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하우스, 모든 일상에 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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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하우스, 모든 일상에 기도가 있다
  • 주은경
  • 승인 2024.02.19 13: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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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4

컵을 들 수 없다. 손목에서 팔까지 통증이 심하다. 양치질할 때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잡고 움직여야 할 정도. 왼손에 병을 거꾸로 잡고 닦는 일이 무리였나? 담당자 줄리에게 얘기하고 간호사 다이아나와 상담했다. 소란을 피운 것 같아 미안했다. 오후에는 업무배치가 바뀌었다. 마돈나하우스의 타블로이드판 월간 종이신문 <레스토레이션>(Restoration, 회복)을 발행하는 작은 사무실에서 봉투에 우표 붙이는 일. 내 몸을 신경써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몸이 힘들다. 하루에 겨우 4시간 일하는데도 이렇게 아프다니 우울하다. 하지만 순간순간 나의 영혼에 맑은 물을 부어주는 시간이 있다.

오전 티타임의 영적 독서, “청소도 주님의 시간”

11월 14일 도착한 지 1주일. 아침식사를 끝내고 사무실에서 다시 우표 붙이는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내 앞에서 함께 일하는 게스트 파트너가 바뀌었다. 멀리 캐나다 중부 리자이나에서 온 시실리안은 짧은 머리에 작고 몸이 마른 60대 여성. 그와 나, 그리고 세 명의 사무실 스탭이 둘러앉아 오늘도 오전 10시, 티타임 30분 동안 <Grace in Every Season>의 한 부분을 읽었다.

이 책은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 날짜별로 매일매일 일상과 영성을 연결한 캐서린 도허티의 글을 편집한 책이다. 예컨대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과 믿음’에 대해, 12월 1일은 ‘예수, 가난의 진실’로 그 달을 시작한다. 생일, 졸업, 농사, 바느질, 요리, 집안일, 손작업, 음악 등 일상의 삶과 기도에 대한 글도 있다. 매일매일 반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 11월 14일 오늘의 테마는 ‘청소와 신학’이다. 다음은 그 글의 전문.

신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참된 주님의 창조물이라고 여깁니다. 걸레든 쓰레받기든 모두 주님의 창조물이지요. 베네딕토 성인이 정립한 육체노동의 신학에 대한 글을 보면, “수도원 내의 모든 도구를 사용할 때는 제대 위의 전례 도구를 다루듯이 경건한 자세로 다루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보통 육체노동을 하찮게 여기곤 하지요. 이는 육체노동이 존엄하다는 복음의 원칙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역시 목수, 즉 육체노동자였어요. 어쩌다보니 그런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아니에요. 그분께서 ‘선택하신’ 직업이지요. 또한 마리아 성모님도 가나안 땅의 가정주부에 불과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도구도 없이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주님, 성모님, 성 요셉의 성가정이 찬미하며 신성하게 여겼던 집안일과 모든 육체노동을, 우리 자신의 영혼과 건강을 위해 성심성의껏 수행해야 합니다. 방 하나 정돈 못하고 서랍과 선반도 제대로 정리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그리스도에게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청소하기 전에 성호를 그어보세요. 청소 시간은 주님의 시간이요, 빗자루도 주님의 것, 방바닥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시작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하는 동안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일하는지 지켜보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청소가 곧 노래가 되고, 사랑과 속죄의 기도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

청소를 노래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다니. 상상하지 못한 경지다. 캐서린 도허티의 글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간단 명확하다. 나처럼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무슨 말을 하는지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함께 눈으로 책을 보며 낭독하니 그 의미를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에너지가 흐르는 낭독에는 힘이 있다. 낭독을 끝내면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 서로의 느낌을 나눈다. 나는 영어가 짧아 말을 하긴 어려워도 공감할 수 있다.

글에서 뭔가 연상되었는지 시실리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동생이 암으로 죽고 나서 나도 암 환자라는 걸 발견했어요. 비로소 죽음에 대해 깊은 체험을 하게 됐어요.” 오전 티타임 30분의 영적 독서는 같은 시간 마돈나하우스 어느 부서에서나 진행된다. 영어를 잘 하든 못하든, 어디서 왔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과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 새로운 경험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안에서 우리는 예수를 만난다

오후에도 주 1회 1시간 동안 영적 독서시간이 있다. 점심 식사 후 60여명이 모두 메인 홀 식탁에 앉는다. 신부님이 책을 읽어주면 사람들은 듣는다. 뜨개질이나 바느질 하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 자유로운 분위기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걸 눈치 챘는지 누군가 신부님이 읽는 책을 가져와 페이지를 찾아준다. 그의 친절 덕분에 읽기와 듣기를 함께 하니 훨씬 이해하기 쉽고 덜 졸린다.

