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처: 예수님께서 유죄판결을 받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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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처: 예수님께서 유죄판결을 받으시다
  • 헨리 나웬
  • 승인 2017.03.17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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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예수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2
by William Kurelek

감옥 창살 뒤에 한 남자.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저주 받은 자”의 무리에 들어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있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로 여겨진다. 그는 사회의 적, 반란꾼, 이방인이자 위험인물이다. 그는 공동체 생활에서 떨어버리고 잘라내어야 할 인물이다. 왜? 그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흑인이고 흑인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성애자이고 동성애자들은 변태성욕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다인이고 유다인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난민이고, 난민들은 우리 경제에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방인으로 우리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잊고 싶었던 사실들을 도리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질서정연한 우리의 삶을 흩어 놓는다. 그는 우리의 불순함을 덮어놓은 베일을 걷어치우고 우리를 안전하게 분리시켜놓은 벽을 허문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고 똑 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 들들이고 딸들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먹도록 정해져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인종차별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와 친교가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 소리는 조용해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운영하는 방식을 교란시킨다. 그것은 우리의 가정생활,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것은 무질서, 그렇다, 심지어 혼돈을 야기한다.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너무 복잡하다. 우리가 그토록 공들여 짜놓은 관계라는 섬세한 그물망을 파괴하는 예언자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각자의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느님은 우리 전체를 위해서 있다는 모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안락함을 극대화한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신다. 그분은 침묵을 지키신다. 그분은 당신을 향해 쏟아진 수많은 죄목들로부터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빌라도가 그분께,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라고 묻자,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고 답하셨다.(요한 18,35-3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어떤 이론도 교리도 아니며 현실에 대한 지적인 해석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 그분 자신과 아버지 사이의 생명을 부여하는 친밀함이다. 그분은 우리 역시 거기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빌라도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예수님께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사람은 모두 진리의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은 현대 사회의 헛된 충동들과 소유욕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하느님의 내적인 삶에 속하게 하며, 세상을 열린 마음과 주의 깊은 정신으로 살게 해 준다. 예수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감옥에 있든 아니든 간에, 여정은 멀리 그리고 넓게 펼쳐진다. 진리(진정한 관계, 진정한 속함)는 어둠의 세력이 빼앗을 수 없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셨고 그것은 그분께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셨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그분을 단죄했다. 빌라도는 그분을 저주받은 이들 중 하나로 만들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형선고의 집행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로 이끌면서, 온전한 진리로 가는 길이 되었다.

내가 하느님께 더 속할수록 더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비난은 진리를 드러낼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나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힘을 가진 이들이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바로 그곳에서, 내가 옆으로 밀려나고 웃음거리가 되며 소외되는 바로 그곳에서 나는 내가 전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철창에 갇히고 구속되고 고립된 시설에 감금되는 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사셨던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진리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그 굶주림이 채워질 때마다 나는 또다시 단죄 받을 것이고 짊어져야 할 무거운 십자가가 주어질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와 요한, 바오로와 바르나바, 야고보와 안드레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겪었던 일들이다. 그분들의 기쁨과 슬픔은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진리를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치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없다면 가능할 수 없다. 그렇지 만 감옥의 창살과 단두대의 두려움을 넘어 이미 이곳에서 천상의 삶 같은 풍성한 기쁨을 맛보지 않는다면 또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 감옥 안 남자의 눈엔 확실히 두려움이 서려 있으나 또한 확신, 신뢰, 희망, 그리고 자유에 대한 깊은 깨달음 역시 담겨있다. 그와 나의 눈은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우리의 두려움을 훌쩍 뛰어넘어 영원한 사랑의 나라로 우리를 부르시는 고통 받는 하느님의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출처_ <예수님과 함께 걷기 십자가의 길>, 헨리 나웬, 참사람되어,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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