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 바느질, 과달루페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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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 바느질, 과달루페 축일
  • 주은경
  • 승인 2024.07.08 15: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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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13화

12월 10일(월) 마돈나하우스에 새로운 게스트가 왔다. 루마니아 출신의 메리 수녀님.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키도 몸도 컸다. 프랑스에서도 몇 년 살아서 불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다. 모두들 그 앞에서 잘하든 못하든 불어로 소통하려고 애를 썼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너무 당당한 수녀님의 태도가 놀랍고 또 부러웠다.

오늘 내가 배치된 곳은 주방. 수녀님과 함께 하루 종일 콩 고르는 일을 했다. 못난 콩도 골라내고, 돌도 골라내고. 이 일을 하다 보니 콩이 다 같은 콩이 아니었다. 큰 콩, 작은 콩, 동그란 콩, 납작한 콩, 노란 콩, 검정 콩, 녹색 콩, 빨강 콩. 나중엔 팥까지 골랐다. 한국에서 콩이나 팥을 하나하나 골라본 적이 있었나? 같은 콩들이라도 어쩌면 저렇게 다 제각각 모습이 다르고 예쁠까? 쟁반에 죽 펼쳐놓은 콩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문제는 평소에 이 아름다움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마돈나하우스를 떠나면 내게 이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코스튬 수선하며 바느질의 매력을 발견

12월 11일(화) 오늘은 나 혼자 바느질하는 일을 배정받았다. 목 부분이 다 헤어지고 뜯어진 낡은 박사학위 가운을 수선하는 일. 할로윈 데이나 무대에서 배우들이 입는 코스튬이었다. 검은 모직 겉감에 벨벳 천과 금실로 문양을 댄 이 옷은 내가 들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 의자에 옷을 입혀놓고 가봉하듯 바느질을 했다.

나에게 코스튬 수선을 부탁한 사람은 메인하우스의 작은 사무실에서 게스트들의 방문일정을 총괄 조정하는 헬렌.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했고, 마돈나하우스에서 연극을 할 때 희곡을 직접 쓰기도 했다는데, 발음이 명료하고 목소리가 따뜻했다. 바느질을 시작하고 1시간 지난 오전 10시 30분 티타임, 그와 나는 마돈나하우스의 설립자 캐서린 도허티가 ‘드라마’에 대해 쓴 글을 함께 읽었다.

“연극은 사람들이 나 자신을 직면하는 방법이다. 한편의 연극은 내게 일종의 뿌스띠니아다. 그것은 하느님과 자신을 만나는 방법이다. (중략) 좋은 드라마는 인생이다. 우리가 마돈나하우스에서 드라마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인생에 대해 더욱 진지해진다. 하느님, 그리고 다른 이와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성찰하게 해준다. ... 나는 이들의 캐릭터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 자신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연극의 인물 캐릭터에서 자신을 성찰한다는 캐서린 도허티의 말은 와 닿는 뭔가가 있었다. 집안에서도 연극을 즐기던 러시아 귀족 출신의 이민자, 그의 예술적 감성도 읽혀졌다.

코스튬 수선을 내가 좋아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바느질을 하는 방 자체가 예술이었다. 창문 밖 넓고 너른 강이 설경 속에 펼쳐졌다. 겨울 하늘은 시간에 따라 햇빛과 구름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새들은 지저귀며 음악을 연주했다. 내가 마돈나하우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꼽는 이 방에서 하루 종일 혼자 바느질을 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내가 바느질하던 방. 메인하우스의 작은 도서실로도 불린다.

바느질은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매일 우표 붙이고 콩 고르는 단순한 일도 명상하는 맛이 있다. 그런데 바느질을 하면 창작과 성취의 기쁨이 있었다. 낡고 헤어져 도저히 입지 못할 것 같은 옷도 내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면 쓸 만한 것으로 변신했다. 나의 손은 예술가의 손이 되었다.

내가 바느질을 즐겨본 적이 있었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가정시간 바느질 숙제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결혼할 때 엄마가 해준 이불은 요즘처럼 지퍼 있는 커버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일이 바쁜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불호청을 뜯고 빨아 이불 바느질을 해야 했다. 일단 시작하면 그렇게 힘들거나 싫지 않았지만, 한번 시작하려 하면 부담이 컸다.