설립자 캐서린 도허티가 쓴 책. “성서에 대한 책을 읽지 말고, 성서를 직접 읽어야 한다”는 얘기가 쏙 들어온다. 오래 전 내가 노동자교육 단체에서 일할 때 “마르크스에 대한 해설서 말고 <자본론> 같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직접 읽자”고 강조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성서든, 자본론이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의 진실’에 다가가자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이 영성과 종교든 사상이든 말이다.

다음날에도 점심식사 후 영적 독서 시간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오늘날 혼란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진실한 예수를 찾는다. 성경에서 읽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했던 복음 속의 그리스도를 찾아 헤맨다. 어떻게 예수를 찾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안에서 예수를 만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번쩍 눈이 뜨였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안에서 예수를 만난다.” 결국은 내 속에 신적인 요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인데. “내 옆에, 네 안에 부처가 있다.” 불교경전에서 강조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중요한 문장을 건져서 뿌듯했다.

 

이 사진은 3층 기도실이 아닌 채플의 기도 모습. 마돈나하우스 제공.
이 사진은 3층 기도실이 아닌 채플의 기도 모습. 마돈나하우스 제공.

다락방 기도실, "기도란 무엇인가"

날씨가 더 추워졌다. 영하 15도.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 털조끼를 더 입으려다 채플시간에 늦을까봐 그냥 뛰어나왔더니. 가슴팍이 시리다. 추웠던 몸이 녹아서 더 졸린 건가? 점심 먹고 2시 넘어 졸음을 참기 어렵다. 내가 딱해 보였는지 사무실 스탭 메리가 일러준다. “3층에 기도실이 있는데, 오후 작업할 때 30분에서 1시간 동안 기도를 할 수 있다.”

와. 작업시간에도 기도하러 갈 수 있다니. 반갑고 놀라웠다. 3시부터 30분 동안 기도실에서 촛불을 바라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기도하다가 잠을 자도 되나? 마음이 좀 찔렸는데 나중에 스탭 주은이 말해준다. “잠을 자도 하느님 앞이면 정말 깊은 휴식을 선물로 주신다.”

다음날도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사무실에서 우표 붙이는 일을 한 다음, 30분 동안 다락방 기도실에 있었다. 여기 온 지 열흘. 뭔가 간절하게 기도할 것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래도 병 닦다 생긴 손목 염좌에 허리, 다리가 아파도 마음과 머리는 쉬고 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꿀맛인지.

무념무상... 제단 위의 촛불을 바라본다.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아픈 내 손이 다른 손을 보듬어 만져본다.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며칠 동안 살펴보니 이 곳은 마돈나하우스의 게스트, 수련생, 스탭 모두가 기도하며 깊은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기도란 무엇일까?

기도는 어떤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것만이 아니다. 감사기도, 명상과 관상기도, 참선기도 등 모든 기도의 핵심은 내면의 깊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작은 자아를 버리고 비우며 자신의 영혼을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중략)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오래된 기도>, 이문재

마돈나하우스에서의 나의 기도와 이 시가 깊게 연결됨을 느낀다.
홀로이면서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수 있는 곳. 이 날부터 3층 다락방 기도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공동체의 꽉 짜인 생활에서도 홀로 동시에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충분하게 허용해주는 마돈나하우스. 공동체의 규칙과 질서만을 강조하는 곳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마돈나하우스가 2024년 지금까지 76년을 이어온 힘이 아닐까?
 

* <Grace in Every Season> 2012, 301-302쪽. 번역 김민경

** 필자는 2007년 11월초부터 12월말까지 약 두 달 동안 캐나다 가톨릭공동체 마돈나하우스에서 게스트로 머물렀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노트에 일기를 썼다. 그 기록을 기초로 2024년 1월부터 격주연재를 하고 있다.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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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2024-02-20 14:47:34
오늘 아침 하루를 시작하며 '날마다 신성함을 내 삶에 들여다 놓겠다'고 마음을 정했는데, 마침 이 글을 읽으니 기도에 응답받은 듯 반갑네요. 마돈나 하우스에서처럼 나만의 티타임 시간도 가져봐야겠어요.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수도원에 머문 듯 마음이 조용해지네요.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