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우리는 가을보다는 봄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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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 “우리는 가을보다는 봄을 살고 있습니다”
  • 교종 프란치스코
  • 승인 2017.08.2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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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8월23일 수요일반 알현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이 8월23일 수요 일반알현 교리교육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해 희망으로 가득 찬 시선인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대한 교리교육을 계속했다. ]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요한 묵시록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라는 하느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항상 인간 삶 안에서, 역사 안에서, 우주 안에서 새로움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근거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놀라움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새로움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돼지들이 하는 것처럼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한 채 걷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돼지들은 시선을 지평선을 위로 들어 올리지 않으며 항상 아래만 바라봅니다. 손바닥 안에 있는 짧은 여행과 같이 우리의 모든 여정이 이곳에서 끝나는 것처럼, 마치 우리의 삶에 아무런 목적지와 도착지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많은 노력에 아무런 이유 없이 영원한 방황을 강요당한 것처럼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는 신앙인 여정의 마지막 지평인 하늘의 천상 예루살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천상 예루살렘은 우선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자 사람들을 모으시는 큰 천막처럼 생각됐습니다.(묵시 21,3)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마침내 그분과 함께 있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실까요? 오랫동안 고생하고 고통당한 자신의 자녀들을 받아들인 아버지처럼 우리를 위해 무한한 자애로움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3-5) 새로움의 하느님이십니다!

 


 
성경의 이 구절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묵상하지 말고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읽은 후 많은 비극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슬픈 소식들이 전해지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을 읽고 난 후 묵상해 보십시오. 저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몇몇 사람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슬픈 소식들이 전해집니다! 저는 콩고의 몇몇 사람들에게도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슬픈 소식들이 전해집니다! 이 외에도 그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곳에 오신 여러분의 두 나라만 언급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어린이들의 얼굴과 어머니들의 눈물, 산산조각난 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끔찍한 여행에 직면한 피난민들 그리고 셀 수 없이 착취당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행스럽게도 인생은 또한 이렇기도 합니다.특별히 이와 같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당신 자녀들에 대해 끊임없이 숙연한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울 줄 아시고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들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모든 날에 퍼져 있으며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길 바라시는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위대한 전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우리를 고난의 힘든 밤으로 밀어 부치시면서까지 우리의 삶이 잘못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원하지 않으셨던 삶을 우리가 경험한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자신이 대속을 행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줍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죽음과 증오가 인간 존재의 비유에 대한 마지막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희망으로 가득 찬 시선인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모든 행복이 젊은 시절과 과거에 있다고, 사는 것은 느리게 부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들의 기쁨은 단지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삶에는 무의미함이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많은 재난 앞에서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길은 무의미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인간의 지평 안에는 영원히 빛나는 태양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여전히 오고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가을보다는 봄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각자 침묵 중에 자신의 마음속으로 꼭 대답해 보십시오. “나는 가을의 남자인가, 봄의 남자인가? 나는 가을의 여자인가, 봄의 여자인가? 나는 가을의 소년인가, 봄의 소년인가? 나는 가을의 소녀인가, 봄의 소녀인가? 나의 영혼은 봄인가,가을인가?” 각자 대답해보십시오.

우리는 나뭇가지에 노랗게 변색된 잎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싹을 봅니다. 우리는 향수와 후회와 애도로 울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칠 줄 모르고 꿈꾸며, 약속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잊지 마십시오. “나는 가을 사람인가, 봄 사람인가?” 꽃을 기다리고 열매를 기다리며 태양이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봄인지? 아니면 항상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으며 제가 가끔 사용한 표현대로, 식초에 절여진 고추들의 얼굴처럼 쓰디쓴 가을인지?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와 그 사랑의 권위가 비록 그 가운데 가라지 또한 함께 커다란 밀밭처럼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항상 문제점들과 뒷 담화들과 전쟁과 질병들이 존재합니다.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밀은 자라며,결국 악은 제거될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가장 위대한 은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와 동행하시고 여정 중에 우리를 위로하고 계시지만, 마지막 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포옹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많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거처하시는 커다란 ‘천막’(묵시 21,3)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때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날들에 대한 기억들을 하느님께 가져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어떤 미소도 그 어떤 눈물도, 그 어느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지만,한숨 쉬는 동안 산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창조 사업은 창세기의 여섯 번째 날에 멈추지 않았으며, 계속 중단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날까지 눈물이 쏟아지는 아침에, 하느님께서 축복의 마지막 말씀을 선언하시는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5절)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새로움과 놀라움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날 우리는 정말로 행복하며, 눈물 흘릴 것입니다. 예,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는 가톨릭일꾼을 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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