엄마는 바느질의 고수였다. 오빠의 배냇저고리부터 우리 자매의 원피스와 반바지를 만들어 입혔다. 지금도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가끔 들여다보는데. 흰 바탕에 오렌지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하늘하늘한 아사 원피스는 정말 예뻤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만든 옷, 손뜨개질한 스웨터나 장갑을 좋아하지 않았다. 돈 주고 산 털장갑이 더 따뜻해보였고, 옷가게 집 딸 내 친구 남숙이 옷이 부러웠다. 지금은 엄마가 만든 옷들이 얼마나 큰 사랑이고 예쁜 추억인지 사무칠 정도지만 이젠 그 마음을 엄마에게 전할 길이 없다. 엄마는 나이 50이 넘어서는 바느질을 못했다. 눈이 아파서.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아버지가 이사하면서 내가 엄마의 재봉틀을 버렸는데. 맑은 눈물이 흘렀다. 바느질하며 이렇듯 엄마 생각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고마웠다.

중남미의 가톨릭 축제 과달루페 축일

12월 12일(수) 오늘은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마돈나하우스에서 처음 들은 과달루페 축일의 내력을 설명해볼까?

1531년 지금의 멕시코시티 테베야크 언덕. 가난한 인디오 후안 디에고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말했다. “이곳 주교를 찾아가 나를 기리는 교회를 세우라고 전해라.” 하지만 주교는 후안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성모마리아가 후안으로 하여금 한겨울에 키워낸 아름다운 장미를 주교에게 보여주도록 하자, 주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한겨울에 장미라니? 이것은 성모마리아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기적이 있었다. 후안은 장미로 채운 그의 망토를 주교에게 보여줬다. 망토에는 성모마리아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림속의 성모마리아는 인디오 문화의 상징이 가득한 인디안 공주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망토에 새겨진 성모마리아 그림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지금도 멕시코시티의 성당에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과달루페 축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아이 같은 즐거움을 경험하는 날. 과달루페 축일엔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아침 6시 반에 기상하여 7시 반까지 아침 미사에 참석한다. 새벽은 여자들이 부르는 세레나데로 시작한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미사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과달루페의 성모

(하지만 나는 이날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메인하우스의 식당이자 도서관인 다이닝룸 중앙에 유럽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분위기의 성모상 그림이 모셔져 있어, ‘뭔가 특별하구나’ 하고 느끼고 있었다.) 낮에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이 날 나에게 배정된 것은 부엌의 그릇 선반을 닦는 일이었다. 보통의 찬장이 아니라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선반. 칸칸이 겹쳐 쌓여 있는 사기그릇들을 하나하나 옮기고 바닥의 먼지를 닦았다. 혹시 깨기라도 하면 어쩌나. 등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했다. 몬트리올에서 룸메이트의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 주전자를 깨서 마음고생을 했던 탓일까? 커다란 사기 접시는 무거웠고, 소스용 그릇은 겹쳐놓을 때 무척 조심스러웠다.

일을 다 끝내고나서 주방의 부책임자 조코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일하면서 그릇 깰까봐 무척 걱정했다고. 조코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은경, 설사 그릇을 깨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너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요.”

조코는 벨기에 출신의 여성스탭. 불어가 모국어지만, 그의 영어는 매우 유창했다. 2주 전 함께 식사하면서 나눴던 대화가 인상적이었던 조코. 그는 내게 브뤼셀에 무슬림학생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내가 이슬람사회에서 무슬림 수피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고 하자, “맞아요. 그런데 무슬림 권력자들과 왕들은 수피들을 좋아하지 않았죠”라고 강조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보였는데, 이렇게 성격도 시원시원하다니. 키도 눈도 큰 그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릇선반을 다 닦고 나니 4시 45분. 주방 지하에서 양파껍질을 까다가 저녁 미사에 참여했다. 과달루페를 기념하는 저녁미사는 나의 영적 상담자 키에렌 신부님이 집전했다. 신부님 말씀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그가 과달루페 성모마리아에 얼마나 감동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가득한 채 목소리는 떨렸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에게 마리아의 존재는 큰 느낌이 없지만, 어쩌면 저토록 충만한 감정으로 강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의 사랑을 저토록 기뻐하고 찬미할 수 있다니. 나는 그 순수하고도 기쁨 가득한 태도에 감동했다.

