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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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
  • 한상봉
  • 승인 2018.03.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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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혁명보다 더 뜨거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1

러시아문학에서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두드러진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지은 윌리엄 제임스는 톨스토이를 낙관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대표적 작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관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대표적 작가로 여겼다. 낙관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발랄한 정신으로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유형이다. 그러나 비극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고독하며, 의식의 지평을 넓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찾는다. 그래서 종교적 천재는 주로 비극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동시대를 살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뼛속까지 귀족이었던 톨스토이는 쉰 살에 종교적 회심을 경험하면서 복음이 실종된 정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오히려 농민들 속에서 신앙을 발견하고, 복음대로 살고 싶어 했다. 작가가 아니라 급진적 설교자가 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마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청년기에 극적인 처형사건을 경험하고서, 정치적 급진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일찍이 신앙 안에서 희망을 찾았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자신이 병들어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병들어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으며, 작품 중에선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유배지 생활을 담은 <죽음의 집의 기록>만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회심 이후에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을 포함한 모든 문학서를 불살라버려도 상관없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은 모두 보존해야한다”고 말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톨스토이는 <악령>을 읽고 감탄했으며, 톨스토이가 임종을 맞았을 때 그의 침대 곁에 놓여 있었던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태생적으로 부자이며, 귀족이며, 천재작가였던 톨스토이에게 농민과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관념적인 형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혁명가로, 사형수로, 병사로, 도박꾼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일상이었다. 물론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부자-귀족이었던 뚜르게네프와 톨스토이가 돈에 끄달리지 않고 작품에 매달릴 수 있었던 상황을 늘 부러워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자-귀족이었다면, 우리는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작품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는 1821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하일 안드레예비치는 리투아니아 성직자의 아들이었는데, 신학교를 졸업한 뒤 성직의 꿈을 접고 황실 의학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군의관을 거쳐 마린스키 빈민 구제 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8등 문관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내핍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취업이 보장된 공병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문학소년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공병학교의 틀에 박힌 교육과정에 넌덜머리를 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작용처럼 낭비벽이 심했다. 육군 소위로 임관해서도 월급은 타기 무섭게 소비되었고, 아버지에게서 유산의 지분이 도착하는 즉시 바닥이 났다.

극도의 낭비와 극도의 결핍 사이를 오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비교적 안정된 직장이던 군을 서둘러 제대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다행히 ‘가난의 심리학’을 보여줬다고 극찬을 받은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1846)이 대박을 터뜨렸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이 소설에서, 마흔 살 먹은 하급관리인 주인공 마카르는 “나를 파멸시키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지거리”라고 고백한다. 제정러시아의 하급관리는 ‘관리’라는 직책과 달리 최하층계급의 하나였다. 그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극빈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혹시 누군가 자기에게 가난뱅이라고 손가락질할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말투는 늘 변명조이고, 방어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 학대받는 사람들, 소외당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살았다. 그러나 그 연민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을 착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다만 “그들도 인간”임을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부자에게 베풂이 과시이자 욕망의 실현이라면, 빈자에게 그것은 존재의 의미라고 말한다. 부자들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뭔가 베풀면서 그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 고마워하는 걸 보는 것이 베풂의 큰 기쁨이기도 하다.

“그렇다, 가난은 ‘볼거리’가 될 수 있고 적선은 볼거리에 대한 입장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박애주의와 거리가 멀다. 휴머니즘도 아니다. 받는 사람이 자신이 볼거리가 되었다고 느끼는 그런 적선이라면 그것은 베풂이 아니다.”(<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예담 42쪽)

<가난한 사람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 역시 베풀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하고 있다. 베풂은 일시적이나마 ‘없음’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카르는 이웃집 처녀 바르바라가 한사코 거부하는데도 줄곧 꽃이나 사탕을 사 준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돈을 소비하는 행위는 그에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녀에게 아무 것도 사 줄 수 없을 때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마카르가 자기보다 더 가난한 고르시코프가 10코페이카를 빌려달라고 했는데도 20코페이카를 빌려준 것도 마찬가지다.

극빈자가 다른 극빈자에게 갖는 동병상련일 수도 있지만, 마카르는 복음서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불쌍한 사람을 돕고 있다. 옹색한 처지가 별 차이 없을 텐데도, 마카르는 고르시코프를 가리켜 “정말로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절규한다. 몇 푼이라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는, 그래서 행복하다, 살만하다. 

[참고]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2008, 예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석영중, 2015, 예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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