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지옥문 앞에선 계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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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지옥문 앞에선 계급이 없다
  • 한상봉
  • 승인 2018.02.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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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분노의 대변자, 미켈란젤로 -4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화로 그려졌다.

최후의 심판, 벌거벗은 종교 … 그리고 나는?

1535년, 미켈란젤로가 교회개혁을 지지했던 여인, 비토리아 코론나를 알게 된 해에, 바오로 3세 교황은 그를 교황청 건축, 조각, 회화 책임자로 임명하고, 시스티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도록 명령한 것은 역설적이다. 1547년에는 그를 성 베드로 성당 건축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는 교회개혁을 지지하던 미켈란젤로에게 당혹스런 일일테지만, 그에겐 주어진 일을 통해 교회개혁 정신을 설파할 수 있는 예언적 작품을 낳게 하였다.

당시는 이미 독일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거친 바람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1506년 율리우스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대사부) 발행을 허가했다. 면벌부란 죄가 아니라, 죄의 대가로 요구되는 벌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해 주는 것이다. 원래 의도는 교회가 인정을 좀 베풀자는 것으로 본래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책임을 맡은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요약 교본>을 통해 면벌부를 산 사람의 죄를 이생에서뿐 아니라 연옥에서도 면제해 주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선전하였다. 이들 판매원들은 “동전이 돈궤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연옥에서 영혼들이 뛰어오른다”고 했다. 논란의 초기부터 일부 학자들은 면벌부가 죄 자체를 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죄의 처벌에서 벗어나는 길만 가르친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 바람에 1517년 루터가 95개조의 논박문을 게시한 것이다.

이 때에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통해 성직자 교회에 예언이 절박함을 환기시켰다.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백성들에게 절망한 예레미야의 심경으로,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을 그려 과거와 현재의 인류를 심판했다. 단테는 사보나롤라와 마찬가지로 ‘사악한 성직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날마다 헐값에 팔아넘기는 자들’이라고 비판했으며, <신곡>은 구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준엄하게 가르친다.

이 천장화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수염이 없다. 당당한 체격의 위풍당당한 그리스도는 마치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키면서, 위협적인 몸짓으로 천둥 같은 심판을 거행한다. 사람들은 이 그리스도상이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 무자비한 정의의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이라고 불평했다. 간음한 여인에게 “여인아, 그 자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요한 8,10-11)고 하시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패의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기억한 그리스도는 오히려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게 하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마태 3,12)이라고 하신 분을 상기시킨다. 영적으로 늙고 복음적으로 쇠약해진 당대의 그리스도교는 심판관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심판관 그리스도를 다시 호출했다.

이를 두고, 말년에 미켈란젤로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여인이며, 교회개혁을 옹호하던 비토리아 콜론나(Vittoria Colonna)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는 온유함 그 자체로 오신다. 어진 마음, 부드러움, 그리고 자비만을 드러낸다. 그분은 죄인과 약자들에게 평화의 빛, 그리고 은총을 주기 위해 오신다. 그분은 연민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겸허하시다. … 그러나 두 번째로 오실 때는 무기를 들고 당신의 정의와 위엄,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보여 주신다. 그러면 더이상 자비의 시간은 없으며 은총의 공간도 없다.”

최후의 심판에서, 그리스도는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그들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 없음’을 탓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미켈란젤로는 한 치도 복음을 약화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오른손을 들고 “이스라엘아, 들어라!” 하며 거듭 말씀하시고, 인간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학자들의 갑론을박을 단박에 부수어버리고, 오직 천둥의 언어로만 말씀하신다. 마치 “내가 명령한 것을 행하였느냐?” 묻는 것 같다.

 

최후의 심판-지옥 by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바르톨로메로 사도가 들고 있는 거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미켈란젤로는 단죄 받은 이들이 느끼는 극한의 두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타락한 교회를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로 예찬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는 모두가 벌거벗은 채 그리스도 앞에 노출되어 있다. 속내가 다 드러나는 최후 심판이 당대 성직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반발을 일으켰다. 성직자들의 교회를 탄핵하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고위 성직자들은 너무 놀랐지만, 엉뚱한 말로 미켈란젤로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이 그림을 본 교황의 의전관 바지오 다 체세나는 “거룩한 장소에 상스럽게 온몸을 드러내는 나체가 웬말이냐. 이것은 교황청 성당이 아니라 목욕탕이나 음식점에 어울릴 그림”이라며 흠을 잡았다.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의전관이 나가자마자 그를 지옥에 있는 미노스로 그려 넣었다. 의전관은 바오로 3세 교황과 미켈란젤로에게 이 부분을 지워달라고 애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옛날 아담이 나뭇잎으로 가린 것처럼 남의 눈을 속이는 옷은 심판의 날에는 없을 것이라며, 그날에는 교황이든 주교든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든 존재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느님의 재판석 앞으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후의 심판>에는 적어도 3명의 당대 교황이 등장한다. 율리우스 2세, 클레멘스 7세, 바오로 3세 교황이다. 그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능력을 찬미했으나, 미켈란젤로는 그들을 혐오했다.

그러나 결국 이 그림이 논란이 되었고, 교회건물에서 미풍양속을 해치는 묘사를 단속하는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벌거벗은 몸들은 모두 옷으로 덧칠되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최후의 심판>은 날조된 그림이다.