아이처럼 즐겁게 노는 저녁 파티

과달루페 축일의 저녁식사는 멕시칸 음식. 무슬림이 먹는 ‘난’과 비슷한 얇고 넓적한 빵에 매콤한 콩과 쌀 요리를 얹어먹었다. 이곳에 오기 전 살았던 몬트리올의 교회에서 친구가 되었던 멕시코 출신의 마가리타, 아르헨티나에서 온 미리암. 그들과 함께 가보았던 멕시칸 식당 음식과 거의 비슷한 맛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다이닝홀의 식탁과 의자를 모두 치웠다. 본격적인 파티 시작. 과달루페에 성모마리아 앞에 후안 디에고가 장미를 바치는 짧은 연극이 끝나고, 며칠 동안 노래 연습을 했던 팀들이 스페인어로 노래를 불렀다. 스페인어가 아주 유창한 20대의 게스트 캐서린, 30대의 수련생 데릭,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폴. 남미풍의 음악은 경쾌했다.

이어서 키 작고 뚱뚱한 할아버지 신부님, 그리고 내가 속으로 ‘데스마스크’라고 별명을 지은 키크고 무표정한 여자 스탭이 재미있는 꽁트를 했다. 신부님의 연기는 푸근하면서도 아이 같았고, ‘데스마스크’ 스탭의 얼굴엔 표정이 살아났다. 다음엔 마돈나하우스의 여자 스탭 세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코스튬을 입고 춤을 추는데. 남미식 막춤인가? 한국의 공옥진씨가 추었던 ‘병신춤’ 같기도 하고.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재치와 유머가 있는 춤. 코스튬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랐는데, 인사할 때 보니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내가 아는 스탭들. 인도에서 이민 온 누구,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엘리아나였다.

춤이 끝날 즈음엔 그 ‘데스마스크’ 스탭이 나서서 게임을 진행했다. 패트병을 세워놓고 볼링하기. 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게임에 다이닝홀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키에렌 신부님도 흥을 참지 못했다. 혼자 나서서 사람들에게 파도타기를 시키는데. 그토록 엉성한 파도타기를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어 할까. 열 살 순수한 소년이 따로 없었다.

파도타기가 끝나고 열기도 식힐 겸 주방에서 주은과 사과 쥬스를 마셨다. 잠시 후 메인홀로 돌아오니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홀 한 가운데 농장 디렉터인 ‘훈남’ 스캇과 내게 언제나 잔소리하는 A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다른 20여명의 사람들은 기차놀이를 하고. 게다가 조금 전에는 키에렌 신부와 은수가 함께 춤을 추었다니. 안타까웠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어쩌나.

이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니 비로소 과달루페 축일이 무엇인지, 왜 이들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왜 아이처럼 즐겁게 논다는 것인지 감이 왔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유럽의 가톨릭이 중남미로 퍼져나갔고 중남미대륙의 주요 종교가 가톨릭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의 불교가 동쪽으로 동쪽으로 건너와 중국, 한국, 일본의 독특한 불교문화를 만든 것처럼, 가톨릭도 중남미대륙에서 자신들만의 가톨릭문화를 형성하고 독자적인 축제를 즐겨왔음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다시 한번 종교를 매개로 한 세계의 교류, 문화의 확장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캐나다가 이민 사회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축제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겠지만, 다른 문화권의 가톨릭 축제를 대단한 축일로 기념하는 마돈나하우스의 문화가 내게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들이 다양한 나라의 다른 문화들에 오픈되어 있는 건, 이 마돈나하우스의 설립자가 러시아 이민자고, 그녀의 러시아 정교회 전통이 마돈나하우스에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는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과달루페 축일을 계기로 색다른 가톨릭 문화를 체험하면서 나는 마돈나하우스의 삶이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엔 종교적 영성과 함께 일상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만드는 공동체의 지혜가 있었다. 나는 그 지혜와 매력에 점점 더 빠져 들었다.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 현장에 가다>가 있다.


GKARP TMS CORDM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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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2024-07-18 13:07:08
언젠가 캐나다에 가게 되면 마돈나 하우스를 꼭 방문하고 싶네요. 키에렌 신부님의 감동적인 강론도,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상도 보고 싶네요.
눈오는 겨울날 산책을 하고, 홀로 기도하며 맑은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꿈꿔 봅니다.