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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례는 사랑과 정의를 위한 효과적인 행동을 요구한다성찬례의 사회적 의미-1
Елена Игоревна Черкасова (род. 1959)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정직하고 성실하며, 단순히 외적인 형식과 전례, 떠들썩한 모임에 치우치지 말고 실제생활과 관련된 심각한 자세로 살기를 바랐다. 즉 진정한 기도가 되려면 행동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했다. 예수는 위선적인 기도를 반대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하거나 자주 하는 것을 별로 믿지 않았다. 심각한 목표가 없는 기도를 경고하였다. 또 예수는 기도할 때 거룩한 장소나 때, 제의, 예식, 말씀 혹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거룩한 기도란 성실하고 흠없으며 온전한 기도라고 예수는 믿었다.

성찬례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예수를 본다. 그 기도는 식사때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때에 한 기도였다. 그 예식은 유대인들 모두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제의를 입은 신부도 없었고 거룩한 성작도 없었다. 예수가 그 기도때에 가져온 특별한 것이라곤 총체적인 인간해방, 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인간해방에 대한 그의 투신 뿐이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성찬례는 회당이나 성전의 예식하고는 거리가 먼, 동료인간들을 위하여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핵심요소였던 사건이었다. 그 투신 전에 그가 한 이야기는 그러한 투신과 봉사와 형제애로 가득찬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제 역시 희생자였다. 그의 사제직에 있어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희생과 봉사와 첫 번째 제물로서 자신을 바친 것이었다.

예수의 성찬례, 해방의 전주곡이며 최고의 기도 

예수는 성찬례를 단 한 번 거행하였다. 성찬례는 심각한 의미와 생각없이 쉽게 되풀이 되고 늘려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에게 있어 첫 번째 성찬례는 너무나 의미가 깊었기 때문에 두 번 봉헌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생명을 바치는 의미를 이미 채웠기 때문에 다시 봉헌할 수 없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 성찬례는 그의 제자들과 나아가서는 온 인류의 해방을 위한 그의 전적인 희생을 알려주는 전주곡이요 상징이며 최고의 기도였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러한 투신과 심각함이 없는 것을 메꾸어 보려고 온갖 다른 종류의 방법을 쓰고 있지 않나 성찰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성찬례의 숫자만 늘린다든가, 요란스럽고 사치스러운 겉치례로 성찬례를 거행하는 큰 성전들을 짓는다든가, 아름다운 음악과 장식, 거대한 군중들을 모은다든가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거기에 의미가 있다면 유용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찬례가 사람들을 심각하게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해방에의 투신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이러한 외적인 모든 것들은 단순히 방해물이요 힘의 낭비이며 성찬례의 참의미를 감소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다. 실상 이런 것들은 투신이 부재하다는 표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자아낸다.

Анна Журко

성찬례, 친교의 나눔과 일치의 성사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매주일 수년간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도시에서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심연에 다리를 놓는 노력도 그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52번의 성찬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성찬례는 일치의 성사가 아닌가? 바오로 사도 자신도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일치하려는 노력을 하지않는 이들을 심하게 꾸중하였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귀중하게 받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성찬례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한 바오로 사도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고린토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하여 준엄한 비판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성찬례가 사람들 사이에 마음과 재물의 진정한 나눔이기를 바랐고 성찬례를 거행하는 공동체가 한 몸이 되기를 원하였다.

“우리가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

바오로 사도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니 올바른 마음 가짐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7).

성찬례는 보다 큰 사람과 자기일치,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므로 영적인 음식이다. 오늘날 성찬례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정의를 위한 효과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성찬례는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의 고통에 응답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은 자주 성찬례에서 특별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실천되는 사랑과 사회적 정의를 위한 행동이 동시에 수행되지 못하는 것은 성찬례에 대한 모독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6년 11월호
[원출처] <하나되어> 1988년 8월(제19호)~1989년 6월(제28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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