그림으로 예언을 하던 미켈란젤로는 평생 은수자처럼 살면서 “최후의 심판 때 나는 넘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날에 오른편에 서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고심했다. ‘최후의 심판’에서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벗겨진 살가죽에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복음이 실종된 시대, 복음과 상관없는 교회에서, 이 끔찍한 자화상은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지금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서 여전히 묻고 있다.

 

단테의 신곡 삽화

단테의 <신곡>, 지옥에서 만난 교황과 성직자, 정치가들

미켈란젤로는 온 마음을 다해 단테의 <신곡>에 몰두해 거의 모든 시를 외울 지경이었다.

“우리를 위해 그는 연옥으로 내려갔으며
우리를 위해 그는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미켈란젤로)

깊은 신심을 지닌 정치적 이상주의자였던 단테(Dante)는 <신곡>(La Divina Commedia, 거룩한 희극)으로 기득권자에게는 섬뜩하고, 사랑 많은 이에게는 위로를 주는 대서사시를 지었다. 단테는 살아서 지옥을 경험했고, 죽어서야 겨우 천국을 희망했다. 15세기 피렌체의 공화주의자였던 단테는 교황의 군대가 이탈리아를 점령하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을 쳤고, 추방된 단테는 객사했다.

<신곡>은 1300년 부활절 기간에 사후 세계로 순례를 떠나는 것으로 설정된 작품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3일, 연옥에서 3일, 천국에서 하루를 머물며 낯익고 파렴치한 수많은 망자들을 만난다. 단테는 <신곡>에서 당대의 두 교황을 지옥에 던져 넣었는데, 하느님 자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노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고 묘사하고 있다. 성 베드로가 이들을 향해 “너희는 내 무덤을 피와 더러움을 담는 그릇으로 삼았다”고 선언했다.

플로렌스를 타락시킨 정치가 보카 데글리 아바티는 발끝에서 목까지 얼음에 잠겨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지옥에서 그를 만난 단테는 아바티의 머리털을 붙잡아 한손 가득 뽑아냈다. 단테는 “어떻게 악한 사람이 잘 사는 상황이 계속될까?” “만일 하느님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왜 그 힘을 쓰지 않을까?” 질문하면서, 그가 생전에 만난 악한 정치가와 교황, 성직자들을 지옥에 처넣었다.

당대의 알렉산더 6세 교황은 전쟁을 부추겼으며, 부인이 다섯이나 되었는데, 그 자식들 중에는 교황군대의 사령관이 된 체자레 보르지아도 있었다. 이들은 전쟁포로들을 바티칸 뜰에 끌어다놓고 활쏘기 과녁으로 삼아 즐겼다. 결국 체자레도 죽임을 당하고, 교황도 독살되었지만, 뒤이은 율리우스 2세 교황이나 레오 10세 교황 시절은 성 베드로 성전을 건축하면서 마르틴 루터가 촉발시킨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단테에게 지옥은 ‘탐욕스러운 자들의 무덤’이었다. 그리고 탐욕이란 “사랑 없음”의 다른 말이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관심 없는 자들의 처소가 지옥이다. 토머스 머튼은 “천국의 문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지옥문 역시 어디에나 있다. 가련한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한 그 자리가 지옥문이며, 굶주리는 사람들 앞에서 밥을 먹는 식탁이 지옥문이다.

 

식스투스의 성모 by 라파엘로

지옥문에 서 있는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함께 바티칸을 장식했던 라파엘로 역시 지옥문 앞에 있었다. 라파엘로는 화색이 도는 얼굴과 상냥한 성품, 황실화가의 아들답게 탁월한 재능으로 유쾌한 매력을 발산해 돈방석에 앉아 명예도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연애와 방종으로 열병을 얻어 37살에 운명을 마친 게 야속할 따름인 사나이였다.

라파엘로가 누린 행운의 비결은 지배계급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성화 안에는 당대 교황과 상인과 귀부인들의 얼굴이 비친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목을 내밀고 있으며, 배가 불룩하고, 혈색 좋은 얼굴을 가진 지금 한창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 마리아는 누추한 나자렛의 시골집이 아니라, 궁전에서 천사에게 ‘예수아기 잉태’의 소식을 듣는다. 이른바 라파엘로는 단아한 ‘명품’을 지향했다. 라파엘로가 그린 여인들은 십자가 아래에서도 머리를 단정하게 여미고 울부짖는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식스투스의 성모>에서도 그러하듯이, 인물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우아하지만 생기가 없다. 마리아 발밑에서 한가롭게 딴청 부리는 아기천사들의 표정조차 몽롱하다.

어차피 작품에는 화가의 영혼이 담기기 마련이다. 권력자와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떼돈을 벌고, 늘 사람이 꼬이고 여자가 많았던 쾌활한 라파엘로는 가난하고 ‘고독한’ 미켈란젤로를 조롱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런 경박한 라파엘로를 경멸했다.

경박한 라파엘로는 품위있는 지배층을 그렸지만, 심각한 미켈란젤로의 그림에는 고통과 슬픔에 가득한 인간이 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인간은 자기 주위의 세상이 울 때 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미켈란젤로에게 세상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라파엘로가 성화조차도 당대의 권력자나 귀부인을 모델로 그렸던 것과 달리, 미켈란젤로는 평생 한 컷의 초상화도 그리지 않았다.


[참고]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 발터 니그, 분도출판사, 201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2> 조반니 파피니, 글항아리, 2008
<미켈란젤로의 생애>, 로맹 롤랑, 범우사, 200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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