은 그들 정보기관 사람들과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 정보기관 사람들도 상황을 알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면서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하고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만남을 통해서 이해찬은 동원되는 전투경찰 규모와 동원 내용을 파악하였다. 이러한 정보를 기초로 해서 시위 전략을 짜는 데 활용하였다.

결론은 동시다발 시위를 계획하는 것이었다.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되는 경찰 기동대는 3~4만 명으로 파악되었다. 이 기동대를 서울에 집중시키면 안 되었다. 일례로 2·7국민추도회 때 세종로에서 집회를 하려 하였지만, 기동대에 봉쇄당하자 시위는 막혀 버렸다. 물리적으로 한 지역에 집중하는 시위로는 경찰 병력을 뚫을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3·3국민대행진 때는 동시다발적 거점 시위로 전략을 바꿔 경찰 병력을 분산시켰고 자연스레 성공을 거두었다.

이해찬이 분석한 경찰 기동대 규모에 편대에 따른 시위 전략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이 작전에 따라 향후 시위가 전략적으로 계획되었다.

“모든 시위에서 동시다발로 전국적인 시위 거점을 마련하면 경찰병력이 이동을 못한다. 예를 들어 천안, 안동 같은 대학이 있는 소도시의 경우 시위가 벌어지면 최소한 경찰 병력 1개 중대 480명을 묶어 둘 수 있다. 대학이 있는 곳이 모두 시위에 참가하면, 작은 도시에서도 최소 500~1,500명의 경찰 병력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이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방으로 경찰 병력이 분산되어 서울에 2만 명이 넘지 못하게 된다. 당시 경찰 병력은 160명 단위로 1개 중대가 편성되고, 3개 중대 480명이 1개 편대를 이룬다. 이 기본 편대가 70개, 총 33,600명이 경찰 기동대 총병력이다. 2만 명 정도의 경찰 병력으로 동시다발적 시위를 서울에서 막을 수 없다. 서울역, 회현동(6·10 때 최대 격전지), 동대문, 신촌을 거점으로 시위를 하면 한 지역에 3~4,000명밖에 배치할 수 없다. 그 사이 길은 거의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 없다.”

한편 6·10민주항쟁을 앞두고 국본은 내부를 정리하였다. 국본은 비상한 조직적 준비를 하였다. 국본의 공동대표로 성공회에 들어가는 분들은 상징성 있는 원로들 중심으로 꾸리고, 비상연락망 4인 체제(성유보, 김도현, 이명준, 황인성)를 준비하여 투쟁의 지속성을 갖기 위한 실제 지도부 역할을 맡긴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천사협’ 의장인 제정구가 평신도를 대표하여 성공회성당 결성대회에 참여하였다. 실무를 총괄하는 집행위 핵심들은 성공회성당 국본 결성대회에 참가하는 지도부는 전원 구속되리라고 판단하였고,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자리 잡은 사무실의 이길재 사무총장과 대변인 인명진 목사, 실무 인원들도 봉쇄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또 항쟁은 상당 기간 지속되리라 판단하고, 집행위원회의 최종 정리는 성유보, 김도현, 황인성, 이명준의 4명에게 넘겨졌다. 이 4명은 지하로 숨어 다니며 5월 27일 국본 발족에 관한 성명서 작성의 실무와 진행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각 부분의 교통정리와 전술, 전략에 대한 논의를 이해찬, 황인성, 이명준 세 사람이 하였다. 매일 약속을 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일을 추진하였다.

천주교계의 6·10국민대회 준비와 참여도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6·10국민대회’ 관련 선언문 <6·10국민대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를 발표하여 천주교회의 참여를 이끌었다. 5개 항의 주장을 담은 이 선언문은 “민정당의 전당대회는 80년대판 유신의 시작에 불과하고, 현 정권은 이미 국민의 도덕적 심판을 받았으며, 모든 신자와 국민들은 국본과 함께 나아가 ‘6·10국민대회’에 평화적으로 적극 동참하고 모두 깨어 일어나 행동하자”고 선언했다.

또한 가농은 “호헌선언을 비롯한 군사 독재정권의 장기집권 음모는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이와 함께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미국의 내정간섭과 경제침탈행위를 단호히 거부할 것을 천명하고, 천만 농민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대열에 헌신적으로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결단의 자리에서>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출처] <6월항쟁과 국본>, 민주운동기념사업회, 2017 

이명준
천주교 인천교구 홍보과장 근무 중 민청련 부의장 역임. 민통련 청년위원장,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간사 역임. 1987년 6월항쟁 당시 4인 실무기획팀으로 민주헌법쟁위국민운동분부 결성에 참여. 평민당 기획조정실장, 비서실 차장 역임. 정계은퇴 후 (주)아이마스 회장 역임. 현재 환경재단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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